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텃밭부터 메주·된장·전통먹거리까지…“할머니가 키우고 가족이 행복해지는 텃밭 만들어요”
학(鶴)이 두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는 모습을 닮았다는 비학산(飛鶴山). 포항시 북구 신광면의 진산으로 불리는 이 산자락 아래에 할머니들이 함께 일구는 특별한 텃밭이 있다. 포항 신활력플러스사업 액션그룹 ‘할머니의 보물 텃밭’이다.
신광면 상읍1리에 자리 잡은 ‘할머니의 보물 텃밭’은 고령농과 여성농, 소농이 함께 농산물을 재배하고 메주와 된장 등 전통 먹거리를 만들며 농촌공동체를 이어가는 곳이다. 중심에는 박선녀(62) 대표와 마을 할머니들이 있다.
상읍1리는 비학산 자락에서 포항 시내 방향으로 자리한 조용한 농촌마을이다. 마을에서 상읍2리를 지나 차로 10여 분을 가면 신라시대 고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법광사지가 나온다. ‘할머니의 보물 텃밭’은 비학산과 법광사지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2000년 귀농한 박선녀 대표…마을 어르신들과 20여 년 동행
박 대표는 포항 시내에서 생활하다 2000년 상읍1리로 귀농했다. 이후 농협 대의원과 이사, 마을 이장 등을 맡으며 주민들과 함께 크고 작은 마을 일을 해결해왔다. 마을과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2002년부터였다.
박 대표는 “처음 마을회관에 인사하러 갔을 때만 해도 대부분 남자 어르신들이 계셨다”며 “젊은 사람이 자주 찾아와 커피도 타드리고 마을 일을 함께 이야기하니 처음에는 의아해하셨지만, 거의 매일 찾아뵙고 마을 일에 앞장서다 보니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회상했다.
이후 마을 앞 하천 가드레일 설치를 비롯해 마을회관 리모델링, 산책로 정비, 농기계 공동이용,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공부와 여행 등 마을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나섰다. 그렇게 쌓인 신뢰는 ‘할머니의 보물 텃밭’으로 이어졌다.
상읍1리에는 현재 80세 이상 어르신이 25명이며 대부분이 여성이다. 이 가운데 15명은 홀로 생활하는 어르신이다. 박 대표는 이들 할머니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전통 먹거리를 만들며 새로운 농촌공동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할머니의 보물 텃밭’은 포항시 신활력플러스사업 2단계를 마쳤으며 올해 6월 법인을 설립해 마을기업을 신청했다. 앞으로 신활력플러스사업 3단계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농촌 어르신은 공동체 정신 간직한 마지막 세대”
박 대표가 ‘보물 텃밭’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는 농촌에서 어르신들이 가진 경험과 공동체 정신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것이 더 큰 목표다.
박 대표는 “농촌 어르신들은 우리 농촌의 뿌리이자 정신적 지주”라며 “오랜 세대에 걸쳐 이어온 농촌 공동체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가 살아계실 때 그분들에게 우리의 전통적인 농촌문화와 공동체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인복지시설 확충과 같은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두레와 품앗이, 계와 향약처럼 서로 돕고 살아온 농촌의 상부상조 정신을 오늘날 농촌 현실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보물 텃밭’은 앞으로 공동텃밭과 전통 먹거리 생산, 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20개 구획으로 조성된 공동텃밭에서는 상추와 가지, 고추, 토마토 등 다양한 채소를 재배한다. 지난해 특히 반응이 좋았던 상추는 내년부터 계절별·종류별로 다양하게 심어 판매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손맛이 담긴 메주도 ‘보물 텃밭’의 대표 상품이다. 전통 방식으로 직접 만든 메주와 된장은 구매자들 사이에서 ‘엄마가 만들어주던 된장 맛’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시루떡과 연밥, 한과 등 전통 먹거리 만들기 체험도 이어간다. 여기에 인근 법광사지를 둘러보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을 연계해 농촌체험과 역사문화 탐방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농사를 통해 얻은 소득을 할머니들과 나누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박 대표는 “비록 많지 않은 돈이지만 함께 일해서 번 돈을 나눠드리면 할머니들이 정말 좋아하신다”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눠드리고 여행도 더 자주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보물 텃밭’이 추구하는 방향을 짧은 한마디로 표현했다.
“텃밭에서 잘 놀자, 잘 먹자, 잘 팔자입니다.”
고령의 농촌 여성들이 단순한 돌봄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이 평생 쌓아온 농사 경험과 손맛을 활용해 직접 농산물과 먹거리를 만들고, 함께 일하며 소득까지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편 박선녀 대표는 현재 상읍1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선녀 한과’를 전통 수제 방식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