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오롯이 한평생을 바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 연설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일본에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며,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 이 말은 그가 1998년 10월 일본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 참의원 본회의장에서 행한 연설에서 등장한다. 물론 이 말은 투철한 과거사 인식을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모색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어서 이날 현장에 있던 520여 명의 일본 정치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리라. 어쩌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사가 단순히 지나간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현재 우리의 지반을 뒤흔들 만한 강력한 폭풍이 불어오고 있다는 것을 내다본 인물일 것이다. 이처럼 역사 속의 폭풍을 알아차린 또 다른 인물로 우리는 독일의 문예평론가 발터 벤야민을 들 수 있다. 그는 일찍이 스위스 출신의 추상주의 화가인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었고, 전쟁의 광란이 세계를 뒤덮은 비상 상황에서 이 그림을 역사의 폭풍 속으로 떠밀어 넣고 있다.   이 그림은 전방을 응시하는 한 천사가 날개를 펼친 채 허공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천사가 눈을 크게 치켜뜨고 있고, 벌린 입으로 무언갈 외치고 있으며, 아주 다급하게 날갯짓을 하는 것으로 보아, 어떤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천사를 향해 거대한 폭풍이 불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천사는 지금 폭풍으로 인해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발아래 내팽개쳐지고 쉼 없이 쌓이는 “잔해”를 내다보고 있으며, “그가 등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여지없이 떠밀리고 있다. 이 천사에 대해 벤야민은 “역사의 천사”라는 이름을, 그리고 폭풍에 대해 “진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가 보기에, 우리가 그동안 역사라고 부른 것은 지나간 과거를 폐기하고 무한한 미래를 약속하는 “진보” 그 자체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할 때 역사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의 궤도 위에서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으로 점철된 대상에 불과하다. 옛날의 자취를 그저 완결된 사실로만 기술하는 것만큼 무미건조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보다 진정한 역사는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정지하거나 중단하고 과거의 파편을 현재의 시간 속에 새롭게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벤야민이 말하는 폭풍과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다본 폭풍은 일면 다른 의미를 지니면서도, 결국에는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는 게 아닐까. 이들은 과거와 현재의 관계망에 따라 우리가 직면해 있는 지금 시간(Jetztzeit)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진리를 역사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글에서 벤야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무모하게 겹쳐보고자 했던 것은 달력에서 어김없이 돌아오는 기념비적 날짜, 즉 3·1절의 역사적 의의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 3·1절의 현장에 섰던 순간을 끊임없이 당대의 현실 속으로 호명하고자 했던 함석헌의 글은 역사의 천사를 위한 “작은 문”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한 자료가 된다.그러므로 3·1운동은 우리 역사에서는 한 시기를 짓는 사건이다. 그전의 역사는 정치가의 역사, 지배자의 역사, 영웅주의의 역사였다. 이제부터는 씨알의 역사다. 자주하는 민의 역사다. 그전에도 혁명도 있고 반항운동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귀족계급의 하는 것이었고 군인의 하는 것이었다. 인제부터는 민중이 자각해서 하려는 것이다. 그전에도 민족이 있었고 그 운동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감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사상적인 운동이다. 민족자결이라는 주의 아래 되는 운동이다. 전에는 쿠데타식의 정변으로 하려 했다. 이것은 민의 평화적인 반항으로 하려는 것이었다.― 함석헌,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1959년 3·1절에 부치는 글〉, 《사상계》 69호, 1959.4 3·1운동은 함석헌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의 판도를 뒤바꿔놓은 전환점에 속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3·1운동 전후의 역사를 비교해보면 명료하게 드러난다. 함석헌이 보기에, 3·1운동 이전의 역사는 소수의 강자 혹은 지배자가 다수의 약자 혹은 피지배자 위에 군림하는 억압의 역사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민중들이 자기 삶을 지배하는 자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는 혁명의 주체, 계기, 방식 등의 측면에서도 상당한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함석헌에게 3·1운동은 실패하고 만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를 구분하는 척도가 된 것이 아닌가. 