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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옛 어른들의 땅이름 짓는 법
투데이포항 기자 / snlim4884@naver.com입력 : 2014년 03월 07일(금)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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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이름에 대해서도 기초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산촌 어른들과 소통하기에 좋습니다.
 
첫째, 산은 ‘주인’을 옳게 찾아 물어야 그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산촌에서는 권역에 따라 네 산 내 산 나누는 관습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법적인 소유권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세 동네의 접점에 있는 산이라 하더라도 그게 ‘어느 동네 산이냐’ 하는 것에 따라 동네 간에 인식 차가 매우 클 수 있습니다. 북편 동네서는 저 산을 자기네 산이라 여기고 송이 따기나 산나물 따기 등을 도맡다시피 하는 반면, 남쪽 동네서는 가까이 있는 산인데도 “저 것은 다른 동네 산이다”하고 이질시하는 식입니다. 동일한 산덩이의 여러 자락에 나뉘어 있는 마을들이라도 그 산덩이에 대한 인식이 제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동일한 산이라도 그 자락 각 동네의 위치에 따라 두드러져 보일 수 있고 유야무야 존재조차 판별되지 않을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산을 살필 때는 이럴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대상 산덩이의 사방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두루 조사한 뒤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봉우리는 서쪽 동네에서 매우 두드러져 보입니다. 모습 자체가 인상적인데다 그쪽으로 튀어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쪽 마을서는 저 봉우리를 ‘삿갓봉’이라는 이름으로 뚜렷이 인식합니다. 반면 동쪽 동네에서는 저 봉우리가 있는 줄조차 거의 의식하지 못합니다. 저 너머 동네 쪽으로 물러앉음으로써 거리가 멀어진데다, 산줄기가 휙 굽은 지점 안에 위치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쪽 동네서는 저 봉우리를 가리켜 소통하는데 필요한 이름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무슨 골 말랭이(만대기) 정도로나 분별할 뿐입니다.
 
여러 방향 여러 마을에서 다 바라다 보이는 산이더라도 각자 부르는 이름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마을들에서 보이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봉우리 두 개가 연결돼 정상부를 형성하고 있는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봉우리가 하나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식입니다. 그럴 경우 봉우리가 하나만 보이는 쪽에서는 뾰족한 것만 생각하고는 ‘감투봉’ ‘갈모봉’ ‘삿갓봉’ 등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반면 두 봉우리가 연결돼 보이는 쪽에서는 소 등에 얹는 길마를 닮은 등성이라 해서 저걸 ‘질매등’이라거나 말의 잘록한 등허리부분 및 양편의 높은 부분을 연상해 ‘말잘룩이’라 부를 소지가 생깁니다. 
 
셋째, ‘홍수시대’의 기억이 땅 이름 유래와 깊이 연관돼 있음에 유의하는 게 좋습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봉우리 끝이 바가지만큼 물 밖으로 남아 있어서 ‘바가지등’이라 부른다”는 식입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경상도에서는 이렇습니다.
 
그 시절 겨우 물 밖으로 끄트머리만 모습을 드러냈을 듯한 봉우리들은 그때 그 모습을 따라 갖가지 이름을 얻어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보게 될 ‘바디산’ ‘동대산’ 등에도 같은 전설이 서려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배바위’라는 암괴가 많은 것도, 그 홍수 때 거기에 배를 매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합니다. 선암 주암 등으로 번역돼 오는 지형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일본과 한국이 걸어서 건너다닐 수 있을 정도로 옅은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던 저 백악기 때, 경상도가 호수이고 그 물가로 공룡들이 돌아다녔다던 그 옛날 때, 그때의 기억이 집단무의식화해 전해져 오는 전설인지 모를 일입니다.
 
넷째, 저런 특성을 미리 알고 현장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옛 어른들의 산 이야기 속에는 도시화 세대들이 얼른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이 또 포함돼 있습니다. 산에는 산 속 어른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지형이 있어서 빚어지는 일이겠습니다. 
 
‘밭’ 혹은 ‘밧’이라는 용어도 그런 것 중 하나입니다. ‘바위’라는 말이 다른 말 중간에 붙을 때 ‘밧’으로 발음 나는 것으로 미뤄본다면, 저것은 ‘무슨 무슨 바위’라 부를 때 나타날 수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범바위골’을 줄여서 ‘범밧골’이라 하는 게 예입니다.
 
