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남기지 않은 작가 한흑구(1909-1979)의 수필집 『뻐저리 아저씨』가 세상에 나왔다.오래된 잡지와 신문에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모아 한 권으로 묶었다. 생전에 출간된 수필집 『동해산문』(1971), 『인생산문』(1974)에 이어 반세기 넘어 펴낸 ‘한국 수필문학과 수필론의 선구자’ 한흑구의 제3 수필집이자 유고집이다.수록 작품은 모두 50편으로, 전반부에는 평양이나 미국 유학과 관련된 수필을 배치하고, 후반부에는 포항의 삶에서 우러난 수필을 거의 발표한 시계열에 맞도록 앉혀놓았다.평양 안내지도를 그렸다고 평해도 좋을 「모란봉의 봄」이나 첫사랑의 스웨덴계 여대생 ‘루스 알바’를 회억하는 글에서 만나게 되듯이 전반부의 작품들에는 돌아갈 수 없는 평양과 청춘 시절이 내면의 호수에 잔잔히 물살을 일으키고, 후반부의 작품들에는 동해바다, 영일만 갈매기, 수평선, 하늘, 구름, 나무 같은 자연의 체온이 고독한 은둔의 사색을 감싸고 있다.
문학인의 시선은 맨 앞에 놓은 「1936년 11월 중순의 소설가 이광수·이기영·이태준」에 한참 머물것이다. 미국 유학을 중도하고 평양으로 돌아온 창창한 스물여섯 살의 한흑구가 주도하여 전(全)조선을 상대로 펴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평양의 문예중심 종합 월간지 《백광》 창간호(1937년1월)에 실린 글이다. 특히 이광수와 이기영, 그때 우리 소설문학을 떠받친 두 작가의 생활 실태는 마치 고대광실과 초가삼간을 나란히 세운 것처럼 대조적이다. 아직은 친일문학으로 미끄러지지 않은 조선 문단의 대표 작가 이광수, 해체된 KAPF의 대표 작가로서 감옥을 드나들고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고항』으로 문명을 떨친 이기영……. 그러나 그러한 대조적 실태의 전후 맥락과는 또 무관하게 포항의 한흑구가 노년기에 소환해온 일제 때 평양의 ‘뻐저리 아저씨’ 같은 무명 존재도 제대로 만나봐야 못난이처럼 비치는 사람의 떳떳한 긍지와 그를 대하는 참된 겸손에 대하여 새삼 헤아리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흥사단을 조직하고 상해임시정부 초기에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를 맡았으며 1937년 이광수, 한승곤(한흑구의 부친), 주요한, 한흑구 등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병을 얻어 이듬해 서거한 도산 안창호(1878-1938), 미국 유학생 한흑구가 선생의 로스앤젤레스 자택에 머물렀던 기억을 정리한 「안창호(安昌浩) 씨 가정 방문기」는 이번 수필집에서 들머리 부분을 ‘전략’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대해 편집을 맡았던 이대환 작가와 김도형 작가는 “국회 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고서적 전문 서점, 고서적 수집가 등 뒤져볼 만한 곳은 다뒤져서 간신히 1937년 2월에 나온 《백광》 제2호 한 권을 찾았는데, 거기 실린 한흑구 선생의 그 글에서 하필 시작하는 첫 장만 도둑맞은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