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세요.”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신년인사회에서 한 말이다.이날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기초단체 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논의되고 있는데 새누리당이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공약하신 대로 정당공천 폐지를 위해 분명한 입장을 여당에 말씀해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박 대통령이 같은 테이블에 자리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를 향해 한마디 던진 것이다.김 대표는 나아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제도가 논의되고 있고, 민주당은 벌써 폐지 당론을 정했지만 여당이 별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여당의 무성의한 태도를 박 대통령에게 일러바쳤다(?).박 대통령이 황 대표에게 “잘 하세요”라고 한 것은 ‘지금 잘 못하고 있으니 잘 하라’는 질책이기보다는 ‘국회에서 잘 논의해보라’는 의례적인 말이라는 해석이다.박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신년인사회 후 취재진과 만나 "여야가 지금 정개특위를 하고 있고, 그래서 여야 간에 국회에서 잘 알아서 하라고 말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박 대통령의 말뜻을 풀이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잘 하세요.”란 말이 왠지 “제발 잘 좀 하세요.”라고 들린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도 똑같이 공약했다. 1년 후 민주당은 이미 당론으로 공천제 폐지를 확정했지만, 새누리당은 여태 미적대고 있다. 자신의 대선 공약을 1년 넘게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당이 박 대통령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잘 좀 해라.”고 나무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사실 국회의원들로서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가 달갑지 않다. 공천권을 거머쥔 손아귀에 힘이 빠지는 것을 싫어한다. 공천권이라도 단단히 쥐고 있어야 단체장이나 의원들을 부리기 쉬운 까닭이다. 하물며 진영논리에 갇혀 민생보다는 정쟁을 일삼아 갈수록 국회의 권위와 신뢰가 땅에 떨어진 판에 공천권이라도 없으면 누가 국회의원들을 알현(?)하겠는가. 그게 두려운 것이다.특히 공천=당선인 지역에서는 국회의원들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멀쩡한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공천권이 생사여탈권이다.대통령 공약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는 있다. 기초노령연금 문제가 그러하다. 하지만 정당공천제 폐지는 대선 공약뿐 아니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으로 폐지돼야 한다는 쪽이다.사정이 이런데도 여당은 ‘책임정치’ 운운하며 정당공천제 폐지를 머뭇거리고 있다. 기초단체장은 공천 유지, 기초의원은 폐지라는 분리 안이 유력한 것처럼 떠돌고 있지만 여야 합의에 이를지 미지수다. 현재의 단체장 3선 연임 규정을 재선으로 축소하는 방안, 나이 제한 방안 등 구구한 설들이 국회 주위에 나돈다. 어떻게 해서라도 목줄을 계속 틀어쥐려는 의원님들의 노력이 눈물겹다.6.4 지방선거가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선거 기본 룰도 정하지 못했다. 출마 예정자들은 여의도만 쳐다보고 있다. 나라 살림살이를 다루는 새해 예산안 처리를 11년째 법적 시한을 넘기는 ‘무시무시한’(국민과 법을 무시한다는 강조의 의미) 국회에 신속한 결정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오죽하면 스스로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겠는가.‘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이 화두다. 국민 대다수가 원하고, 여야 대선 주자들이 공통으로 바로잡겠다고 공약했다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는 비정상이란 얘기다. 답은 명확하다. (최만수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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