그러나 ‘밭’ 혹은 ‘밧’은 저것과 다른 용도로도 쓰인 듯 보입니다. 포항 보경사 안 연산폭포 상류 골짜기에서 발견되는 ‘진세밭’ ‘운지밭’ 같은 이름들이 예입니다. 저건 무슨 의미일지 여태 짐작이 안 됩니다. 
 
그런 중에 손바닥만한 평지만 보여도 ‘밭’이라 부르는 경우도 보입니다. 산지(山地)는 대부분 비탈이라 반반한 땅을 찾아보기 힘들다 보니 생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수밭’‘안수밭’ ‘평수밭’ 등의 이름도 쓰입니다. ‘수밭’은 저렇게 자체로도 쓰이고 접두어가 붙어서도 쓰입니다.
 
산촌 어른들은 밭을 한자로 바꿔, ‘산전’(山田) ‘평전’(平田) 등의 개념을 구사하기도 합니다. 산전은 높은 산의 비탈밭을, 평전은 깊은 산골 높은 곳 평평한 밭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한자말이어서 다소 생소할 듯 느껴지기도 하지만 현지 어른들은 이질감 없이 저 용어를 자연스레 썼습니다. 팔공산 권역에서는 평전이 ‘펀전’ ‘퍽정’으로 변해 발견되기도 합니다.
 
‘무슨 등’ ‘무슨 등’ 하는 이름은 보다 널리 사용됩니다. 한자로 ‘嶝’이라 쓰는 저것은 ‘등성이’의 준말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길이가 긴 것은 간단히 ‘진등’이라 불렀습니다. ‘긴 등’의 변음입니다. 비가 오면 윗부분이 질척질척해지는 습지성 등성이는 ‘질등’이라 이름 붙습니다. 덩치가 큰 것은 ‘큰등’이 되겠지요.
 
등성이가 해당 산덩이 전체를 가리키다보니, 저 등 이름은 그대로 봉우리의 이름이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고래 등 같이 널찍하다고 해서 ‘고래등’, 바가지를 닮았다고 해서 ‘바가지등’이라 붙는 이름도 그런 경우에 속할 것입니다.
 
‘덤’이라는 지형 인식도 특별합니다. 툭 불거진 지형을 말합니다. 한자로 표기할 때는 ‘臺’(대)라는 글자가 선택돼 온 듯합니다. 덤의 대부분은 절벽 암괴입니다. 
 
저런 지형에서는 시야가 잘 확보됩니다.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맹금류에게도 저런 지형은 매우 요긴할 것입니다. 거기 앉아야 아래를 내려다보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에 부엉이가 앉으면 부엉덤(부엉더미), 수리가 앉으면 수리덤(수리디미), 매가 살면 매바위, 두루미 같이 희고 청아한 조류가 자리 잡으면 ‘학소대’(鶴巢臺)라 불립니다.
 
‘듬’도 있습니다. 이것은 개별 마을들을 가리킬 때 주로 쓰입니다. 아랫듬(아래 있는 마을), 윗듬, 한듬(큰마을), 새듬(새로 생긴 마을) 등등이 예입니다. 저 ‘듬’은 때로 ‘땀’으로 변형돼 나타나기도 합니다.
 
널리 쓰이는 용어이더라도 각 지역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재’라는 말이 포항에서 그렇다고 했었습니다. 
 
다섯째, 옛 농촌 산촌 어른들은 지형지물의 이름을 인공적으로 지어다 붙이려 들지 않았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애써 지어 붙이려 들기 전에 대부분 자연 생성됐음에 틀림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에선 우리 토박이말이 주를 이뤘을 것입니다. 한자 사용 인구가 증가한 것은 아주 뒷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유통되는 지명 중에는 한자로 이뤄진 게 적잖습니다. 매우 현학적인 것이 있고, 뭘 말하겠다는 지 뜻 모를 것들도 상당수입니다.
 
현학적인 것에는 옛 지식층 호사가들이 붙여 유통시킨 것이 포함됐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지는 못할 터입니다. 그 시절 그럴 수 있는 인구가 극히 적었던 데다, 그래 놔봐야 민간 유통에 이르기까지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쓰이지는 못한 채 옛 문집들에 갇혀 발견되는 지명들이 그 방증이리라 싶습니다. 
 
지금 유통되는 한자이름의 대부분은 누군가에 의해 이뤄진 조작의 유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연발생 명칭에 조합이 가해지고 한자화 되면서 왜곡돼 빚어졌을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뜻 모를 이름이 숱해졌습니다. 우리말 음을 적기 위해 이두(吏讀) 식으로 사용했을 한자가 뜻을 가진 것으로 오해돼 왜곡을 부른 경우도 매우 흔합니다.
 