바로 이때 우리는 현재의 시점에서 3·1운동을 새롭게 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함석헌이 3·1운동 이후의 역사를 “씨알의 역사”라는 개념으로 정의한 데서 암시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역사책에서 100여 년 전의 3·1운동을 일본 제국주의의 핍박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운동으로 통용해왔다. 이러할 때 3·1운동은 외부의 충격이나 압력에 대한 반동성의 산물에 그치고, 원한 감정이라는 틀 속에 갇히게 된다. 그보다 3·1운동은, 민중들 자신이 역사의 맹아라는 점을 자각하여 자기의 목소리를 표출하려 했던 능동성의 산물이라고 하면 어떠한가.   이 순간 3·1운동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협소한 관점에서 벗어나 유동적이며 창조적인 관점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여지를 품게 된다. 물론 우리는 이에 관한 탁월한 사례를 함석헌의 사상에서 구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의 사상과 공명하여 3·1운동의 평화정신을 오늘날의 촛불로 점화하고 있는 아래의 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3 즉 1이고 1 즉 3이라 하니우리는 태어날 적부터 한울님이며이미 너와 나의 머릿골 속에는청정의 고요 속에서 움트는씨알 하나가 심어져 있다는 것이다.그 신령스러운 것들이망령스러운 짓들을 일삼는 것은제가 저를 얕잡은 것이고제가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고스스로를 모실 줄 모르는 까닭이다.이러고서는 백년을 삼세번 넘긴다 해도끝내 스스로를 알아볼 까닭이 없다.스스로를 모르는 것이 망령이고스스로를 알아보는 것이 신령이니이 세상은 온통 망령들이 휘젓고 다니는 곳이라언제나 3·1의 세상이 다시 올 것인가.한때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여세월을 뒤집는 촛불을 켜고 3·1을 이루었다 하나그것은 3·1의 시작이었을 뿐이다.인간사 밤이야 매일 오는 것이니촛불 또한 우리 가슴에 늘 켜놓아야 하는 것이다.그것이 3·1이다.이처럼 스스로를 환하게 밝히는 것이 3·1이다.매일매일 신명나는 것이 3·1이고그렇게 스스로를 모실 줄 알아야 3·1이다. ― 박두규, 〈3·1의 세상〉, 3·1 백주년 시집 편집위원회 편, 《백년의 촛불》, 시와문화, 2019 이 시에서는 3·1의 평화정신을 상징하는 “촛불”이 역사의 거대한 폭풍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을 바로 우리의 안에서 발견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씨알 하나”로 명명되는 심지인데,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찬란한 빛을 발산하며 활활 타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할 때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은 “3 즉 1이고 1 즉 3”이라는 시적 수식(數式)의 성립에 관한 것이다. 물론 수학적인 측면에서 이 수식은 터무니없는 오류임에 틀림없으나, “씨알 하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명백한 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근거를 우리는 “태어날 적부터 한울님”이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그전까지 ‘하늘’은 우리가 왕과 같은 외부의 절대적인 권력을 떠받드는 근거였다면, 이제 그것은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자기 안에 품고 있는 “씨알 하나”로서 인간 개개인의 신성함과 평등함이 비롯되는 근거가 된다. 물론 이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에서도 천부인권(天賦人權)과 같은 식으로 정당화되어 있는 보편적인 진리이다. 이에 따라 시에서는 우리가 사람을 “한울님”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우리 안에서 영혼이라는 “촛불”이 켜지는 눈부신 장면으로 그려내고 있다. 바로 그때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를 모”시지 않을 수 없으며, 또 다른 누군가를 모시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3 즉 1이고 1 즉 3”이라는 수식은 사람을 진정 사람답게 만드는 원리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우리가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3·1의 촛불의 지속성에 관한 것이다. 사실 1919년 3월 1일에 타오른 촛불은 이제 막 “씨알 하나”가 스스로를 알아보기 시작한 순간이었을 뿐이다. 그토록 환했던 순간은 지나가 버리고 “인간사 밤이야 매일 오는 것”이기에, 촛불은 “우리 가슴에 늘 켜놓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3·1의 촛불은 당시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한 역사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후세대의 촛불은 당연히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타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삶을 매일매일 주체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가슴에 켜진 촛불을 다음 세대로 넘겨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는 이 지점에서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설 중에 남긴 다음 말을 떠올릴 법하다.“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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