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 느닷없이 총성이 올렸다. 육영수 여사가 쓰러졌다. 암살자는 문세광이었다. 이 만행을 스크린에 소환해온 극영화 <암살자(들)>이 그렇잖아도 두 갈래로 쫙 찢어진 한국사회를 더 찢어놓는 중이다. 오늘 필자는 십 년도 더 묵은 책 한 권을 꺼냈다. 이대환 작가의 저서 <박정희와 박태준-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이다. 이 작가의 글을 필자는 애독하는 편이다. 장편소설 <붉은 고래>, <슬로우 불릿>, <총구에 핀 꽃>, 평전 <박태준 평전>, 실록 <박정희와 박태준-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 에세이집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대환 작가는 어느 강연에서 소설의 허구와 작가의 상상력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겠으나, 필자의 기억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던 것으로 남아 있다. “소설가(작가)의 특권은 상상력이고, 이 상상력이 소설의 특권인 허구를 만든다. 소설의 허구는 결코 거짓말을 짓는 도구(수단)가 아니다. 소설의 허구는 흩어진 ‘사실들’을 유기적으로 엮어서 ‘진실’을 복원하기 위한 도구(수단)이다. 그러한 허구를 활용하는 것이 소설가(작가)의 상상력이고, 이것이 곧 그의 특권이다.” 극영화 <암살자(들)>의 제작진은 이 영화에 대해 분개하는 목소리들을 향하여 황급히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방패를 들이대고 있는 형국이다. 필자의 눈에는 제목부터 수상쩍어 보인다. ‘암살자’가 아니다. 이렇게 단수로 붙였으면 문세광이 암살자가 된다. 하지만 ‘들’이라는 복수 접미사를 왜 붙였을까? ‘들’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음모’를 슬며시 불러들이는 뒷문인 셈이다. 그것이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말인가? 소설적 상상력과 영화적 상상력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대환 작가가 말했듯이, 둘은 똑같이 허구의 스토리를 창안하여 ‘진실’에 도달하려는 작가정신의 활동영역일 것이다. 물론 극영화와 소설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소설과 전혀 다르게, 극영화는 큰 자본을 투자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사업의 목표는 ‘큰돈’을 버는 데 있다. 최소한 본전을 빼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영화적 상상력”은 ‘큰돈 벌기’와 ‘최소한 본전 빼기’라는 목표에 갇혀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래서 필자는 극영화 <암살자(들)>의 제작진이 들이대는 “영화적 상상력”이란 방패가 마치 장터를 돌아다니는 장사꾼의 풍물 치장처럼 느껴진다. ‘대통령 박정희’는 극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나 <남산의 부장들>에도 이른바 “영화적 상상력”이 제조한 인간으로 등장했다. 그래도 <암살자(들)> 같은 사회적 분열까지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과연 “영화적 상상력”이란 방패로써 이토록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해도 되는 것인가? 필자는 영화들이 덮어버린 ‘박정희의 참모습 일면’과 다시 만나보고 싶어서 실록 <박정희와 박태준—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이란 책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펼쳐놓았다. 벌써 11년 전 광복절인데, 이대환 작가는 머리말을 이렇게 맺고 있다. “건국 완성의 대장정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가를 가늠하기 어려운 광복 70년, 그 시련과 영광을 성찰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가장 한심하게 여기는 것은 정치동네, 권력동네의 후진성이다. 민주화 투쟁시대에 김지하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했는데, 오늘도 우리는 ‘믿음을 주는 정치동네, 신뢰를 주는 권력동네’에 몹시 목말라한다. 다만, 우리의 갈증을 적셔줄 감로수는 광복 70년의 한 지층에서 솟아나고 있다. 이 책은 마르지 않을 그 감로수를 받아놓은 것이다. 우리는 중국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에 익숙하지만 아득한 미래의 어느 날부터 박정희와 박태준이 신뢰에 대한 한국 고사의 단골로 불려나오며 ‘쌍박일심(雙朴一心)’ 같은 사자성어로 거듭날 것이다." 극영화 <암살자(들)>이 초래한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헤아려보는 필자는 ‘국민통합’이라는 절박한 시대정신에 대해 새삼 성찰해보게 된다. 그래서 이 칼럼의 끝에 이대환 작가가 지난 6월 25일 본지에도 게재했던 좀 긴 글 중에 ‘국민통합’ 부분만 불러내서 첨부해두기로 한다.   [첨부하는 글] 이재명 대통령님께 드리는 건의 편지 이대환(작가) “저는 실용팝니다.” 첫 질문에 첫 대답이 워낙 딱 부러져서 선언으로 들렸습니다. 그랬습니다. 좌파냐 우파냐, 이 프레임을 거부하는 ‘실용파’라는 뜻이었습니다. 2021년 이맘때 토요일, 경기지사 관사. 이재명 경기지사는 코로나19 mRNA 백신을 맞고 쉬는 하루였는데 한꺼번에 내리 10시간쯤 줄기차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대중가요 <안동역에서>를 잠시 불러왔던 기억도 남았습니다. 