언어에 대한 조예 없이 얕은 나부랭이 한자 실력이나 갖춘 지식층의 폐해가 매우 큰 듯합니다. 그런 중에 일본제국이 1914~18년 사이 사상 처음으로 지형도를 발행하며 땅이름을 등재하는 과정에서 상황이 더욱 나빠졌습니다. 산뿐만 아니라 동네 이름들도 그 때 대부분 조작되고 왜곡되고 변질됐습니다.
 
한 마디로, 한자 이름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한자 이름은 대부분 왜곡된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뜻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선조들이 쓰던 본딧말, 즉 우리 토속어로 된 이름을 찾아내 복원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게 옳겠습니다.
 
그럼, 저런 왜곡을 모두 제척한 다음에 남는 이름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 선조들은 어떤 방식으로 지형지물의 이름을 붙였을까요?
 
옛 어른들은 가장 기본적으로, 현장에 있는 그 무엇(地物)을 들어 그곳 산을 가리켜 보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상사바위’가 있는 산덩이는 그냥 ‘상사바위’라 가리킵니다. 홀로 선 소나무가 있는 지형이면 ‘외솔박이’, 우뚝 선 바위가 있는 곳은 ‘선바위’, 족두리를 닮은 바위가 있는 지형이면 ‘족둘바위’(족둘뱅이)라 부르면 통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렇게, 바위들은 산 이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지물(地物)입니다. 산에서 특징지을 만한 무엇이라고는 바위 외에는 흔하지 않겠기 때문입니다.
 
산 속 절의 이름이 그대로 그곳 땅덩이를 가리키는데 원용된 경우도 숱합니다. 거기서 ‘사’나 ‘암’을 떼어버리고 앞부분만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극락사가 있던 산덩이는 ‘극락이’, 상태사가 있던 산은 ‘상태’, 보림사가 있던 곳은 ‘보림이’를 거쳐 ‘보리미’가 됩니다.
 
거기서 조금 나간 방식은 현지에 흔한 초목의 이름을 끌어다 쓰는 것입니다. 가래풀이나 가래나무가 많은 골은 ‘가래골’이라 하다가 ‘가라골’로 변음해 부르기도 하는 게 예입니다. 
 
‘가라골’ 비슷한 것에는 ‘가락골’도 있습니다. ‘가락골’은 좁고 긴 골짜기의 한 종류입니다. 그런 골 중 그냥 긴 골은 ‘긴골’, 보통 수준으로 가늘고 긴 골은 ‘가는골’, 홈을 파 놓은 것처럼 좁고 긴 골은 ‘홈골’ ‘홈실’입니다. 더 가늘고 길면 ‘바늘골’ 혹은 ‘바느실’, 가락처럼 가늘고 길면 ‘가락골’이 됩니다. 가락은 ‘물렛가락’에서 온 말이라 합니다. 물레질 할 때 실을 감는 쇠꼬챙이가 저것입니다.
 
달이 떠오르는 봉우리라 해서 ‘달뜨기’라 불리는 지형도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한자말로 ‘월출봉’인 셈입니다.
 
정월 보름날 동네사람들이 함께 올라 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봉우리는 ‘달 보는 산’, 줄여서 ‘달본산’이 됩니다. 이걸 한자로 바꾼다면 ‘망월산’(望月山)이 되겠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봉우리는 간혹 ‘달봉산’이라 변질돼 있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지형지물이 없는데도 가리켜 보여야 서로 간 소통에 좋을 지형에는, 모양이 비슷한 생활주변의 물건들 이름을 갖다 붙였습니다. 산줄기가 칼날같이 날카로우면 ‘칼등’, 넓적 평평하면 ‘고래등’이라 합니다.
 
봉우리가 크고 둥글 넙적하면 ‘두루봉’ 혹은 ‘두리봉’, 퉁퉁하니 목 짧고 배부른 단지를 닮았으면 ‘단지봉’, 시루를 닮았으면 ‘시루봉’ 혹은 ‘시리봉’, 둥그렇게 향로를 닮았으면 ‘향로봉’입니다. 반대로 뾰족이 솟아 붓끝을 닮았으면 ‘필봉’(筆峰)이 됩니다. 
 
