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스틸러스가 `원정팀 무덤`인 태국 부리람 원정경기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며 K리그 챔피언의 위용을 뽐냈다.포항은 11일 오후 8시(한국시간) 태국 부리람 아이모바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부리람유나이티드와의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E조 2차전에서 전반 김태수, 김승대의 연속골로 앞서가다 후반 골키퍼 신화용의 실책으로 1골을 내줘 2-1로 힘겹게 승리했다.포항은 ACL 첫 승을 올리며 1승1무로 E조 선두권으로 치고나갔다. K리그를 포함해 1무1패(세레소 오사카 1-1, 울산현대 0-1)로 부진한 출발을 보였던 포항은 ‘다크호스’ 부리람을 제물로 상승세의 발판을 마련했다.같은 조 산둥 루넝이 세레소 오사카를 3-1로 제압하고 포항과 함께 1승1무로 선두권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포항은 다득점에서 산둥에 뒤져 2위를 마크했다. 세레소와 부리람은 1무1패로 하위권으로 처졌다.자국리그 더블을 달성한 포항과 부리람 맞대결은 양국 축구팬들의 비상한 관심 속에 치러졌다. 부리람은 지난 시즌 타이 프리미어리그를 무패(23승9무)로 우승한 태국 절대강호다.특히 부리람은 지난해 AFC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올라가며 열린 네 차례 홈경기에서 한 번도 지지 않은 ‘안방불패’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FC서울, 장수세인티(중국), 베갈타센다이(일본)를 상대로 홈에서 1승2무를 거뒀다. 서울도 이곳에서 0-0으로 비겼다. 부리람에서 원정팀이 고전하는 이유는 지리적인 여건과 무더위에다 뜨거운 축구열기 때문이다. 수도 방콕에서 부리람으로 오려면 6시간이나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포항도 지난 9일 비행기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버스로 방콕에서 부리람까지 이동했다. 전날 울산현대와의 경기 후 곧장 태국으로 날아온 선수들은 파김치가 됐다. 관중들은 부리람이 공을 찰 때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함성을 질러댔다.이번 경기의 중요성을 감안해 황선홍 감독이 벤치에서 나와 경기 내내 작전지시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황 감독은 전날 미디어 인터뷰에서 “초반 30분까지 분위기를 잘 끌어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템포 조절이 필요하고 특히 선제골이 중요하다”고 말해 경기에 임하는 전략을 밝혔다.황 감독이 주문대로 포항 강철전사들은 극성스러운 태국 관중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경기를 펼쳐 경기 흐름을 잡아둘 수 있었다. 선제골도 쉽게 터져 주도권을 잡았다.전반 19분 고무열~이명주~고무열~김태수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패스가 상대 왼쪽 진영에서 이뤄졌고 김태수가 아크정면에서 오른발로 강하게 찬 것이 수비수 다리 맞고 굴절되며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선을 제압한 포항은 서두르지 않았다. 패스플레이가 살아나면서 추가골이 터졌다. 4분 뒤 이명주의 절묘한 스루패스가 침투하는 김승대의 발에 정확하게 배달됐고, 김승대가 골키퍼 나온 것을 보고 골대 반대쪽으로 감아 차는 환상적인 슛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2-0. 포항의 대승이 예상됐다. 김승대는 경기 MVP에 선정됐다.부리람은 스페인 출신인 지난해 태국리그 득점왕 카르멜로와 잉글랜드 출신 장신 공격수 제이 심슨이 포항을 위협했으나 견고한 포항 수비라인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김광석-김원일의 두터운 벽에 가로막힌 카르멜로는 후반 시뮬레이션으로 옐로카드를 받기도 했다.그러나 신화용의 결정적 실수가 나오면서 경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완벽한 경기를 펼쳤던 포항은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후반 24분 골키퍼 신화용이 아디삭의 헤딩슛을 잡다 놓쳐 1골을 허망하게 내줬다. 아디삭의 헤딩슛이 강하긴 했지만 못 잡을 신화용이 아니었건만 떨어지면서 놓친 공이 야속하게 골문으로 굴러들어가 1골을 헌납했다.1골을 따라붙은 부리람의 기세는 맹렬했다. 광적인 응원에 기름을 부었다. 황 감독은 조찬호를 빼고 배천석을 투입했다. 조찬호는 후반 17분 김태수의 완벽한 패스를 받아 노마크 찬스에서 왼발로 찬 것이 너무 약해 골키퍼에 막혔다. 조찬호가 결정지었더라면 안정적인 3-0이 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아쉬웠다.축구에서 가장 어렵다는 2-1 스코어가 되자 포항은 다급해졌고 패스미스를 남발하며 어려움을 자초했다. 반면 부리람은 홈팬들의 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세차게 몰아붙였다. 그런 와중에 조찬호 대신 들어간 원톱 배천석은 허둥댔다. 그라운드에 몇 번 넘어졌다. 볼을 잡아 시간을 끌어주고 찬스를 엮어야 하는 원톱이 흔들리면서 전체적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분위기에 압도 당한 포항은 실수를 연발했다. 황 감독은 배천석을 10여분 만에 다시 불러들이고 수비수 박희철을 투입하는 긴급처방을 내렸다. 박희철이 오른쪽 윙백으로 가고 신광훈이 허리로 전진 배치됐다. 신광훈은 5분을 남긴 상황에서 오른쪽을 돌파한 뒤 코너킥을 얻어내 동료들이 한숨 돌릴 수 있도록 했다. 박희철도 제 몫을 다했다.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에서 갈고 닦은 ‘멀티 탭’이 위기 순간에 위력을 발휘했다.추가시간 5분이 주어졌고, 포항은 부리람의 거센 공세를 육탄 방어로 막아내며 적지에서 귀중한 승리를 낚았다. 승리 후에도 강철전사들은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것도 잊고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원정팀 무덤에서 살아남은 아찔한 여운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