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그리고 이명주와 스테보. 올 시즌 포항스틸러스와 전남드래곤즈의 첫 ‘제철가 더비’는 자연과 두 걸물이 빚어낸 명승부였다.  이날 ‘제철가 형제’ 맞대결은 전반 바람이 의외의 장면을 연출하더니 후반 이명주와 스테보가 K리그 클래식 최고 수준의 플레이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역전과 동점을 거듭한 경기 내용이 따가우면서도 서늘한 4월 봄볕을 닮았다.  포항 황선홍 감독과 전남 하석주 감독은 주축선수들을 뺀 오더로 장외 신경전을 펼쳤다. 황 감독은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린 ‘대들보’ 이명주를 전반 벤치에 묵혔다. ‘이명주급 신인’ 손준호도 벤치를 지켰다. 의외였다. 둘 중 하나는 기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 감독 역시 ‘원샷원킬’ 스테보를 아꼈다. 김 빼기 작전으로 일합을 겨룬 두 감독은 후반 이명주와 스테보를 투입하며 본격적으로 불을 댕겼다.  포항은 6일 광양전용구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6라운드에서 전남과 2-2로 비겼다.   과거부터 ‘형제 대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격렬한 승부를 펼쳐 시쳇말로 ‘남보다 못한 사이’인 양 팀은 승점 1을 사이좋게 나눠가졌다.   포항은 3승1무2패(승점 10)로 4위에, 전남은 3승2무1패(승점 11)로 3위로 나란히 상위권에 포진했다.  포항은 최근 3연승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전남전 무패행진을 ‘9’로 늘렸다. 포항은 2010년 7월 10일 이후 전남에 5승4무의 압도적 우위를 지켰다.   포항만 만나면 매번 꼬리를 내린 전남은 조용히 복수의 칼을 갈았다. 현영민, 스테보 등 스쿼드도 대폭 강화했다. 스테보와 현영민은 날카로운 ‘용’의 발톱이 돼 포항전 4연패의 사슬을 끊어냈다.   전남의 강한 압박에 막혀 초반 경기 실마리를 풀지 못한 포항은 불의의 한방을 맞으며 끌려갔다. 전반 43분 코너킥 상황에서 현영민의 오른발 ‘바나나킥’이 바람에 실려 포항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가까운 쪽 골대에 있던 신화용의 키를 훌쩍 넘긴 볼은 예리한 궤적을 그리며 골네트를 흔들었다. 골문 커버가 허술했다.  0-1로 뒤진 포항은 후반 이명주가 투입되며 ‘스틸타카’의 면모를 되찾았다. 얼마 안 가 동점골이 터졌다. 후반 6분 문창진이 상대를 속이는 절묘한 패스로 찬스를 엮었고, 김재성이 달려들며 그대로 오른발 슈팅으로 ‘만년 문지기’ 김병지가 지킨 전남 골망을 갈랐다.   1-1이 되자 양 팀 벤치는 분주해졌다. 포항은 강수일, 전남은 송창호와 스테보를 3분 간격으로 투입하며 진검승부에 들어갔다.   포항 이적 후 첫 출장한 강수일은 탄력 넘치는 움직임을 보이며 몇 차례 슈팅을 날렸지만 골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강수일은 익숙하지 않은 ‘스틸타카’에 함몰되기보다는 강점인 스피드와 유연성을 살리고, 골 결정력을 좀 더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주가 중원을 지배하면서 포항은 경기 흐름을 유리하게 돌렸다. 이명주는 후반 30분 문창진의 크로스를 역전 헤딩골로 연결해 5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3골 4도움)를 올렸다. 이명주의 마빡이 세리머니는 낯설었지만 귀여웠다. 문창진은 2개 연속 도움으로 감춰둔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역전 위기에 몰린 전남은 스테보의 발로 기사회생했다. 스테보는 파워 넘치는 드리블로 포항 수비라인을 위협하더니 기어이 동점골을 도왔다. 후반 34분 스테보가 문전에서 경이로운 ‘마르세이유턴’으로 포항 수비수 3명을 따돌린 뒤 연결하자 `광양 루니` 이종호가 왼발로 결정지었다.  황 감독은 후반 38분 신영준을 들여보내 지난해 결승골의 좋은 기억을 살리려고 했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황선홍 감독은 경기 후 “전반만 잘 넘기면 후반 흐름을 우리가 가져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람 때문에 정상적인 경기가 어려웠다”면서 “매 경기 실점하고 있는데, 오늘도 수비에서 문제점이 노출됐다. 개선돼야 한다. 분위기를 잘 추슬러 주중 경남전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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