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최초로 사람의 이름을 딴 기차역이 있다. 바로 경춘선을 잇는 김유정 역이다. 어쩌면 소설가 김유정을 모르는 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순박하면서도 애처로운 느낌이 물씬 드는 그의 소설 〈동백꽃〉, 〈봄·봄〉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으리라. 그만큼 김유정의 소설은 딱딱한 교과서를 넘어 오랜 시간 우리의 감성을 어루만져온 국민소설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인가. 우리가 김유정 역을 지나갈 기회가 있을 때면 왠지 모르게 알싸한 동백꽃에 이끌린 듯 내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그럴 때 김유정 역은 이름의 상징성만큼이나 김유정이라는 한 사람의 세계로 서행할 수 있는 환승역으로 탈바꿈한다. 김유정 역 인근에 있는 김유정문학촌은 2002년 8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으나 이제는 춘천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인 것을 넘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관광명소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김유정문학촌은 김유정생가, 김유정기념전시관, 김유정이야기집, 낭만누리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이 기본적으로 문학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김유정문학촌에서 다음과 같은 특색을 발견할 것이다. 먼저, 우리는 이곳에서 소설가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 살다 간 김유정의 숨결과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문학촌이 위치한 곳은 김유정이 태어났거니와 그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각별한 애정을 쏟은 고향, 즉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김유정문학촌과 그 부근에서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된 생가를 비롯하여 그가 야학을 통해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던 금병의숙의 흔적과 만나볼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서 각양각색의 매체를 통해 구현된 콘텐츠로 김유정의 삶과 문학을 보다 입체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 말하자면, 김유정문학촌에서는 인쇄매체에서부터 디지털매체에 이르기까지 다매체를 통한 콘텐츠를 구축함으로써 우리가 김유정의 삶과 문학에 다채롭게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오랫동안 인류의 의사소통을 담당해온 음성언어, 문자언어를 넘어 시각 요소, 청각 요소, 공간 요소 등이 어우러진 복합양식성(multimodality)을 통해 전시 내용을 구성함으로써 우리의 오감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체험을 선사해준다. 이에 따라 우리는 김유정의 삶과 문학이 우리의 삶과 맞닿은 진정한 앎의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또한, 우리는 이곳에서 김유정의 소설에 등장하는 무대와 등장인물을 향해 실제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기도 하다. 바로 우리는 문학촌 근처에 있는 실레마을 이야기길에서 김유정의 소설에 친근한 뼈대를 제공하던 길목과 만나게 되고, 그 길목마다 갖가지 사연을 지닌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때 김유정이 자신의 주변에서 끌어올린 이야기들은 우리 삶의 다양한 국면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학촌을 나서자마자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면서 자문하게 될지 모른다. 특정한 문인을 기념하고 있는 여타의 문학관과 달리, 이곳에는 어째서 인간 김유정을 보증하는 증표가 그리 적은가 하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김유정이 생전에 남긴 유고, 편지, 일기, 사진, 책과 같은 것들은 평생 그와 가까웠던 소설가 안회남이 월북할 때 가져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쉽게도 이곳에서 김유정의 유품이 풍기는 아우라와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하고 물을 법하다.   밤이나 낮이나 그의 마음은 한없이 어두우리라. 그러나 유정(兪政)아! 너무 슬퍼 마라. 너에게는 따로 할 일이 있느니라. 이런 지비(紙碑)가 붙어 있는 책상 앞이 유정에게 있어서는 생사의 기로다. 이 칼날같이 선 한 지점에 그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면서 오직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울고 있다. (…중략…) 유정과 이상―이 신성불가침의 찬란한 정사(情死)―이 너무나 엄청난 거짓을 어떻게 다 주체를 할 작정인지. “그렇지만 나는 임종할 때 유언까지도 거짓말을 해줄 결심입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하고 풀어헤치는 유정의 젖가슴은 초롱(草籠)보다도 앙상하다. 그 앙상한 가슴이 부풀었다 구겼다 하면서 단말마의 호흡이 서글프다. “명일(明日)의 희망이 이글이글 끊습니다.” ― 이상, 〈실화(失花)〉, 《문장》, 1939.03 그건 아마도 죽음에 임박한 그가 자신의 삶을 향해 내보인 태도에서 연유하였으리라. 그 하나의 단서를 우리는 실화(實話)를 기반으로 쓰인 이상의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김유정은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나기〉가 1등으로 당선되고 그것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상을 처음 만난 후 그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성격으로 봐서나 소설 스타일로 봐서도 서로 다른 그들이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어쩔 도리가 없던 폐결핵 투병으로 인한 동병상련 때문이었을까.   이상은 1936년 10월 일본 동경으로 떠나기 전 김유정을 방문하고서 그에게 동반자살을 제안한다. 예기된 죽음에 굴복하여 패배자와 같이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에 따른 ‘신성불가침의 찬란한 정사(情死)’를 치르자고 말이다. 그 제안을 김유정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수동적 죽음보다 능동적 죽음을 택하려 한 이상보다 수동적 죽음보다는 능동적 삶을 선택하고자 했던 것이다.그러던 유정(柳貞)이 이상(李箱)보다 먼저 죽었다. 살려고 살려고 부둥부둥 애를 쓰던 유정도 나중에는 각오를 했던 모양이다. 그의 머리맡 벽 위에는 어느 사이에 겸허(謙虛) 두 글자의 좌우명이 붙어 있었다. 나는 이것에 대하여 유정 자신의 설명을 들은 일이 없다. 그러나 송장이 다 된 유정의 머리맡에서 이 두 글자를 보았을 때 그때처럼 나의 가슴이 무거운 때는 없었고, 지금에도 그것을 되풀이하면 여전히 암담하다. 아아, 멍하니 크게 뜬 그의 눈동자, 다른 사람이 아니고 유정이가 자기의 주검을 알고, 그것을 각오하였다는 것은 참 불쌍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자기를 극도로 낮추어 세상의 온갖 것에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려는 그 겸손한 마음이여. 그것은 정말 옳고 착하고 아름다운 태도이다. ― 안회남, 〈겸허―김유정전〉, 《문장》, 1939.10 김유정과 얽힌 일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에서 안회남은 죽기 직전 김유정의 마지막 모습을 전하고 있다. 이때 폐결핵과 사투를 벌이던 김유정이 머리맡 벽에 붙여둔 ‘겸허(謙虛)’라는 두 글자는 그가 죽음을 체념했다는 것과 그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준다. 죽음 앞에서 겸손한 자는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존중하고 그 앞에서 자신을 극도로 낮출 줄 아는 사람이리라. 그렇게 병상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김유정의 소설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낮고 보잘 것 없지만 더없이 순박하고 건강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무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강렬한 삶의 충동을 놓지 않았던 김유정은 죽음을 앞질러 달려간 이상보다 보름 정도 앞서 한강의 물 위에서 사라졌다. 최근 재단장을 한 김유정문학촌에는 김유정이 생전 다하지 못했으나, 그의 삶을 지핀 불씨였던 겸손이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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