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을사년 새봄에 파면될 수도 있고 생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최후진술에 파면을 상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때는 국민 여러분께서 새 대통령을 선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는 그동안 몇 번이나 밝혔던 계엄의 불가피성과 대통령 고유 권한 발동에 대해서도 덮어두겠습니다. 대통령으로 복귀해서 무엇을 최우선적으로 반드시 추진할 것인가. 오직 이 문제입니다. 저의 인생과 양심을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저를 대통령 후보로 떠밀었던 문재인 정권의 ‘조국사태’ 당시부터 우리 국민은 마치 장벽의 왼편과 오른편처럼 반으로 딱 갈라졌고, 이번 탄핵정국 속에서 서로가 장벽을 허물고 충돌할 기세로 치닫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심리적 내전 상태라는 진단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겠습니까?지금 저는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행한 현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이를 극복해 나갈 길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 길의 이름은 통합입니다.통합의 사전적 의미는 조직들이나 기구들을 하나로 합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세력들이나 정당들은 결코 하나로 통합할 수 없고, 통합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일당독재의 전체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정치체제, 중국의 정치체제로 가겠다고 기도한다면, 우리 국민은 총력으로 저지할 것입니다.제가 말하는 통합은 통합의 정치입니다. 정치세력들이 한몸으로 통합하는 것은 분명히 반대하지만, 통합의 정치를 추구해야 하고 정치문화로 정착해야 합니다. 통합의 정치란 서로의 공적과 과오를 인정하는 무대 위에서 합리적으로 경쟁하고 대화하며 타협하는 정치입니다.통합의 정치만이 국민통합의 광장을 만들 수 있고, 이것이 세계적 격변의 파고를 헤쳐 나가는 원동력입니다. 우리 정치계는 통합의 정치를 너무 오래 유기하고 있습니다. 거의 망각한 지경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대통령 후보로서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저도 통합의 정치를 각성하는 데 임기의 절반 이상을 보냈습니다.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다행히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늦었다고 깨닫는 자리에서 바로 새 출발의 장도에 나서는 행동입니다. 이래야만 시작이 반이라는 금언의 참뜻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망설임 없이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야만 우리나라의 경제와 문화에 부끄럽지 않은 정치계의 면모를 국민 앞에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금도 우리 정치계에 비난의 화살들이 날아들지 않습니까?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가장 강한 화살입니다. 통합의 정치는 비난의 화살을 칭송의 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저는 대통령에 복귀하여 지체없이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몇 가지 통치적 선언을 공표하겠습니다.첫째, 개헌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철학이고 사상이고 국가체제입니다. 바야흐로 87체제는 시대의 거울 앞에서 어딘가 허술해 보입니다. 경제 방면만 일별해도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 바이오제약 등을 국가기간산업에 추가하고 지원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헌법을 재옹립해야 합니다. 저는 개헌 의제를 국민의 밥상에 올려드리겠습니다. 대통령 임기의 4년 중임제 도입, 분권형, 저의 임기단축과 제22대 국회의원의 임기단축, 대선과 총선과 지방선거의 동시 실시, 헌법기관들의 재정비 등에 대한 저의 의사도 공론의 대상으로 밝히겠습니다. 물론 저는 다시 출마하지 않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개헌을 마무리짓고 아무리 늦어도 2026년 개나리꽃이 필 무렵에는 새 헌법에 의거한 대선ㆍ총선ㆍ지방선거를 동시에 실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개헌에 관해 저의 기본 생각을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각제 개헌에는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21세기의 지난 사반세기 동안에도 우리 국민의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저조하기 때문입니다. 입법권의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저조한 현실에서 국회에 행정부의 권한까지 부여하는 개헌이라면 우리 국민은 대다수가 반대할 것입니다.둘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판에 관한 문제입니다. 현재 이 대표는 허위사실공표에 관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원심에서 집행유예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선고를 받는다고 가정해봅시다.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국민의 뜻을 받들어 개헌이 이뤄진다면, 저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면과 복권을 단행하여 차기 대통령 후보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제공하겠습니다. 이는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는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단지 그것은 대장동, 백현동 등 나머지 재판들의 판결과는 별개입니다. 모든 형사재판이 그러하듯, 이 대표의 나머지 재판들에서도 무죄 선고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만, 허위사실 공표와 나머지 재판들의 공소 혐의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만약 나머지 재판들에 의해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경우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셋째, 부정선거 의혹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깨끗이 정리하고 싶습니다. 저는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으로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대로 조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반대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머리를 맞대고 국민 앞에서 투명하게 의혹 해소의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조사한 결과, 부정선거가 없었다면 저를 포함해 그것을 제기해온 사람들이 국민 앞에 석고대죄의 심심한 사죄를 올려야 하고,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관련자들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한낱 음모론으로 몰아부치는 사람들도, 그에 맞서는 사람들도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현 상태로는 통합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통합의 정치라는 차원에서 부정선거 의혹도 반드시 해소해야 합니다. 더 미룰 것 없이 깨끗이 털고 가야 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사상을 지켜내는 책무이기도 합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여러분, 재판관 여러분.1980년대 대학가 운동권 지하서클의 NL 주사파에서 이른바 ‘산개전’ 전략을 결정했습니다. 거칠게 덧붙이면, 개별적으로 각계에 흩어져 들어가 힘을 키우며 때를 기다려 준동하자는 것이겠지요.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 저는 산개전의 네트워크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섬뜩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국체 사상을 기필코 수호한다는 확고한 신뢰가 그것을 곧 지워버렸습니다.그후 386은 586이 되었고, 더러는 686에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습니다. 인생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국가는, 우리 역사는 영원합니다.더 늦기 전에 마침내 우리 정치계도 통합의 정치를 시작합시다. 이것을 시대정신의 목소리로, 역사의 명령으로 겸허히 받아들입시다.끝으로 저도 잊은 채 지내왔고 우리 국민도 잊어버렸을 역사적 명장면을 소환하겠습니다. 1997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민교육현장 제정 선포 30년째 그날, 김대중 선생이 대통령 후보로서 경북 구미의 박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안내는 자유민주연합 총재로서 “영남과 호남의 화합,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를 절절히 외치고 있던 박태준 포스코 창립회장이 맡았고, 이희호 여사와 박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 씨가 동행했습니다. 김대중 선생의 화해 말씀은 이랬습니다. 통합의 정치에서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인이 경제에 7할을 바치고 인권에 3할을 쓴 분이었다면, 고인과 정치적으로 대결하던 시절의 나는 인권에 7할을 바치고 경제에 3할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고인과 나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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