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스틸러스가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K리그 챔피언’의 자존심을 지켰다.포항은 25일 스틸야드에서 열린 AFC챔피언스리그(ACL) E조 홈 개막전에서 전반 선제골을 내주며 흔들렸으나 후반 교체멤버 배천석이 귀중한 동점골을 터뜨려 J리그 세레소 오사카와 1-1로 비겼다.포항은 비록 홈에서 ‘승점 3’의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올 시즌 뚜렷한 전력 보강을 이룬 ‘복병’ 오사카와 무승부를 기록해 남은 ACL 일정에 부담을 줄였다.포항은 경기 초반부터 좌우 윙백 김대호, 조찬호의 적극적인 공격가담으로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전반 2분 조찬호의 크로스가 이명주의 머리에 한 발 못 미쳤고, 2분 뒤 김대호의 돌파는 마지막 순간 수비에 막혔다.선제골은 세레소 오사카의 몫이었다. 전반 10분 미드필드에서 문전으로 정확하게 연결하자 카키타니가 수비수 1명을 앞에 두고 감각적인 칩 슛으로 포항 골네트를 갈랐다. 지난 시즌 J리그에서 21골을 터뜨린 카키타니의 골 결정력이 돋보였다. 골키퍼 신화용이 전진한 틈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반대쪽 골 모서리를 뚫었다.김대호, 김광석, 김원일, 신광훈으로 이뤄진 포항 포백라인은 오사카의 단 한 번의 패스에 뻥 뚫렸다. 오프사이드처럼 보였으나 호주 선심은 기를 들지 않았다. 뒤늦게 김원일과 김광석이 카키타니 마크에 나섰지만 볼은 절묘한 코스로 골문을 파고들었다. 호주 출신 윌리엄스 주심은 전반에만 포항에 옐로카드 3개(김재성-김광석-김태수)를 꺼내들었다. 포항이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윌리엄스 주심은 경기 종반 포항이 마지막 공격에 나서려는 순간, 허무하게 휘슬을 불어 관중들의 야유를 받았다. 적어도 윌리엄스 주심의 머리에는 홈 어드밴티지란 단어가 들어 있지 않아 보였다.일격을 당한 포항은 반격에 나섰다. 조찬호-이명주의 긴밀한 패스워크로 찬스를 엮어나갔다. 전반 35분 오른쪽을 돌파한 조찬호가 반대쪽 페널티지역의 고무열을 향해 자로 잰 듯한 크로스를 날렸으나 고무열의 회심의 헤딩이 크로스바를 넘어가 아쉬움을 남겼다. 득점찬스는 무산됐으나 포항의 약속된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만회골 기대감이 커졌다.후반 들어 포항은 특유의 패스플레이로 몰아붙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선제골을 지키려는 오사카의 수비전술에 말리는 모습.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황선홍 포항 감독은 미드필더 김태수를 빼고 공격수 배천석을 후반 9분 만에 조기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무릎 부상한 황지수를 대신해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장한 김태수는 책임감 때문인지 매끄럽게 경기를 풀어가지 못했다.공격 일변도로 오사카 골문을 세차게 두들기던 포항은 후반 15분 동점골을 터뜨렸다. 고무열이 골문까지 치고 들어가 오른발 슛한 것이 수비수 맞고 배천석에게 데굴데굴 굴러갔고, 이를 배천석이 침착하게 오른발로 골네트를 흔들었다. 장신 공격수 박성호가 이적해 원톱자리에 공백이 예상됐으나 배천석은 제 역할을 다해 우려를 씻어냈다. 배천석은 수비수를 능숙하게 등지며 동료에게 패스를 연결하는가하면, 공중볼도 어김없이 따내 원톱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특히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돼 온 뒤로 돌아 나오는 습관도 말끔히 고쳐 위력을 더했다.오사카 포포비치 감독은 스코어가 1-1 동점이 되자 아껴뒀던 우루과이 골잡이 디에고 포를란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전개했다. 포를란이 후반 17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오사카 원정 팬들은 환호한 반면 1만여 포항 홈팬들은 야유로 맞아 대조를 보였다. 포를란은 ‘원석 콤비’의 방어에 막혀 30여분 동안 몸만 풀다 라커룸으로 들어간 꼴이 됐다.포항은 후반 30분, 오사카의 프리킥때 카키타니를 놓쳐 가슴 철렁한 순간을 맞았다. 사케모토의 프리킥을 카키타니가 골대 가까운 쪽으로 전진하며 잘라 먹는 위협적인 헤딩슛이 포스트를 벗어났다.황선홍 감독은 후반 31분 김승대를 불러들이고 올해 포철고를 졸업한 ‘루키’ 이광혁을 내보내 프로 데뷔전 기회를 열어줬다. 배천석과 전면에 포진한 이광혁은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부지런히 누볐다. 경험 부족으로 크로스 타임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프로 첫 무대를 축하했다.황선홍 감독은 경기 후 “비겨서 아쉽지만 첫 경기인 만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간다면 차츰 나아질 것”이라며 “선제골을 내주는 상황에서 경기 흐름을 돌려 동점골을 터뜨린 것을 좋게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오사카와의 2차전도 남았고, 잘 준비한다면 16강 진출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이날 중국 산둥 루넝과 태국 부리람이 1-1로 비겨 E조 네 팀이 모두 1무로 동일선상에서 출발하게 됐다.한편 이날 스틸야드는 겨우내 축구 관전에 목말랐던 홈 팬들과 1000여명의 일본 원정응원단 등 1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화끈한 응원전을 펼쳐 때 이른 2월의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궜다.지난해 여름 극심한 가뭄으로 전면 교체돼 이날 첫 선을 보인 스틸야드 잔디는 겨울치고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 양 팀의 수준 높은 경기를 가능케 했다.일본 서포터스들은 경기 후 과거 오사카에서 뛰며 J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황선홍 감독!”을 연호하며 ‘영웅’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