저녁 식사는 똑같이 빵으로 때웠지요. “실용파의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헤어지는 악수에 앞서 저는 저서를 증정했습니다. <박태준 평전>이었습니다. 2021년 12월 13일 ‘박태준 선생 10주기’ 그날에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포스텍(포항공대) 노벨동산 ‘박태준 조각상’에 묵념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2025년 4월 28일에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서울 현충원 ‘박태준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그해 6월로부터 어느덧 5년이 흘러간 오늘, 어쩌면 저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하실 것 같아 서두를 저렇게 꺼내고서는, 5년 만에 처음 해보는 소통 방식이 ‘건의 편지’입니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더 바람직할 건의사항은 두 가지로 ‘국민통합’과 ‘K-NCL 설립’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 올해 12월 5일에는 경북 구미시 ‘박정희 대통령 생가’ 어디쯤에다 국민통합의 주춧돌 같은 ‘소박한 기념물’을 세우면 참 좋겠다는 건의를 드립니다. 1997년 12월 5일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를 외치는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그곳으로 안내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외아들도 함께 했습니다. 그때 박 총재의 전화를 받고 실무를 챙긴 사람은 김대중 캠프의 젊은 일꾼 김민석 의원(현 국무총리)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주 많겠습니다만, 김대중 선생은 진솔하고 아름다운 화해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 장면의 사진 한 장도 잘 보관돼 있습니다. “고인이 경제에 7할을 바치고 인권에 3할을 쓴 분이었다면, 고인과 정치적으로 대결하던 시절의 나는 인권에 7할을 바치고 경제에 3할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고인과 나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엄중한 시대적 과제인 국민통합, 그 주춧돌은 이미 1997년 12월 5일 그렇게 놓였습니다. 거의 서른 해를 방치했으니 새까만 이끼로 덮였겠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국정지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지 않았습니까? ‘통합의 정치’가 국민통합의 대로를 열겠습니다만, 정치 현장에는 ‘통합의 정치’를 ‘정치의 통합’으로 호도하는 목소리도 높은 편입니다. 정치세력들이 하나로 결속한다면 그것이 바로 독재정치이거늘, ‘통합의 정치’란 김대중 선생의 화해 말씀에도 함축됐다시피 서로가 상대의 공적과 과오를 인정하면서 서로가 합리적으로 비판하며 경쟁하는 정치라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화해 없는 통합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억지로 꿰맨 봉합에 불과하여 머잖아 실밥이 툭툭 터져버릴 테지요. 국민통합을 가로막는 장벽 쌓기에는 저급하기 짝이 없는 정파적 이념대립이 앞장서는 형국입니다. 특히 양극 지대를 점거한 목소리들이 휴대폰을 통해 집요하게 정파적 이념대립의 대중 세뇌를 반복하지 않습니까? 이 부조리한 현실을 타개할 방책의 하나는 더 근본으로 들어가 ‘박정희 통치 18년 들여다보기’가 아닐까 합니다. 마치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역사의 동일 무대에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상충관계를 드러냈으나 실질적으로는 상보관계로도 작동하였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으로 우뚝 일어섰을진대, ‘공(功)이 과(過)를 덮을 수 없고 과가 공을 허물 수 없으며, 공은 계승해오고 있고 과는 극복해오고 있다’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역사 상식으로 굳건해지는 날이 온다면, 우리 후세가 김대중 선생의 저 말씀을 바르게 읽어내고 실천하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소망에서 박태준 선생의 제의를 받았던 그날 김대중 선생의 화해 말씀을 올해라도 국민통합의 귀중한 주춧돌로 기려야 마땅해 보여, 이렇게 건의를 드립니다. 정파적 이득계산에 매몰된 여의도의 현실정치란 그나마 좋게 봐서 차선 또는 차악을 주고받는 전투적 협상 과정이라는 주장에 대해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용인할지라도, 역사는 늦게 오는 자를 처벌한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긴 정치세력마저 현실정치의 고질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여, 지금 여기서 더 늦기 전에 국민통합의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는 역사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실행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징비록>의 몇 문장 같은 통한의 기록으로 남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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