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용팝니다.”
첫 질문에 첫 대답이 워낙 딱 부러져서 선언으로 들렸습니다. 그랬습니다. 좌파냐 우파냐, 이 프레임을 거부하는 ‘실용파’라는 뜻이었습니다.2021년 이맘때 토요일, 경기지사 관사. 이재명 경기지사는 코로나19 mRNA 백신을 맞고 쉬는 하루였는데 한꺼번에 내리 10시간쯤 줄기차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대중가요 <안동역에서>를 잠시 불러왔던 기억도 남았습니다. 저녁 식사는 똑같이 빵으로 때웠지요. “실용파의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헤어지는 악수에 앞서 저는 저서를 증정했습니다. <박태준 평전>이었습니다. 2021년 12월 13일 ‘박태준 선생 10주기’ 그날에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포스텍(포항공대) 노벨동산 ‘박태준 조각상’에 묵념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2025년 4월 28일에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서울 현충원 ‘박태준 묘소’를 참배했습니다.그해 6월로부터 어느덧 5년이 흘러간 오늘, 어쩌면 저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하실 것 같아 서두를 저렇게 꺼내고서는, 5년 만에 처음 해보는 소통 방식이 ‘건의 편지’입니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더 바람직할 건의사항은 두 가지로 ‘국민통합’과 ‘K-NCL 설립’에 관한 것입니다.첫째, 올해 12월 5일에는 경북 구미시 ‘박정희 대통령 생가’ 어디쯤에다 국민통합의 주춧돌 같은 ‘소박한 기념물’을 세우면 참 좋겠다는 건의를 드립니다.1997년 12월 5일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를 외치는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그곳으로 안내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외아들도 함께 했습니다. 그때 박 총재의 전화를 받고 실무를 챙긴 사람은 김대중 캠프의 젊은 일꾼 김민석 의원(현 국무총리)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주 많겠습니다만, 김대중 선생은 진솔하고 아름다운 화해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 장면의 사진 한 장도 잘 보관돼 있습니다. “고인이 경제에 7할을 바치고 인권에 3할을 쓴 분이었다면, 고인과 정치적으로 대결하던 시절의 나는 인권에 7할을 바치고 경제에 3할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고인과 나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현재 우리나라의 엄중한 시대적 과제인 국민통합, 그 주춧돌은 이미 1997년 12월 5일 그렇게 놓였습니다. 거의 서른 해를 방치했으니 새까만 이끼로 덮였겠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국정지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지 않았습니까? ‘통합의 정치’가 국민통합의 대로를 열겠습니다만, 정치 현장에는 ‘통합의 정치’를 ‘정치의 통합’으로 호도하는 목소리도 높은 편입니다. 정치세력들이 하나로 결속한다면 그것이 바로 독재정치이거늘, ‘통합의 정치’란 김대중 선생의 화해 말씀에도 함축됐다시피 서로가 상대의 공적과 과오를 인정하면서 서로가 합리적으로 비판하며 경쟁하는 정치라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화해 없는 통합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억지로 꿰맨 봉합에 불과하여 머잖아 실밥이 툭툭 터져버릴 테지요. 국민통합을 가로막는 장벽 쌓기에는 저급하기 짝이 없는 정파적 이념대립이 앞장서는 형국입니다. 특히 양극 지대를 점거한 목소리들이 휴대폰을 통해 집요하게 정파적 이념대립의 대중 세뇌를 반복하지 않습니까? 이 부조리한 현실을 타개할 방책의 하나는 더 근본으로 들어가 ‘박정희 통치 18년 들여다보기’가 아닐까 합니다. 마치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역사의 동일 무대에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상충관계를 드러냈으나 실질적으로는 상보관계로도 작동하였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으로 우뚝 일어섰을진대, ‘공(功)이 과(過)를 덮을 수 없고 과가 공을 허물 수 없으며, 공은 계승해오고 있고 과는 극복해오고 있다’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역사 상식으로 굳건해지는 날이 온다면, 우리 후세가 김대중 선생의 저 말씀을 바르게 읽어내고 실천하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소망에서 박태준 선생의 제의를 받았던 그날 김대중 선생의 화해 말씀을 올해라도 국민통합의 귀중한 주춧돌로 기려야 마땅해 보여, 이렇게 건의를 드립니다. 정파적 이득계산에 매몰된 여의도의 현실정치란 그나마 좋게 봐서 차선 또는 차악을 주고받는 전투적 협상 과정이라는 주장에 대해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용인할지라도, 역사는 늦게 오는 자를 처벌한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긴 정치세력마저 현실정치의 고질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여, 지금 여기서 더 늦기 전에 국민통합의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는 역사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실행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징비록>의 몇 문장 같은 통한의 기록으로 남지 않겠습니까?