봉우리는 또 서민이 쓰는 우비를 닮았으면 ‘삿갓봉’, 관원이 쓰던 ‘탕건’을 닮았으면 ‘탕건봉’, 벼슬아치가 쓰던 모자를 닮았으면 ‘감투봉’, 장군이 쓰던 투구를 닮았으면 ‘투구봉’입니다. 의전용 갓이 비를 맞지 않도록 덮어쓰는 갈모를 닮았으면 ‘갈모봉’, 그랬다가 그게 변음 되면 ‘갈미봉’, 그 아래 있는 재는 ‘갈미재’라 하는 것입니다.
 
재는 도마를 닮았으면 ‘도마재’, 마당 같이 펀펀하면 ‘마당재’, 위가 질퍽질퍽하면 ‘질등재’입니다. 모습에 특징이 없을 때는 그 아래 있는 골짜기 이름을 끌어다 재 이름으로 씁니다. 구룡골로 해서 올라가는 재는 ‘구룡골재’, ‘수밭’에서 오르는 재는 ‘수밭재’가 되는 것입니다.
 
재 이름에는 도달하려는 목표지점 이름이 쓰일 때도 있습니다. 그 재를 넘어 다니는 사람이 주로 누구인지까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명칭입니다. 덕동 가는 데 주로 쓰이는 재는 ‘덕동재’, 생알 쪽으로 넘는 행인이 주류인 재는 ‘생알재’로 불립니다.
 
재를 한자로는 ‘岾’라 쓰고 ‘재’라 읽습니다. 한자사전이 그러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절 이름으로 쓰일 때는 ‘금강산 유점사’처럼 ‘점’이 되는 그 한자입니다. 
 
그런데도 중요한 옛 지리지를 번역하는 전문가들까지 저걸 ‘점’이라 읽어둔 걸 본 적 있습니다. 우리의 산에 대해 몰라서 빚어진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저래 읽어서는 그 소중한 동국여지승람의 말뜻조차 알아듣기 힘들어집니다. 산을 모르고는 제대로 말하고 소통하기 힘든 게 우리네 지리이고 옛 어른들의 생활임을 일깨우는 사례입니다.
 
재는 고개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고개 중에는 더러 ‘티’란 이름을 가진 것도 있습니다. ‘소티’‘태티’같은 게 예입니다. ‘한티’는 전국적으로 흔한 고개이름입니다. 크다는 뜻의 ‘한’과 ‘티’가 조합된 것입니다. ‘고개 현’이라 읽히는 峴자를 써서 ‘대현’(大峴)이라 한역해 표기하기도 하지요. 
 
‘티’는 포항 등 동해안 권역에서 흔히 ‘태’로 나타납니다. ‘티’뿐 아니라 ᅵ(이)로 끝나는 말은 많은 경우 저런 발음을 보입니다. 그래서 ‘잔치’는 ‘잔채’가 되기 일쑤입니다. 이런 특별한 방언도 이해해야 지명을 제대로 살필 수 있습니다.
 
고개는 때로 한자를 써서 무슨 현(峴) 무슨 령(嶺) 무슨 치(峙)로 불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嶺은 아무래도 길고 높은 산줄기를 먼저 연상시킵니다. 거길 넘어 다니니 거기 나 있는 고개도 포함해 가리킬 수는 있겠으나, 고개 자체만 떼어서까지 嶺이라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고개로 쓰이는 재 중에는 ‘미기’라는 말을 어미(語尾)처럼 달고 있는 게 발견됩니다. 요즘 사람들로서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듣기 쉽지 않은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지도에서는 유사하나 같지는 못한 ‘사이비’(似而非) 표현들로 왜곡돼 나타나는 경우가 숱합니다. 이것 또한 우리의 전통지리를 몰라 초래된 안타까운 일입니다.
 
‘미기’는 ‘목’에서 온 것입니다. 동물의 목(neck)이 그것입니다. 목은 잘록합니다. 머리와 몸체를 잇는, 둘보다 상대적으로 가는 부분이지요.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인 재가 주는 느낌이 저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 듯합니다. 
 
저 표현을 쓸 때 옛 어른들은 그냥그대로 ‘목’이라 하지 않고 ‘이’를 덧붙여 ‘목이’라 하다가 ‘모기’ ‘뫼기’라 하고, 결국엔 ‘미기’라 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발음하기에 ‘목’은 딱딱하나 ‘미기’는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음성학적으로 얘기하면, ‘목’은 입 안의 공기 압력을 밖으로 내 보내지 말고 발음을 마쳐야 하는 소리입니다. 발음을 위해 모았던 공기를 폐 속으로 다시 집어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발음방식을 ‘내파’(內破․Implosion)라 하고, 그런 소리를 ‘내파음’(內破音)이라 합니다. 발음하기 힘 드는 만큼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하는 소리입니다.
 
