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극적인 승부가 있었던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버저비터’로 우승팀이 가려졌다.포항스틸러스와 울산현대의 K리그 클래식 최종전. 4분의 후반 추가시간도 거의 다 흘러 0-0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는 듯 했다. 비겨도 우승인 울산은 승리 세리머니를 떠올렸다. 경고누적으로 이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김신욱도 동료와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내려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인 후반 50분, 김재성의 프리킥이 골문으로 향했고 마지막 공격에 가담한 ‘해병전사’ 김원일의 극적인 ‘버저비터’가 터졌다. 거의 모든 선수가 울산 페널티지역에 몰려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혼전 상황에서 대여섯 차례 터치를 거친 볼이 `영원한 해병` 김원일의 오른발에 걸려 번쩍하더니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승리의 여신이 포항에 짜릿한 윙크를 보냈다. 포항은 포효했고, 울산은 울상이 됐다. 포항이 한국프로축구를 평정했다. 포항은 FA컵 우승에 이어 K리그 클래식까지 올 시즌 2개의 우승 트로피를 모두 품었다. 한 시즌에 두 개의 우승컵을 독식한 것은 포항이 처음이다.포항은 1일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린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A그룹 40라운드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김원일의 천금 같은 결승골을 앞세워 울산을 1-0으로 물리쳤다. 포항은 막판 6연승을 올리며 선두 울산을 끈질기게 추격해 마지막 순간에 따라잡는 대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이로써 21승11무6패(승점 74)가 된 포항은 울산(승점 73)을 1점차로 따돌리고 K리그 클래식 패권을 안았다. 포항은 2007년 이후 6년 만이자, 통산 다섯 번째(1986년·1988년·1992년·2007년·2013년) 별을 가슴에 새기게 됐다.특히 포항은 외국인 선수 없이 ‘토종군단’으로 ‘더블’(K리그 클래식, FA컵)을 달성하는 K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할 위업을 달성했다.포항 황선홍 감독은 강철군단의 지휘봉을 잡은 지 3년 만에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일구며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황 감독은 포항 사령탑 3년 동안 FA컵 2연패를 포함해 벌써 3개의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다.반면 8년 만에 정상을 노크한 울산은 김신욱, 하피냐 등 주포들이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공백을 메우지 못해 안방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득점왕이 유력하던 울산의 골잡이 김신욱(19골)은 FC서울의 데얀이 이날 전북현대를 상대로 19호골을 터트려 득점왕 타이틀도 내줬다. 김신욱은 데얀과 나란히 19골을 기록했지만 출전 경기수가 많아 득점왕을 막판에 놓쳤다.비겨도 우승하는 울산, 반드시 이겨야 역전하는 포항. 게다가 울산은 홈에서 딱 한 번 져 안방불패. 유리할 게 없는 상황에서 포항 강철전사들의 무기는 투혼뿐이었다. 포항의 악착 같은 플레이에 주눅이 든 울산은 정면승부를 피했다. 소극적 대응이 울산의 패착이었다.압박감 때문인지 포항도 장점인 패스플레이를 살리지 못해 0-0으로 전반을 마쳤다. 게다가 포항은 전반에만 포백 수비라인 중 김재성, 김원일, 신광훈 등 3명이 차례로 경고를 받아 퇴장 부담까지 떠안았다. 전체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상황에서 황선홍 감독은 후반 9분부터 2분 간격으로 공격수 박성호, 조찬호를 조기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반드시 득점을 올려야 하는 포항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박성호의 제공권이 살아나면서 경기 흐름이 포항 쪽으로 급격히 쏠렸다. 조찬호도 부지런히 오른쪽을 파고들며 찬스를 엮었다. 그러나 극단적인 수비로 돌아선 울산의 골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포항은 후반 16분 조찬호의 크로스를 박성호가 수비수를 뿌리치며 다이빙 헤딩슛을 시도했으나 울산 골키퍼 김승규의 선방에 막혀 문수구장 한 면을 가득 메운 2000여명의 원정 응원단의 탄성을 불렀다.마지막 교체카드로 신영준까지 투입한 포항은 파상공세를 퍼부었으나 전원 수비에 들어간 울산의 견고한 수비벽을 뚫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전·후반 90분이 지나고 추가시간 4분이 주어졌다. 울산의 노골적인 경기 지연에 화난 포항 관중석에서 물병이 날아드는 소동도 있었다. 어수선한 와중에 포항은 마지막 프리킥 기회를 잡았고, 이날의 히어로 김원일이 기어이 결승골로 연결하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가을축구’의 주인공이 됐다.한편 전북은 이날 서울과의 최종전에서 1-1로 비기며 승점 63을 기록, 서울(승점 61)을 따돌리고 3위로 시즌을 마쳤다. 서울의 데얀은 전반 41분 시즌 19호골(29경기)을 뽑아내 김신욱(19골·36경기)을 제치고 3년 연속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