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의 기쁨은 잠시고, 벌써부터 걱정이 많습니다.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내년엔 더 좋은 축구를 해야 하지만 주어진 상황이 정말 녹록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트레블(3관왕)입니다. 올해처럼 묵묵히 우리의 길을 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올 가을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하나인 장성환 포항스틸러스 사장은 기쁨보단 근심이 깊어 보였다. 괜히 엄살을 부리는 눈치는 아니었다.K리그 30년 역사상 최초의 ‘더블’(FA컵, K리그 클래식)을, 그것도 외국인 선수 1명 없이 달성하는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포항 수장의 시선은 벌써 내년에 맞춰져 있다.올해 숱한 난관을 뚫고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한 포항은 내년 ‘트레블’을 꿈꾸고 있다. AFC(아시아축구연맹)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품어 아시아 정상까지 밟는다는 원대한 포부다. 포항은 이미 2009년 AFC챔피언스리그 정상을 경험했다. `더블`에 이어 `트레블` 달성에 자신감을 갖는 이유다.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또 가야 한다. 포항의 숙명이다. ‘더블’을 이룬 팀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희망이다. 40년 전통의 명문구단 포항의 마지막 꿈인 `트레블` 도전이 시작됐다.장 사장의 목표는 분명하다. `트레블` 외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 또다시 도전이다. 사실 올 초 포항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뚜렷한 전력보강 없이, 외국인 선수까지 다 내보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나 포항은 해냈다. 명문구단의 힘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줬다. 40년 세월 동안 축적해온 포항이란 브랜드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올 초 터키 전지훈련 때부터 모든 게 불안했어요, 특히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잘 할 수 있을까란 물음표가 당연히 따라붙었죠. 그러나 우리의 선택은 분명했습니다. 어정쩡한 용병들을 데리고 하느니 국내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죠. 황선홍 감독도 더욱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고, 선수단 전체에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고 봅니다. 탄탄한 조직력과 끈질긴 생명력을 갖춘 팀으로 거듭났습니다.”올해 포항은 메인스폰서인 포스코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긴축운영이 불가피했다. 외국인 선수는 물론이고 선수단 규모도 슬림화했다. 이른바 빅 클럽이라는 수원삼성이나 FC서울 예산의 절반으로 살림을 꾸려야 했다. 내년에도 구단 경영 여건이 만만치 않다. 장 사장은 “글로벌 장기 불황의 여파로 포스코의 이익이 갈수록 줄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형편이다”며 “기대치가 높아진 선수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혜롭게 풀어나가려고 한다”고 했다. 변화보단 내실을 기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황 감독이 2년간 더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안정감이 최고조다.포항이 더블을 달성했다고 해서 모든 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용병 퇴출, 주축 선수 이탈, 경기장 이전 등 위기가 잇따랐다. 장 사장은 고비처마다 정면돌파하는 뚝심을 보였다. 특히 지난 여름 스틸야드의 잔디가 무더위와 가뭄으로 녹아내려 포항종합경기장으로 경기 장소를 옮겨야 했다. 긴밀한 패스 플레이가 생명인 포항으로선 포항종합경기장 뻣뻣한 잔디는 장애물이었다. 강한 바람도 변수였다. 장 사장은 “스틸야드 잔디를 보수하면서 끝까지 가느냐, 환경이 좋지 않은 종합경기장으로 옮기느냐를 놓고 고민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경기 장소를 바꾸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종합경기장은 스틸야드보다 집중도가 떨어져 우리의 강점을 살리지 못할 것이란 점이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망가진 잔디에서 축구를 하는 것은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해 잔디 전면 교체 공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우려가 현실이 됐다. 경기 장소 변경 이후 9월 22일 울산현대와의 홈경기 1-1 무승부를 시작으로 선두다툼이 한창인 중요한 시점에서 4무승부로 주춤했다. 포항종합경기장에서만 3무승부를 했다. 시즌 초부터 줄곧 선두를 달리던 포항이 울산에 따라잡히는 빌미가 됐다. 강철전사들의 저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FA컵 우승으로 발걸음도 가벼웠다. 울산전을 포함해 4무승부 후 파죽의 6연승을 거두며 막판 대 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10경기 무패(6승4무)로 포항이 끈질기게 따라붙자 앞서가던 울산은 조급해졌다. 울산은 39라운드에서 부산에 1-2로 패한 데다 전력의 절반인 김신욱, 하피냐가 경고누적으로 포항과의 최종전에 출장하지 못하는 궁지에 몰렸다. 1, 2위 팀간 결승전처럼 치러진 40라운드 최종전에서 울산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포항에게 챔피언자리를 내줬다. 울산 사령탑 김호곤 감독이 자진사퇴하기에 이르렀다.포항과 울산의 대결은 과거 `동해안 더비`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철강사 더비`로 더욱 첨예해졌다. 현대제철이 몇 년 전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면서 포항-울산전은 용광로 대결로 더 뜨거워졌다. 포항이 마지막에 웃었고, 울산은 고개를 떨궜다.장 사장은 “40여 년 전 포스코가 영일만에 자리 잡을 당시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지만 온갖 역경을 딛고 오늘날 글로벌 넘버원 철강사로 우뚝 섰다”며 “강철전사들에게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위대한 DNA가 흐르고 있어 내년 한국프로축구 사상 첫 ‘트레블’도 가능하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