반면 ‘미기’라 바꾸면 발음하기 매우 부드러워집니다. 소리가 몸 밖으로 자연스레 흘러나가기 때문입니다. 저런 소리는 ‘외파음’(外破音)이라 대비시킨다 합니다.
 
‘무슨 미기’라 할 때는 저 잘록한 부분이 닮은 어떤 물체의 이름을 앞에다 갖다 씁니다. 새 목을 닮았으면 ‘새미기’, 노루 목을 닮았으면 ‘노루미기’, 기와를 닮았으면 ‘기와미기’ 하는 식입니다. 두 말을 붙여서 복합어로 만든 것이지요.
 
이쯤까지는 그래도 조금 노력하면 놓치지 않고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런 이름들을 한자로 바꿔버리면 그 이후엔 영영 행방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자에 익숙지 못한 세대가 늘어나는데다, 한자화된 것인 줄 모르고 우리 토박이말처럼 또 변음 시켜 버리는 게 원인입니다. 
 
저 ‘목’ ‘미기’를 한자로 쓰면 ‘項’(항)이 됩니다. ‘목 항’이라 읽지 않습니까. 새는 ‘鳥’(조), 노루는 ‘獐’(장)이고 기와는 ‘瓦’(와)입니다. 새미기는 ‘조항’(鳥項), 노루미기는 ‘장항’(獐項), 기와미기는 ‘와항’(瓦項)이 됩니다. 더러 듣던 지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울산 울주군과의 경계에 있는 경주 산내면 마을의 전래 명칭이 ‘와항’입니다. 법정리가 ‘대현리’인 걸 보면 두 고을 사이를 이어주는 재가 ‘큰고개’ 혹은‘한티’라 불렸던 듯합니다. 그 고개가 완만하게 굽는 기왓장을 닮아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와항은 그래서 붙게 된 마을이름일 터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 마을 본명이 ‘와항’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만나기 매우 힘듭니다. 한티 혹은 큰고개라 불렸을 저 고개조차 이제는 현지에서 아예 ‘외양말랭이’라고만 통합니다. 옛 이름을 모두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와항이 한자이름인 줄 알았으면 외양으로까지 변질되지는 않았겠지요. 
 
재가 고개가 되지 못할 때는 그냥 생긴 모습대로 ‘잘록이’라 불릴 때가 많았습니다. 듣기 선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저런 좋은 말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한 결과인 듯, 지금의 등산객들은 ‘안부’(鞍部)라는 어려운 한자말을 힘들여 갖다 씁니다. 이 또한 잘록함을 강조하는 용어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우리 땅이름들은 이렇게 곡절이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도 인정해야겠습니다. 그 말을 써 줄 사람들의 산에 대한 태도나 언어습관이 옛 어른들과 다르다는 사실 또한 당연히 중시돼야 합니다. 옛 것을 지키려는 것은 좋으나, 그러다 아예 외면시켜 버리면 오히려 손상시키는 결과만 빚지 않겠습니까.
 
뭣이 필요할까요? 리모델링입니다. 옛 땅이름을 가능한 한 현대감각에 맞게 전환시켜 주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 이름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 부활하고 영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시 예 들건대, 봉우리인데도 ‘봉’이라는 말이 안 들어간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의 말랭이’라는 게 대표적입니다. 산에 익숙지 못한 요즘 사람들로서는 봉우리 이름인 줄 알아채기 힘든 유형입니다.
 
저 명칭은 ‘무슨 봉’ 혹은 ‘무슨 등’이라고 바꿔 놓아야만 현대에서도 생명을 얻어 유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림이 말랭이’는 ‘신림봉’, ‘안수밭 말랭이’는 ‘안수밭등’으로 현대화하는 게 좋겠습니다. 앞서 봤듯 이때 붙이자는 ‘등’은 우리 선조들이 예부터 써 온 말입니다. 한자로 ‘嶝’이라 쓴다고 했던 그것입니다.
 
‘재’라 불러온 봉우리도 이제는 ‘봉’ 혹은 ‘산’으로 이름을 바꿔줘야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저런 시도를 병행해 나갈 것입니다. 전래 명칭과 병용하되, 가능하면 괄호 안에 넣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박종봉 투데이포항 고문)
투데이포항 기자  snlim48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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