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에서 매일 바쁘게 일하는 `단백질 공장`이 수십억 년 만에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공학과 이준구 교수 연구팀이 리보솜을 이용해 기존의 선형을 넘어 고리형 구조를 포함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중 하나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리보솜은 지구에서 발견되는 모든 생물 종이 가진 `단백질 제조 공장`이다. 아미노산이라는 작은 부품들을 레고 블록처럼 하나씩 연결해서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든다. 1초에 약 20개의 아미노산을 연결하는데, 이는 사람이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무려 수만 배나 빠른 속도다.
하지만 리보솜은 지구상의 생명현상이 발생한 이래로 수십억년 동안 모든 단백질을 국수처럼 길쭉한 일직선 모양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런 직선형 단백질 또는 펩타이드는 우리 몸에서 쉽게 부서지고, 병균이나 암세포 등 특정한 표적에 달라붙는 힘이 약해 의약품으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직선형보다 단단하고 오래 버티며, 목표물에 더 강하게 달라붙을 수 있는 고리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페니실린과 같이 자연에서 발견되는 천연 항생제의 상당수가 고리형 구조를 지닌다는 점에 착안해 리보솜이 혹시 이러한 항생제를 바로 합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리보솜 자체를 바꾸는 대신 리보솜이 사용하는 ‘재료’를 새로 만들었다. 개발된 26종의 특수 아미노산은 리보솜 내부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끌어당겨 고리를 만들 수 있다.
무세포 단백질 합성시스템1)에서 실험한 결과, 리보솜은 기존 선형 결합 외에도 오각형과 육각형 고리형 중추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반응이 37℃와 pH 7.5라는 단순한 수용액 조건에서 본래 리보솜이 선형 구조를 만드는 메커니즘을 그대로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준구 교수팀은 지난 2022년에 같은 저널에 수십억 년 동안 ‘선형 구조만 만들던’ 리보솜이 처음으로 6각 고리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을 세계 최초로 보고 했다. 이번 연구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새로운 형태의 5각 및 6각 고리구조로 범위를 더욱 다양하게 확장했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특수 재료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고리구조 형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는 리보솜을 새로운 화학반응 촉매로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 향후 고기능성 의약품이나 생체재료 개발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준구 교수는 “무엇보다 리보솜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화학반응 과정과 거의 같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라며, “리보솜 안의 4,500개의 부품이 어떻게 협력해 이런 마법 같은 일을 해내는지 더 연구한다면 생명현상과 진화에 대한 이해도 한층 깊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수신진연구사업, 합성생물학 핵심기술개발사업, 한우물파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