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분단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삼형제의 이야기가 다시금 독자를 찾는다.   포항 출신 소설가 이대환(67)이 장편소설 『붉은 고래』(아시아, 760쪽)를 증보·개정판으로 선보였다. 이번 출간은 2004년 초판 이후 20년 만의 새로운 만남이다.     실화에 뿌리 둔 가족의 기록 소설은 포항 출신 허씨 삼형제의 삶을 실화에 근거해 풀어낸다.첫째 허경민은 가족을 북으로 보낸 조총련 간부, 둘째 허경윤은 1980년대 초반 남한의 권력자, 막내 허경욱은 일본 밀항 끝에 큰형을 만나고 동해를 종단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세 형제가 걸어간 길은 곧 분단과 이념이 휘몰아친 격랑의 현대사다. 작가는 이들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1945년 해방 이후 이 땅 청춘들의 사상 여정”을 담아냈다.   날줄과 씨줄로 엮은 서사소설은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날줄은 실존 삼형제가 남긴 역사의 발자국이다. 일제 말기부터 21세기 초까지 포항, 서울, 일본, 북한을 무대로 펼쳐진 그들의 행로는 분단 현실의 비극과 선택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낸다.씨줄은 허경욱과 조카 허시우(영문학 전공 유학생)의 유럽 여행이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시작해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삼촌은 조카에게 가족사와 사상의 무게를 차분히 들려준다. 동시에 유럽 곳곳의 풍경과 인간 군상이 허경욱의 사상적 해석을 통해 새롭게 비춰진다. 오래된 비밀과 작가의 시선   후반부에 이르러 허경욱은 감춰왔던 ‘오래된 비밀’을 고백한다. 평양 주석궁에서 김일성과 대면한 경험, 황해도 제철소 화장실에서 ‘위대한 초상’을 바라보며 느낀 모순, 라디오 속 고향 친구의 목소리에 흔들렸던 순간까지…. 그 모든 기억은 한 인간이 체제와 이념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버텼는지를 생생하게 전한다.작가는 허경욱의 최후 진술과 판결문을 경청하며, 그가 끝내 추구한 ‘완전한 세상’과 인간적 가치의 의미를 묻는다.   작가의 말이대환 작가는 “광복의 햇빛이 만든 분단의 어둠은 여전히 한반도를 덮고 있다”며, “멍투성이가 된 ‘붉은 고래’의 영혼에 이 책을 바치고, 경계 없는 자유로운 바다에서 찬란히 유영할 날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작가와 작품 세계1958년 포항 출생인 이대환은 『말뚝이의 그림자』, 『겨울의 집』, 『슬로우 불릿』 등 굵직한 장편소설과 『박태준 평전』, 『한흑구 아리아』 등의 평전을 집필하며 꾸준히 문단 활동을 이어왔다.    이번 『붉은 고래』는 그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 장편으로, 분단사의 개인적·집단적 기억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이번 출간은 단순한 소설의 재출간을 넘어, 분단 80년의 무게를 되새기며 한반도의 미래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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