둘째, 보건복지부 중심의 K-NCL 설립과 식약처의 규제 과학 혁신에 대한 대통령님의 결단을 건의 드립니다. 지난 4월 1일 산업부가 경남 밀양에 ‘나노 소재‧제품 안정성평가 지원센터’를 개소하여 관련 기업의 수출장벽을 낮추는 기반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이달 11일과 12일에는 ‘글로벌 그래핀 기술교류회’를 개최하고 AI, 반도체, 모빌리티,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에 요구되는 그래핀 상용화와 시장선점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태세를 점검했습니다. 17일에는 산업부가 포스텍과 포항시의 ‘그래핀 2차원 나노 소재 AI 기반 소재·부품 실증기반 구축사업’을 산업혁신기반구축사업에 선정했습니다. ‘그래핀’이라는 꿈의 신소재 개발은 나노기술과 분리할 수 없다고 합니다.이제는 ‘나노신약’ 차례입니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나노신약의 복잡한 유효성 평가와 공정 최적화, 그리고 식약처 승인을 연계하는 나노바이오 메디컬 특화 기관을 시급히 설립해야 한다는, 이를 더는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는 나노신약 연구자들의 절절한 하소연을 경청해주십시오. 어린 시절부터 자부심이었던 ‘큰 귀’를 급히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우리 국민도 코로나19 팬데믹을 이겨내면서 mRNA 백신 유전자를 체내로 안전하게 배달하는 ‘지질나노입자(LNP)’ 같은 나노기술이 인류를 구하고 막대한 부(富)도 창출하는 과정을 체험하고 목격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바야흐로 나노신약이 국가 생존 전략의 차원으로 등극한 시대입니다. 미국은 이미 20년 전부터 보건복지부(HHS) 중심으로 국립보건원(NIH)-국립암센터(NCI)-나노물질분석랩(NCL)-식품의약국(FDA)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Fast-Track(고속도로)을 구축해뒀다고 합니다. 이래서 모더나 같은 바이오벤처도 mRNA 백신을 그토록 신속하게 승인받아 제조하고 수출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세계적 수준의 나노바이오 연구 인력을 수없이 보유하고 있으나 나노신약의 복잡한 특성을 뒷받침할 전문적인 공공지원 인프라의 빈약과 규제 과학의 미비 때문에 임상시험에도 진입하지 못하고 ‘규제의 벽’에 막혀 산업화의 ‘Death Valley(죽음의 계곡)’를 건너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나노신약에는 까막눈인 작가에게 K-NCL 설립과 규제 과학 혁신의 긴급한 절박성을 들려준 연구자는 포스텍 출신의 홍병희 서울대 화학과 교수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나 지역균형발전을 중시하는 홍 교수는 ‘그래핀’ 상용화 기술을 확립하여 포항에 본사를 두고 포항에서 올해 하반기 안에는 양산 체제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의 더 원대한 꿈은 나노기술로 치매 치료 같은 블록버스터 나노신약을 개발하여 인류 건강과 국부 창출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희망의 파이프라인들을 보유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홍 교수의 그래핀 논문은 근년 들어 인용지수가 제일 높을 뿐만 아니라 상용화 도전에 성공하여 ‘노벨화학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이라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국가대표 축구 경기에서 일본에 2 : 0으로만 져도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우리 국민이 노벨과학상 수상자로는 일본에 무려 27 : 0으로 뒤지고 있는데, 홍 교수든 누구든 참담한 영패를 면해줄 최초 골잡이의 출현을 고대해봅니다. 저는 홍병희 교수를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2027년 ‘박태준 탄생 100주년’ 다큐영화 <천하위공 박태준>을 준비하는 가운데 포스텍 출신인 홍 교수와 인터뷰 하면서 K-NCL에 관해 덤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 우리나라도 나노 안정성 기준을 수립하기 위해 NSMC를 출범했으나 이후 열두 해가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K-NCL 설립, 이 대목에서는 말하는 이보다 듣는 이가 더 답답해하는 자리였고, 그것이 대통령님께 건의 편지를 쓰도록 만들었습니다. 두 건의사항에 대한 요지만 밝혔습니다. 관련된 책과 자료와 편지는 등기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K-NCL, 그래핀에 관해서는 청와대든 포항이든 홍 교수와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습니다. 그는 나노연구 인프라와 3세대,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갖춘 포항에 K-NCL을 설립해야 가장 실용적인 선택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K-NCL 최적지에 대한 의견을 전해드리며 새삼 지역균형발전이 얼마나 엄청난 시대적 난제이겠는가를 헤아려 봅니다. 인류는 변함없이 철기시대를 살아가고 종합제철은 변함없이 국가기간산업인데, 지역균형발전의 모범적 거점으로 건재해온 포항이 몇 년 전부터 위험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학자들이나 언론들은 철강산업부터 주목할 테고, 그 분석은 철강의 경제적 위상이 낮아졌다거나 중국의 저가 공세며 미국과 EU의 관세를 앞세우겠으되, <박태준 평전>을 쓴 작가로서 포항을 온통 겪어온 저의 시선에는 그것들보다 더 본질적 요인들이 불거져 보입니다. 포항 사례를 제대로 분석하고 통찰하면 지역균형발전의 소중한 정책적 시사점도 드러날 것입니다. 평양의 리더십을 개방체제에 연착륙하는 방향으로 안내하기란 우리의 역량만으로는 불가한 일로 보입니다만, 국민통합과 쌍둥이 관계인 지역균형발전은 벅차더라도 우리의 역량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어머님의 가없는 사랑과 함께 어머님과의 약속을 영혼에 보듬고 계실 이재명 대통령님.부국강병과 국민행복을 합치면 ‘국태민안’이라는 고색창연한 말이 될 것입니다. <이재명표 실용>의 국정철학이 역사 의지도 움직여 마침내 국태민안의 대성취에 도달하게 되기를 빌어마지않습니다. 그날은 하늘나라의 어머님께서도 얼마나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