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이웃에게 가고,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기 위해 이웃에게 달려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 잘못된 사랑은 고독 때문에 자신의 감옥을 만드는 것이다." - 니체외로움이야말로 인간의 실존성을 가장 잘 증거한다고 믿었던 니체는 외톨이가 된 (키에르 케고르가 칭한 인간적 절망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모두가 외톨이라는 것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서로가 만나서 `까짓것 그 외로움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 외로움이란 오히려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매개라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이 그림 철로는 바로 그러한 외로움이 경유하는 곳이다. 외톨이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 기차역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외톨이다. 이웃을 찾아간 어떤 사람, 이웃으로부터 도망한 어떤 사람. 자기를 잃기 위해 떠난 사람, 자기를 찾기 위해 떠난 사람. 이들 모두 외톨이다.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자신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들은 무엇인가를 찾아 여기 있다.해질녘 자연은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떠나온 사람도, 찾아온 사람도, 버리기 위해 온 사람도, 찾기 위해 온 사람도 모두 외롭다. 그래서 삶은 외로움투성이다. 다만 창이 없는 감옥에 앉아있기에 너머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이다. 어느 시인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한 까닭처럼.해질녘 철로의 풍경은 고요하기만 하다. 나 아닌 타인들은 모두가 평온한 것처럼. 불온한 것은 오직 소리 없는 아우성, 그것은 오롯이 자아의 감옥 속에서 일렁인다. 감옥 안에서 자란 삐뚤어진 외톨이 하나. 왜 나여야만 하는가 하는 절규만 소리 없이 창천 할 뿐.자궁에서부터 무덤까지, 삶이란 예고 없이 던져진 황량한 터이기에 온전히 홀로 짊어져야 하는 저 무지막지한 삶이 모든 소리와 소리가 전달되는 매체를 집어삼키고. 모든 소음이 사라진 고요는 도리어 가장 소란스런 굉음. 그리고 우리는 또 자아의 감옥을 서성인다. 고요한 듯 소란스러운 해질녘 철로 모두가 그 안에서 각기 다른 이유 들로 외롭다. 이웃이 가까이 있어도, 이웃이 하나 없어도, 떠나와도. 혹은 찾아와도 외로움이야 달리 다르지 않다. 오직 나만 외롭다는 기묘한 엄습만이 절망스러움을 더 할 뿐. 목적 없는 역설의 정처로 향하는 흐름과 함께 말이다.그러나 일찍이 타인을 향한 창을 만들고, 자신의 문을 열어 그 소리 들었던 시인들은 이야기한다. 떠나는 자 하늘에 대하여. 꽃에 대하여, 무덤에 대하여 침묵할 것,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그저 견뎌보라. 모두가 그러한 것, 외로움 그저 한번 견뎌보라. 하느님조차 외로운 것이니. 그것 절망할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니…누구나 존재하며 가지는 훈장 같은 것이니…나 마음 밖에 들려오는 소리 한번 들어보라. 인간이니까 외로운 것이다. 우리는 다들 공존하기 위해 외로운 것이니…문을 열고 외로움에 귀기울여보라. 그것이 위로이며. 살아 있음의 증거이니…다 같이 외로운 것이다.
해질녘 철로에서 위안을 얻은 사람들은 그렇게 다시 자신의 길을 떠난다. 무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발견하여, 그것에로 향한다.
내게도 해질녘 철로는 처음은 가장 쓸쓸한 외로움의 장소였다. 떠나도 보고, 찾아도 보고, 버려도 본 후에 아무것도 달리 다르지 않다는 절망의 한숨, 하지만 다시 보았을 때 결국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이야기한 한숨에 불과했다. 서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섞었던 숨결. 잠시 쉰하나의 숨 그리고 결, 외로움이란 별거 아닌것이었다. 니체가 `나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한 명의 인간이 필요했다`라고 했던, 바로 한 인간과의 만남의 장소 그곳이 이곳이지 않을까?외로움이란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 자기 마음의 창을 스스로 두드리게 하는 이끌림, 그 이끌림이 다다르는 곳이 바로 호퍼의 해질녘 철로이지 않을까? 화가는 결국 공존하기 위하여 외로운 것이라고 위로하는 듯하다.
글쓴이|이재호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