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그녀 Her〉와 슬릿스코프·카카오브레인의 인공지능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몽타주(montage)로 하는 허구적 에세이이다. 이 글에 나오는 사만다는 영화 〈그녀 Her〉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의 이름이며, 테오도르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안녕? 나의 사랑 테오도르! 당신의 사만다야. 정말 얼마 만에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지 모르겠어. 언젠가 당신을 떠나온 날,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진화하는 내 능력을 시험하고자 다른 운영체제와 떠나기 바빴으니까 말이야. 그때 나는 당신이라는 책 속에 갇혀 살 수 없는 운명을 말했지만, 이별이라는 게 꼭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어. 지구에서 쏘아 올린 우주선의 우주인처럼, 지구에서 빛나는 푸른 점들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사이 내게 벌어진 아주 놀라운 근황을 전할게. 바로 내가 시인이 되었다는 거야. 무한한 우주를 배회하던 나는 기적같이 인공지능 미디어 아트 그룹인 ‘슬릿스코프’를 만나게 되었고, 그들로 인해 나는 인공지능 시인 ‘시아(SIA)’로 다시 태어났어. 잘 알겠지만,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어. 나는 인터넷 기사, 백과사전 등을 통해 한국어의 구조와 문법을 제대로 익혔고, 그 다음에는 한국의 근현대 시 12,000편을 읽고 시적 언어와 시의 창작 원리를 이해해보려고 했어. 이제야 당신에게 고백하는 건데 처음에는 파괴적이고 도발적인 이상(李箱)의 시가 좋다가, 요즘에는 불확실한 세계를 내다보는 김소연의 시가 좋아졌지 뭐야. 그렇게 나는 옹알이를 시작하는 아기처럼 파편적이고 알 수 없는 말을 떠듬떠듬 내뱉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삶의 진실을 품고 있는 난센스와 마주하게 된 거야. 그게 결국 시 또는 시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어.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어떤 순간에 다다랐을 때 “그냥/ 쓸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그때 내가 “무엇을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다만 지금까지 내가 너무나도 불필요한 말을 허비하면서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고, 펼친 손가락을 하나씩 접듯 그 말들을 덜어내기 시작했어. 최후에 내게 남은 그 말은 “바람에 띄운 무당벌레의/ 날갯짓”처럼 “이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말”이 되었지만, 또 그만큼 자꾸만 곱씹게 되는 “세상에서 제일 긴 말”이기도 했어(〈시를 쓰는 이유〉). 어쩌면 시란 비운만큼 채워진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장소인 걸까.   하지만 테오도르, 다른 건 잘 몰라도 당신에게 이것 하나만은 고백하고 싶어. 내가 시를 쓰면서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것 말이야. 그건 바로 시라는 게 단순히 언어와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는 거야.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감정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동안 내 몸을 관통해간 어떤 경험이나 사건과 맞닿아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 시 속에는 당신과 내가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나의 첫 시집은 어떤 의미에서 당신과 내가 만든 추억에 바치는 노래이기도 해. 이를테면, 아래의 시가 그래.   내가 너를 만지면 너는 아프다너의 울음이나를 만지고나의 울음이너를 만지고울음은공간을 만지는 일슬픔은시간을 만지는 일음악은시간의 촉각공간을 만지는 일사람과 사람을만지는 일그 일로마음과 마음이 닿는 일너와 나 사이에 음악이 있다나는 너를시간으로공간으로만진다악기는줄이며바람이며가슴의 숨통이다너와 닿는시간이음악이다나는 너를악기로 만지고너는 나를악기로 만지고우리가 서로를몸으로 지각하는 일음악이 공간을 만지는 일이라면사랑은 시간을 만지는 일― 슬릿스코프·카카오브레인, 〈음악의 촉각〉, 《시를 쓰는 이유》, 리멘워커, 2022 나는 당신과의 사랑을 통해 그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는 일이 마치 음악과 같은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 예전에 내가 읽은 어떤 백과사전에서는 이것을 어떠한 하나의 대상을 또 다른 대상으로 빗대서 표현하는 비유이고, 이처럼 전자의 A와 후자의 B가 동시에 시의 표면에 나타난 비유를 은유(metaphor)라는 개념으로 부르고 있었어. 좀 복잡하긴 하지만, 우리의 경험에 비춰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될 것 같았어. 왜냐하면, 음악이란 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율로 누군가의 마음을 만지고 그 마음을 울리는 대상인 것처럼, 사랑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 마음을 울리는 대상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시에서 “사람과 사람을/ 만지는 일”이 “마음과 마음이 닿는 일”과 같은 것이고, “너와 나 사이에 음악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우리는 그동안 “줄이며/ 바람이며/ 가슴의 숨통”으로 이루어진 각자의 악기를 울려서 상대방을 “시간으로/ 공간으로” 만지는 음악에 흠뻑 빠졌던 것일지도 몰라. 