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단단한 바위가 순식간에 녹아 금속으로 변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국내 연구진이 이로 구현했다. 산화물 박막이 ‘절연체’에서 ‘금속’으로 바뀌고, 동시에 새로운 자기적 성질까지 나타나는 놀라운 전환이 확인된 것이다. 최근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신소재공학과 한현 교수, 이동화 교수 연구팀, KENTECH(한국에너지공대) 오상호 교수 연구팀은 엑솔루션(exsolution)’ 과정에서 산화물 내부 결함과 금속 나노입자의 형성을 정밀하게 제어해, 전기적·자기적 성질이 동시에 급격히 변하는 현상을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엑솔루션(exsolution)’은 산화물 안에 있던 금속 이온이 환원 환경에서 표면으로 이동해 나노입자로 ‘튀어나오듯’ 석출되는 현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노입자는 산화물 표면에 반쯤 박혀 있어 일반적으로 증착된 나노입자보다 훨씬 안정하다. 이 때문에 연료전지나 촉매 같은 에너지 기술에서 꾸준히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그동안 엑솔루션이 단순히 ‘나노입자를 만드는 과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지, 특히 물질의 전기적·자기적 성질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엑솔루션 현상을 정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특이한 구조의 산화물 박막(La₀.₂Sr₀.₇Ni₀.₁Ti₀.₉O₃-δ*)을 모델 시스템으로 설계했다. 그리고, 이 물질은 여러 원소가 서로 자리를 바꾸고 빈자리(결함)도 존재하는 구조지만, 초기 상태에서는 이 요소들이 서로 전하를 보상하며 전체적으로는 ‘절연체’ 성질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실험과 계산을 통해 밝혀냈다.   *La₀.₂Sr₀.₇Ni₀.₁Ti₀.₉O₃-δ: 스트론튬(Sr)과 티타늄(Ti) 기반 산화물에 란타넘(La)과 니켈(Ni)이 일부 치환된 구조 박막으로 여러 금속 원소가 섞이고 일부 원자 자리가 비어 있는 복잡한 구조다. 이후 환원 조건에서 엑솔루션을 유도하자 성질은 완전히 달라졌다. 박막 내부와 표면에 니켈(Ni) 나노입자가 형성되며 결함 구조가 재배열됐고, 그 결과 전자 구조 역시 변화했다. 특히, 란타넘(La)이 도핑된 스트론튬 타이타네이트(SrTiO₃)와 유사한 형태의 전자 구조로 전환되면서, 원래의 절연체 상태에서 벗어나 전자가 풍부한 금속 상태로 변화했다. 실제 전기 저항은 1,000배 이상 감소하며 뚜렷한 ‘절연체→금속’ 전이 현상이 관찰됐다. 더 흥미로운 점은 자기적 성질의 변화다. 초기 상태에서는 반자성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엑솔루션 이후 생성된 니켈 나노입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상온에서 ‘초상자성(superparamagnetism)’이 나타났다. 이는 나노입자들이 외부 자기장에는 반응하지만, 자기장이 사라지면 다시 무질서하게 돌아가는 독특한 상태다. 이번 연구는 엑솔루션이 단순히 물질 표면에 금속 나노입자를 형성하는 기술을 넘어, 산화물 내부의 전자 구조와 결함 상태를 재구성해 전기적·자기적 특성을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POSTECH 한현 교수는 “이 기술은 향후 전자소자나 스핀트로닉스 소자 설계에도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천기술국제협력개발사업과 신진연구사업, Max Planck Partner Group 프로그램, 삼성전자 DS부문 지원으로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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