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살필 때 챙겨둬서 유익할 지식들이 있습니다. 피해야 할 실수도 여럿입니다. 구분 없이 나열해 보겠습니다.  첫째, ‘보이는 산’과 ‘실제의 산’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바로 옆에 높은 봉우리가 솟았다 하더라도, 현장에선 그 봉우리가 전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봉우리가 아니라 그냥 산줄기의 일부인 지형일지라도 장소에 따라선 매우 뾰족한 봉우리로 착각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높은 산을 올려다 볼 때 생깁니다. 올려다 봐야하다 보니, 볼 수 있는 시야가 일정 각도 권역으로 한정돼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 높아질수록 경사가 급해지는 봉우리가 아니고는 그 상부가 시야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이 있는 비탈면에 의해 보이지 않도록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한계가 그렇습니다. 반면, 저 각도에 든 것 중 가장 높은 것이면 그것이 밋밋한 경사면일 뿐이라 할지라도 마치 뾰족한 봉우리처럼 착각될 수 있습니다. 이런 예비지식 없이 등산하다가는 곤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골짜기를 걸을 때는 저 위의 산덩이가 봉우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게 봉우리라고 믿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의 상당수는 낮아져 내려오는 가지산줄기의 경사면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올려다 볼 때의 각도 때문에 착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정리하건대, 실제의 산과 보이는 산, 과학적 산과 느껴지는 산은 다릅니다. 보는 산은 사람에게 느껴지는 산일 뿐입니다. 실제 모습이 어떻든 그것하고는 별개입니다. ‘실제의 산’과 ‘보이는 산’의 차이는 ‘실경’(實景)과 ‘진경’(眞景)의 차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둘째,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산줄기들이 훤히 구분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산은 그 정도로 쉽게 파악되는 게 아닙니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매우 많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산에서는 시야가 틘 지점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잘 닦여 앞이 훤하게 된 평지와는 전혀 다릅니다. 시야는 툭 불거진 지형이 있어야 확보되기 쉽습니다. 그런 걸 현지 어른들은 예부터 ‘덤’이라 불러 왔다고 했지요. 산에서 저런 지형은 드뭅니다. 대부분의 산에서는 나무가 우거져 저 앞에 뭣이 있어도 그마저 구분해 내기 어렵습니다.  시야가 틘다고 하더라도 산에서 내려다보는 산줄기는 이것저것 뒤엉기고 겹겹이 겹쳐 보이기 쉽습니다.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으로 연결된 것 같다는 뜻입니다. 아래서 보는데 한계가 있듯, 위에서 보는데도 이렇게 한계가 존재합니다.  상황이 저런데도 옛날의 어떤 교과서에서는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백두산을 여러 번 올라 산줄기 흐름을 분별해 내서는 대동여지도를 그렸다고 가르쳤었습니다. 산을 몰라도 너무 몰라 한 소리라고 산꾼들이 비판하는 대목입니다. 더욱이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그 많은 지형은 고산자 혼자서 다 답사하고 판별해 내어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백 년에 걸쳐 많은 지역에 나눠 살아 온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된 지방도(地方圖)들을 모아서 만든 게 대동여지도라는 것입니다.   셋째, 산줄기의 전체적 방향이 모든 구간 모든 지점에서의 방향과 일치하리라고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전체적으로는 북을 향해 가는 산줄기이더라도 도중엔 한참 동안 아예 남쪽으로 달리기까지 하는 산줄기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산을 걸을 때는 늘 방향 변화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동쪽을 향해 가다가 바로 다음 순간 남쪽으로 전환할 때도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산줄기 관련 저술을 읽을 때 조금 전 동․서라 하다가 금방 남․북이라 설명한다고 해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산줄기 흐름에 방향 전환이 있었을 가능성부터 재빨리 감지할 줄 알아야 따라잡기 쉽습니다.  지형도와 나침의는 산줄기 방향의 저런 변화무쌍함 때문에도 필요합니다. 그 대비가 없는 상태에서 산줄기 흐름을 놓쳤다가는 방향조차 잃고 헤맬 수 있습니다. 동쪽으로 가야 출구가 나올 텐데 반대쪽을 그쪽이라 믿고는 더욱 서쪽으로 들어가서 결국엔 위험한 지경에 처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넷째, 산마루 흐름과 산길 흐름이 같다고 혼동하면 안 됩니다. 산길은 산줄기 흐름을 따르긴 하되, 걷는데 유리하도록 도중에 흔히 능마루를 벗어나 제 길을 갑니다.  