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은 달랐다. 포항스틸러스가 1명이 퇴장당하는 수적 열세 속에서 극적인 무승부를 이뤘다. 포항은 18일 스틸야드에서 열린 산둥 루넝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E조 3차전에서 신광훈이 전반 초반 퇴장당하고 바그너 러브에게 페널티킥으로 2골을 내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으나 김태수, 김승대의 릴레이 골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승점 1을 보탠 포항은 1승2무(승점 5·+1)로 산둥(1승2무·+2)과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에 밀려 산둥에 이어 2위를 유지했다. 위기의 순간, 강철전사들의 투지가 빛을 발했다. 신광훈, 김재성이 잇단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으로 2골을 내주는 보기 드물고, 황당한 상황이 큰 자극제가 됐다. 지난해 더블(K리그 클래식, FA컵) 달성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다소 느슨하게 시즌을 시작한 포항이 정신을 바짝 차리는 계기가 됐다. 포항은 전반 12분 만에 신광훈이 골문을 지키려다 볼을 손으로 쳐내 바로 레드카드를 받았다. 산둥의 역습 상황에서 포항 오프사이드 트랩이 무너졌고, 신화용이 각을 좁히려고 골문을 비우고 뛰어나왔다. 텅 빈 골문에 진 징다오가 슈팅을 날리자, 골문으로 향하던 신광훈의 팔에 볼이 맞아 퇴장과 함께 바그너에게 페널티킥 골을 헌납했다. 9분 뒤 이번엔 김재성의 핸드볼 파울로 또다시 바그너에게 페널티킥 골을 내줬다. 상대 크로스가 김재성 팔에 맞고 굴절됐다는 이유로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2000여 대규모 원정 응원단을 꾸린 산둥에 0-2로 끌려가는 절박한 상황이 잠자던 강철전사들의 투지에 불을 질렀다. `스틸타카`의 위력이 되살아났다. 수비수 1명이 부족한 악조건 속에서도 포항은 공격적으로 맞받아쳤다. 전반 31분 추격의 발판이 되는 만회골이 터졌다. 김승대의 크로스가 수비수 맞고 흐르자 김태수가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김태수는 태국 부리람전에 이어 ACL 2경기 연속골을 터뜨려 위기에 강한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했다. 포항이 2-1로 따라붙자 산둥이 다급해졌다. 수비진이 흔들렸다. 산둥 응원석도 조용해졌다. 그러나 포항의 동점골은 쉽게 터지지 않았다. 전반 37분 김대호의 크로스에 이은 문창진의 왼발 슈팅이 수비수에 막혔고, 이어진 김승대의 중거리 슛은 골대를 살짝 벗어났다. 44분 고무열의 크로스가 예리하게 꺾이며 반대쪽 골대를 때리고 흘러들어가는 순간, 골키퍼가 쳐냈다. 후반 들어 황선홍 감독은 과감한 교체카드로 동점골을 노렸다. 29분 문창진을 불러들이고 힘이 좋은 유창현을 투입했다. 교체작전은 적중했다. 1분 뒤 왼쪽에서 유창현이 힐패스로 연결하자 김승대가 수비수를 달고 뛰며 감각적인 아웃프런트 슈팅으로 골네트를 흔들었다. 김승대의 집중력과 슈팅 감각을 칭찬할 수밖에 없는 환상적인 골이었다. 김승대는 김태수와 함께 ACL 2경기 연속골로 포항의 새 해결사로 떠올랐다. 포항은 철통같은 수비를 보이던 김원일의 패스 실수로 후반 38분 가슴 철렁한 위기를 맞았으나 신화용이 1대 1 상화에서 양 쉬의 슛을 잘 막아냈다. 황선홍 감독은 후반 44분 마지막 교체선수로 김형일을 택했다. 원래 포지션인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로 세우는 깜짝 카드였다. 김형일은 몇 차례 헤딩 경합에서 볼을 따내 동료에게 연결하며 황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황 감독은 이에 앞서 후반 40분 루키 강상우를 내보내 산둥 수비진을 흔드는 임무를 부여했으나 의욕이 앞선 나머지 결정타를 날리지 못했다. 강상우는 빠르고, 좋은 기술을 가진 가능성 있는 신인이란 점을 선보인 것에 만족해야 했다. 쌀쌀한 날씨에 경기장을 찾은 5000여 홈팬들은 연신 입김을 불어가며 극적인 역전골을 학수고대했지만 경기는 2-2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황선홍 감독은 “초반 예기치 못한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으로 2골을 내줘 어려운 경기가 이어졌다”며 “홈에서 좋은 승부를 하려했는데 아쉽고, 내달 산둥 원정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잘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잘 해줬다. 부산전과 비교해 공격 전개 속도나 세밀함도 좋아졌다”면서 “골이 없는 고무열이 터져주면 한결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애제자`의 분발을 바랐다. 불같은 투혼으로 ACL 선두권을 사수한 포항은 오는 22일 홈에서 열리는 수원삼성과의 K리그 클래식 3라운드를 갖는다. K리그에서 2패로 체면을 구긴 포항이 첫 승을 신고하며 `명가` 자존심을 세울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