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기, 대한민국 제약강국의 개척자를 생각하며   이대환(작가)     한미약품(사이언스)의 경영권 분쟁, 이른바 ‘모녀와 형제’의 대결을 나는 남달리 가슴 아프게 지켜보는 중이다. 아직 출간 시기를 미정하고 있지만, 한미약품을 창업해 “R&D가 제약기업의 생명”이라 고집하고 실천하고 전파하며 우리나라 제약산업에 새 지평을 열어젖힌 임성기, 이 고인의 평전 원고를 엔간히 마쳐놓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세계 최고의 철강인 : 박태준 평전』 다음의 두 번째 평전인데, 이미 책 제목은 고정해뒀다. 『대한민국 제약강국의 개척자 : 임성기 평전』이다. ‘작가의 말’에는 다음의 문장들이 있다.<“대한민국은 스위스 같은 제약강국, 신약강국이 돼야 한다.”― 이 미완의 꿈을 이 땅에 남겨둔 한 사나이의 일생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의의와 그 가치를 공공 광장에 건축하는 일, 이것이 『임성기 평전』을 쓰고 읽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꿈은 토양이 제대로 갖춰져야 활짝 피어날 수 있다. 내 주인공의 못다 이룬 꿈이 뿌리 내린 토양은 여전히 척박한 편이다. 효험이 탁월한 거름을 줘야 한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바이오제약을 국가기간산업으로 특정하여 제대로 뒷받침하는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화이자와 모더나에 지원했던 8조원이 수십 배 수익도 창출하는 mRNA백신 개발의 동력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이제라도 직시해야 한다.코로나19 팬데믹 한복판에서조차 바이오제약을 20세기 후반기의 종합제철·전력·정유 같은 국가기간산업으로 특정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은 ‘임성기의 못다 이룬 꿈’을 국가기간산업 차원으로 공론화해야 마땅하다. 이 책이 그 불쏘시개로 거듭나기를, 나는 가슴에 두 손을 모은다.>블록버스터 신약개발 및 출시에는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들을 거쳐 미국 FDA 승인까지 거의 십여 년 세월과 조 단위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그마저도 성공 확률이 매우 낮다. 그런데 우리나라 바이오제약업계 선두그룹의 일 년 치 영업이익을 다 합쳐봐야 글로벌 빅 파마들의 일 년 치 R&D 예산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래서 바이오제약을 21세기 국가기간산업 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1940년에 태어난 임성기는 흙수저 출신이다. 임진강 앞동네 김포 통진에서 닭장을 치며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중앙대 약대를 나와 제약회사 영업사원부터 짧게 거쳤다. 야산을 팔아준 아버지와 담보를 대준 작은형의 도움으로 간신히 약국을 개업했다. 간판을 ‘임성기 약국’으로 걸고, 가장 먼저 흰 가운을 입는 약사가 되었다.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문을 열었다. 일찍 별세한 큰형의 장남을 아들처럼 돌보았다.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과욕을 부리면서 함정에 빠져 넘어졌다. 생을 버리려다 그 각오로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성병 전문 약국으로 승부를 걸었다. 특효 제조약이 불티나게 팔렸다. 베트남 전장에 날마다 항공으로 실어보낼 정도였다. 비로소 그는 제약 창업을 각오하고 노총각 신세를 면했다. 신부는 사진 전시회도 개최한 송영숙이었다. 임성기가 제약강국의 소망과 뚝심, 영특한 전략, 그리고 “바보” 소리를 듣는 과감한 R&D 투자로 한미약품을 R&D 중심의 한국 최고 제약기업으로 육성하는 동안 삼남매를 잘 키워낸 부인은 사진계에 이름을 높였다.임성기는 독일의 머크(Merck) 같은 제약기업을 부러워했다. 머크는 대를 이어 가족들이 번창의 길로 전진해온 모범적 사례이다. 투병 기간에도 그는 상속 지분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2020년 8월 숨을 멈췄다.지난 몇 년간 주가 한 번 쳐다보지 않은 한미사이언스의 개미 주주로서, 그러한 가운데 임성기의 삶과 고투와 철학을 통찰해본 작가로서 지금 나는 객석에 앉아 질문 세 가지를 품고 있다. 만약 오늘이라도 삼남매(임종윤·주현·종훈)의 어머니를 만난다면, 조용히 물어보고 싶다. “오빠와 남동생에게 이사회 결의사항을 사전에 공개할 수 있는지는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따님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의논’도 아닌 ‘공개’이며 더구나 ‘객관적’이라고 봤으니, 이미 냉전적 분쟁을 넘어서는 열전적 분쟁을 예견했던 것일까요?”‘객관적’이란 말을 ‘공과 사의 구별’이란 말로 교체해도 그 말이 그 말이겠는데, 법에 따라 공평하게 비슷비슷한 지분을 상속받은 가족끼리 아무런 ‘냉전적 분쟁’이 없음에도 오로지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니까’ 그토록 철저히 ‘객관적’으로 비밀을 지켰어야 했는지 모르겠으나, 두 번째 질문은 이렇다.“아들은 못 믿는데 타인은 믿나요?”‘타인’이란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가 통합하더라도 이우현(한미 지분 27% 차지)과 임주현(한미 지분 10.2% 보유 중)이 각자 대표를 맡기 때문에 한미약품의 정체성을 지속할 것이라고, 모녀는 주장했다. 이래서 하나 더 묻고 싶다.“지분 27%가 작심하면 지분 10.2%야 걸림돌이 아니잖아요?”과연 이우현의 변심 예방이나 변심 방어에 대한 묘책을 마련해놓았을까? 우리를 믿어 달라는 것 말고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형제가 제기한 ‘신주발행금지가처분’ 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인용될까, 기각될까. 아무도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쪽이든 통합의 앞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분쟁의 본질, 그러니까 ‘임성기가 남겨둔 미완의 꿈을 성취하려는 진실성’에 대한 판결과는 다른 성격이다.임성기 회장이 한미그룹을 리더하는 도정(道程)에서 현재와 유사한 상황을 맞았다고 가정해 본다. 과연 그가 다른 기업의 밑으로 들어가는 결단을 택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하나의 자문(自問)이 솟아오른다. 한미사이언스가 중간지주사로 내려앉는 통합은 장래의 어느 날에 경영권 상실을 초래할 것이니 ‘을사늑약’에 비유해야 한다는 형제의 애끓는 호소가 옳은가, 그럴 일이 없다는 모녀의 방어가 옳은가.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이란 말이 있다. 박완서 선생이 남겨둔 소설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 당사자들보다 더 정확히 그 양심을 꿰뚫어보는 눈빛 하나가 있을 듯하다. 생전에 새벽 예배 다니던 교회의 봉안당에서 김포시 통진읍 가현리(고향마을) 산기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임성기, 대한민국 제약강국의 개척자가 분노한 영혼으로 일갈해줄 것이다.언젠가 책으로 태어날 『임성기 평전』에 작가가 써둔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믿고 맡긴다는 말이 있고, 믿고 떠난다는 말도 있다.두 말의 차이점은, 맡긴 이는 현실에 존재하고 떠난 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말의 공통점은 상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이다. 임성기는 믿고 떠난 사람이다. 그의 신뢰 상대는 부인과 자녀들이었다. 믿고 떠난 이의 못다 이룬 꿈을 그들이 상속의 지분보다, 거대한 유산보다 더 귀중한 선물로 받아 제약강국의 실현의지와 도전정신으로 불사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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