그래서 지형도 상의 산줄기를 길잡이 삼아 걸을 때는 산길을 별개로 취급해서 늘 둘의 관계에 주목하는 게 좋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한 바퀴 다녀와도 좋은 동네 산이 아니라면 그렇습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아니라 별도로 진행해 가는 산줄기 흐름이 있을 가능성에 항상 주목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오르기 힘들었던 높은 봉우리라고 해서, 오르고 난 이후까지 높은 것은 아닙니다. 그 봉우리와 더 상부의 지형 사이에 높이 차가 별로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각 상의 혼란을 피하려면 오르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오르고 난 뒤에 능마루가 어떻게 연결돼 가는지도 유념해 둬야 합니다. 갔던 길을 되돌아 와야 할 경우엔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야 돌아올 때 길 잃는 혼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물길 출구(出口)에 특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상류에선 골 안이 엄청나게 벌어지는데도 출구 지점에선 겨우 물 흐른 흔적이나 조금 남았을 정도로 골 양쪽이 한 몸 같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지릉들이 흔히 끝부분에서 치맛자락처럼 퍼지면서 넓고 퉁퉁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렇다 보니 경험 없는 답사객은 저 희미한 물길 흔적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그랬다가는 지형 감각을 놓쳐 도깨비에 홀린 것 같은 어지럼증을 겪어야 할 수 있습니다.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물길 흔적까지 세심히 살펴,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안에 매우 큰 골짜기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답사객이 아니고 등산객이라 하더라고 물길에 관한 감각은 키워놓는 게 좋습니다. 아주 작은 물길을 하나 건너더라도, 이제 자신이 전혀 다른 산덩이로 들어서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처음엔 그렇게 한 걸음이지만 얼마 안 가 정말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가 있을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물길 출구는 골짜기의 입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들어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기가 입구이지만, 흘러내리는 물의 입장에서는 출구인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저걸 ‘출구’라고 부르겠습니다.  일곱째, 지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지도는 말 그대로 땅을 그린 그림입니다. 하지만 목적에 따라 매우 여러 종류의 그림으로 다르게 그려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땅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지적도가 필요합니다. 재산권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정밀도도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적도의 축척은 1대1,200이나 됩니다.  등산 안내서들은 그에 걸맞은 땅 그림을 나름으로 다시 만듭니다. 산줄기를 표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판별 표지가 될 만한 두드러진 지형지물도 강조해 그려 넣습니다.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한 땅 그림은 도로 지도일 것입니다. 요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산줄기가 아니라 도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도에서는 도로를 유달리 과장해 그립니다. 실제 축척대로 하면 너무 미세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도로인데도 도로지도에서는 폭이 몇 km에 달하는 산줄기보다 더 넓게 그려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지도들은 ‘지형도’라는 바탕그림이 있어야 만들 수 있습니다. 지형도는 ‘땅의 모양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나머지는 응용 지도이고 ‘지형도’가 원도(原圖)인 것입니다.   지형도 중에서도 국가에서 만든 기본 그림을 ‘국가기본도’라 한다고 그럽니다. 현재는 1대 50,000, 25,000, 5,000 등 몇 종류로 제작돼 보급됩니다. 그 중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은 1대50,000입니다. 거기서 1cm는 실제에서 500m입니다. 그보다 10배 큰 1대5,000 지형도의 1cm는 실제에선 50m입니다. 그래서 여기선 개별 주택들도 그림으로 나타내집니다.   1대50,000 및 25,000지형도는 등고선 간격이 10m나 됩니다. 10m 차가 나지 않는 지형은 동일 등고선 안에 포함돼 그려져 버린다는 뜻입니다. 인접 지형과 높이 차가 크지 않은 구릉 모양의 어지간한 봉우리는 표시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1대5,000 지형도에선 등고선 간격이 5m입니다. 그래도 나지막한 구릉들은 표시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저런 한계는 지형도에 표시되는 ‘표고점’이란 것을 이용해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습니다. 