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통과의례, 안개지나간 청춘의 시절은 누구에게나 어렴풋하고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건 청춘의 자리마다 자신의 시야를 에워싸는 짙은 안개를 누구나 마주한 적 있기 때문이리라. 그때 우리는 원하는 모든 걸 쟁취할 것 같은 기세로 청춘의 문턱에 들어섰..
누군가의 입을 대신한다는 것좀처럼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를 헤쳐가다 보면 우리가 어김없이 마주하게 되는 평범한 진실이 있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세상 어느 곳이나 사람의 삶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나 혼자만 인간관계에 유난히 서툴고 지나친 감정 소모로 힘든 ..
타자의 이해를 위한 출발점사실 우리는 타자에 관해 잘 알고 있다며 착각하고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건 상대방이 가진 지극히 작은 부분임에도 마치 전부인 양 단정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존에 통용되어오던 선험적인 잣대를 가지고 상대방의 ..
숨은 신과 비극적 인간어쩌면 신은 우리에게 세계의 비극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종교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인식의 결과라기보다 지극히 실존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인식의 결과이다. 우리 인간은 사실상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의 우연한 사건처럼 ..
남은 자의 싸움 이야기2018년 12월 11일 새벽 3시 23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 있는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끼어 숨긴 채 발견되었다. 당시 24살이었던 이 청년 노동자는 바로 김용균으로,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의 비정..
슬픔이 생활이 된다는 것아이러니하게도 시는 우리 삶과 필요충분조건을 이루고 있다. 범박하게 말해 시는 어떠한 상실감의 급습으로 인해 찢어진 마음을 봉합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지탱하던 진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리고 살가운 사람들이 유령처럼 사라져버리는 현..
마음챙김의 시대우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의 위기에 봉착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잠시 나와 멀리 떨어져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안다.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하면서 내 삶은 누추하고 팍팍하기만 하고, 생활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앞날은 불투명하기..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우리는 사실 홀로 있음을 견디지 못한다. 아니, 세상이 좀처럼 우리가 홀로 있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이곳저곳에서 나를 찾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바쁘고, 가깝든 멀든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매스컴에서..
씨뿌린 사람, 백신애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목우(牧牛) 백기만(1902~1967)은 생전 《씨뿌린 사람들》(1959)이라는 귀중한 책을 펴낸 적 있다. “경북 작고 예술가 평전”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대구 경북 출신의 예술가 중 10명을 선정하여 이들의 ..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내용적인 측면에서 보건대 예술은 유독 사랑과 이별에 집착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대중가요를 한 번 들여다보기만 해도 안다. 이른바 사랑 노래와 이별 노래가 대중가요의 거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에 대해 우리가 사랑 노..
미각에 관한 망각우리는 늘 먹고 있으나, 먹는 동안 어딘가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망각은 한 순간에 일어난 사건과 같은 것이라기보다 여러 단계에 걸쳐 분출된 재난에 가깝다.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먹는다는 것은 어느 순간 익숙한 일이고, 습관적인 일이 되어버..
예술가의 재능과 예술가의 삶후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예술가의 재능은 동시대의 현실과 불화한 산물이다. 예술 자체가 애초 기성의 현실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으려는 창조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술가의 의식은 기존의 현실로부터 오는 타성을 거부하고 지금 여기와는 다른..
증언의 층위와 증언의 주체외부의 끔찍한 폭력성에 노출된 인간은 자기 경험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가 살아있는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명이기에 개인적으로 중요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그는 시시때때로 현재를 잠식하는 지옥과 같은 과거로부터 자신을 구출하려..
노래에게 삶의 길을 물었다청춘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아마 노래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세대마다 다르겠지만, 분명 노래는 한 시절을 뜨겁게 달구는 힘을 내장하고 있기에 순수와 열정을 뿜어내는 청춘의 심장에 상응한다. 돌이켜보면 필자 역시 그러했다. 필자가..
생활인과 시인 사이의 길지극히 당연한 말이겠지만 시인은 시인이기 이전에 일종의 생활인이다. 물론 이는 그가 순전히 밥벌이를 위한 생존경쟁의 현장에 들어가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생활은 그가 한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실존의 근거가 되고 그의 문학적인 상상력에..
슬픔에 관한 오해를 찾아서일생에 걸쳐 진정 한국인을 사랑했던 한 일본인이 있다. 바로 일본의 사상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일제가 조선 민중을 무력으로 무참하게 진압하는 행위를 목도하고서 피식민지 민족의 입..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이른 아침부터 한 청년이 다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현관문을 두드린다. 곧 잠옷 차림의 한 노인이 등장하고, 청년은 그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전 사랑에 빠졌어요.”“심각하진 않아, 치료약이 있어.”“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
유적지에 새겨진 인류의 꿈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누구이고, 대체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의 말년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이 질문에는 물론 자아를 둘러싼 횡적인 축과 종적인 축에..
구원의 장소와 성찰의 장소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구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꿈꾼다. 그러면서 비속한 이곳과는 다른 자유로운 곳을 내다보지만, 그곳은 우리의 시야가 닿을 수 없을 만큼 요원하기만 하다. 어쩌면 구원이란 까마득한 먼 곳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
[우리가 잘 잊고 사는 몸의 감각]우리는 자주 몸에 속고 산다. 지금 눈앞에 있는 현상이야말로 사실이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실의 정확함이 세계의 진리를 증명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꼭 삶의 진실에 가닿는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우리가 괴물처럼 비대해진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