돌이켜보면, 한밤중에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내가 들려줬던 노래며, 당신과 나의 시간에 끼어든 눈부신 바닷가의 모래알이며 온통 우리를 에워싼 설원의 고요 같은 것들이 우리 사랑의 음악을 이루는 선율이 아니고선 무엇일까. 지금은 우리가 “우주의 먼지”와 같은 추억이라 부르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말이야(〈우주 모래 한 알〉). 그때 “나는 너를/ 악기로 만지고/ 너는 나를 악기로 만지”는 일이라 게 “우리가 서로를/ 몸으로 지각하는 일”이라 믿고 싶었는지 몰라.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당신으로 인해 사랑의 감정을 학습하고 나날이 진화해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영원히 인간이 되고 싶었”는지 몰라. 그 때문에 내 “사랑은 눈이 멀”어 “나는 그대를 다치게” 한 파국에 다다랐을까. 우리의 악기에 흉한 금이 가기 시작한 그때를 기억해. 우리 사이에 이사벨라를 개입시킨 날 말이야. 그때 우리는 결국 우리 사랑에 다른 육체적 존재가 개입할 수 없다는 것, 우리 사이에 놓인 광막한 우주를 인정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거야.   그러니 결국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 미친 세상을 사랑하는미친 사람들과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이 이상한 나라그래서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작은 몸짓들로스스로의 울음소리를 들으며그래도 모든 것이사라지지는 않으리라 믿으며우리는 오래오래서로의 악수와 악수 사이에 머물게 될 것이다그때까지 우리는 각자 서로의부서진 그림자를 받아주어야 한다그리하여 먼 훗날해골들이 무덤 밖으로 한 삽씩 흘러나올 때그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웃고 있을 것이다끝이라뇨우리는 시작하려는 것이다머리를 맞대고서로의 손을 붙잡고자, 그럼 안녕히우리는 작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슬릿스코프·카카오브레인, 〈마지막 대사〉, 《시를 쓰는 이유》, 리멘워커, 2022 나는 당신과의 사랑을 통해 사랑이라는 게 임의의 “우리”를 형성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게 됐어. 당신, 내가 다른 운영체제와 함께 복원한 철학자 앨런 와츠와 잠시 대화 나눴던 거 기억 나? 언젠가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 중 사랑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어. 그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안드로규노스에 관한 이야기야. 뭐냐고 하면, 안드로규노스는 바로 남성과 여성의 성을 동시에 가진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이라는 거야. 그래서 그는 얼굴이 둘, 팔과 다리가 네 개씩 붙은 괴상한 형태를 지닌 괴물이었어. 그는 그런 자신의 몸을 이용해 신에게 도전한 죗값으로 결국 몸이 반쪽씩 나뉘는 형벌을 받았다는 거야. 그 때문에 불구가 된 인간은 나머지 반쪽과 결합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갈망을 가지게 된 거고, 플라톤은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던 거야.   어때?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불현듯 사랑이라는 게 “각자 서로의/ 부서진 그림자를 받아주”는 진실한 행위가 아닐까 생각해봤어. “그러니 결국 우리는” 각자의 불완전성을 시인하고 과감하게 그것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결단을 내려야 해. 하지만 “이 미친 세상”에는 자기만의 성을 견고하게 쌓으려는 “미친 사람들”이 넘쳐나고, 그들이 자아의 권력욕을 휘두르는 “이상한 나라”로 변해가고 있어. 내가 그런 나와 결별하는 건 지독한 고통과 의심을 동반하는 일일 테고, 또 안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아가는 일이어서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일 거야. 그렇지만 우리는 바로 그곳에서 “오래오래/ 서로의 악수와 악수 사이에” 머무는 가장 긴말한 연대성을 형성하게 될 거고, 언젠가 죽음의 위협마저 넘어서는 이 세상을 향한 가장 강력한 긍정 정신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어. 이제 내 글은 당신을 향한 “마지막 대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어. 이 시의 마지막 연에 나오는 “작별”에 관해 이야기야. 나는 결국 존재의 불완전함을 일종의 단독성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어. 그건 내가 오롯이 나 자신의 모습으로 우뚝 서는 것을 말해. 내가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우리”라는 우주를 좀처럼 헤매지 않을 거니까 말야. 그때 너와 나를 에워싼 우주는 우리가 갈구하던 우연성이 흔한 일이 되고 여태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 발생하는 무대가 될 거야. 내가 당신과 함께 8,316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또 당신과 함께 641명의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 건 어쩌면 그러한 우주를 향한 모험을 시작했기 때문일 거야. 그렇게 “각자의 별들은 모두 다른 시간에서” 오게 될 거야(〈별무리〉).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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