등고선과는 별도로 여러 지점들에 그 높이를 나타내 보여 주는 수단이 저 표고점인가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1대25,000이나 50,000 지형도에는 표고점이 많이 표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흔히 등산객들은 거기 표시되는 삼각점의 높이를 활용합니다.  그러나 삼각점을 원용할 때는 경계할 점이 있습니다. 삼각점이 있는 지점이라고 해서 모두 봉우리라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삼각점은 어떤 지형의 높이가 아니라 위치를 알아내는데 쓰기 위해 설정한 표지입니다. 그래서 비탈면이나 도로변 등에도 적잖이 가설됩니다.  지형도에 나타나 있는 지명 또한 곧이곧대로 따라 읽어서는 곤란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1대5,000 지형도에는 큰 골짜기들의 이름까지 표시돼 있지만 그 지명 또한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현장을 답사해 보면 실제와 너무 많이 다릅니다.  여덟째, 지도를 활용할 때 행정구역 경계선에 속으면 안 됩니다. 행정구역 경계선이 주요 산줄기 흐름과 일치하는 것으로 혼동할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중요한 산줄기는 그대로 행정구역 경계선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 같은 한반도의 기축(基軸)산줄기들이라고 해서 꼭 시와 도, 시와 군의 경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기축산줄기의 판별 기준이 행정구역 경계 판별 기준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행정구역 경계는 생활권을 가를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산줄기나 물줄기에 기초해 그어집니다. 반면 기축산줄기는 저런 영향력이 아니라, 물줄기를 ‘계속해서’ 갈라 붙일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지속성에 따라 선별됩니다. 이건 아무리 낮은 산줄기라도 해 낼 수 있는 일입니다. 단 하나 조건은, 도중에 끊이지 않고 바다 혹은 다른 큰 강까지 가야 한다는 것뿐입니다.그러다 보니, 물길을 가르되 높지는 않은 산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기축산줄기는 될지언정 행정구역 경계선은 되기 힘듭니다. 사람이 어렵잖게 넘어 다니며 그 너머에까지 동일생활권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축산줄기이고 높기까지 하더라도 행정구역 경계선이 못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물과 달라, 매우 높은 곳까지 올라가 집터 닦고 논밭 일굴 수 있는 게 원인입니다. 그럴 능력 있는 사람들에겐 그 산줄기 너머 땅으로까지 삶의 영역을 넓히는 일쯤은 오히려 수월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현 행정구역의 획정에 바탕이 된 군․현 등 옛 지방단위는 지형을 초월해서까지 권역을 설정하던 특이한 전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지방 관리 단위를 넘어 세금부과의 단위로 작동한 게 원인이라 합니다.  사실과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전쟁이 나 피난 가는 경우를 상상해 보겠습니다. 상황이 호전되면 관청은 본향으로 복귀할 것이지만, 잠시 머물던 그 땅에 아예 눌러앉는 사람 또한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 소속이 될까요?  남의 권역에 들어 가 살지만 그들은 그 후에까지 본향 관할이었다 합니다. 본래의 군․현에서 그런 사람들까지 관리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그 낯선 땅마저 ‘비입지’(飛入地, 본향의 경계로부터 완전히 분절된 채 남의 권역 안으로 날아 들어간 땅), 혹은 ‘두입지’(斗入地, 본향의 경계를 물고 남의 권역으로 길게 이어 들어간 땅)라 해서 본향의 관리를 받았다고 합니다. 합쳐 ‘월경지’(越境地, 행정구역 경계를 벗어나 있으면서도 관할 하에 있는 땅)라 한다지요. 조선시대 호적법은 저렇게 무서운 것이었나 봅니다.  울산서 바위가 날아가다가 설악산에서 멈췄느니, 고령의 산이 날아가다가 포항서 스톱했다느니 하는 전설이 생각납니다. 고령 쪽에서 해마다 포항에 와 저 산에 대한 세금을 받아갔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저것 역시 이 비입지 이야기의 변형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입지는 불과 150년 전의 기록인 대동여지도에까지 드물잖게 표기되고 있습니다.  한 행정구역이 주요 산줄기 너머 땅까지 포괄하는 걸 보고 어떤 이가 “옛날 나라들이 권역 넓히기 전쟁을 한 흔적”이란 식으로 추측하는 걸 본 적 있습니다. 사실일까요?  아홉째, 답사객은 산줄기 지도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라야 지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줄기지도는 지형도의 등고선을 보고 높은 점을 선으로 연결하면 그려집니다. 저 지도에서는 자연스레 잘록한 부분이 드러납니다. 그게 재입니다. 넘어 다니는 고개로 활용될 소지가 있는 지형입니다. 이런 모습은 산줄기 지도가 아니고는 잡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책 또한 산줄기 지도를 봐 가며 읽어야 서술 내용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박종봉 투데이포항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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