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Harmony in Blue and Silver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어떤 서사를 품고 있을까요?저는 이 그림을 볼 때면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after great pain, a formal feeling comes, 번역하면 크나큰 고통 뒤엔, 형식적인 감정이 온다. 정도일까요. 고통의 결정들이 수정이 되고, 후에 납덩이의 순간이 온다는 그녀의 담담한 어조 뒤엔 그리움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크나큰 아픔과 직면하면 오히려 담담한 침잠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곤 시간이 흐르고, 살기 위해 살아가게 되죠. 시간이 약이 되고, 약으로 생채기가 아물 때쯤 그 아픔은 하나의 추억이 되곤 합니다. 살기에 바빠 겨우 살아진. 그러한 동안 사라진, 마음의 생채기가 덧대고 아물 무렵 피어오른 신기루 같은 마음의 상, 그리움. 아주 오래전 한 친구가 편지에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을은 그리움이 움트기에 적당한 습기를 가졌고, 가을 빛깔을 그린 그림은 모두가 신기루 같은 생채기라 하며, 저에게 이 그림을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에밀리 디킨슨의 시도 이처럼 인용했던 것 같고요. 석양을 바라는 것도, 그가 뿜는 한 줄 성긴 담배 연기의 서사도, 웅크리고 앉은 텅 빈 시간의 배회도 모두 신기루를 보았기 때문. 그리움, 이 그림을 볼 때면 그리움이 연상됩니다. 저에게도 그리움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놀랍게도 작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는 이 그림을 통해 그 어떤 서사도 덧입히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림에 사상, 감정, 서사를 입히는 그 모든 행위에 대해 심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모든 부질 없는 것들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예술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오로지 눈과 귀의 미적 감각에 어필해야 하며 그것이 헌신이니, 연민이니, 사랑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상관없는 감정들과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그는 오직 색채를 담는 형태. 톤의 미묘한 변화. 색채의 어울림이 주는 미적 쾌감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휘슬러는 이 이상의 잡다한 간섭은 예술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최악의 독자의 행위라 간주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이 그림에 서사를 덧입히는 행위자인, 그로서 가을의 신기루 사이로 그리움을 찾아가는 저는 가장 혐오스러운 최악의 독자일지도 모릅니다.최악의 독자란 약탈병과 같은 짓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약간 끌어내고는 나머지를 더럽히고 뒤흔들며 전체를 매도한다. 라는 니체의 표현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혐오와 뇌까림의 오명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그림은 분명 그리움입니다. 신기루 같은….2023년 가을….   글쓴이|이재호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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