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스틸러스의 기세가 K리그를 강타하고 있다. 이쯤 되면 ‘1강’이 아니라 ‘극강’이다. 6경기 무패(5승1무)에다 1위까지 치고나왔으니 이견이 있을 수 없다. AFC챔피언스리그(ACL)까지 치면 8경기 무패(6승2무)의 뚜렷한 상승세다. 지난해 외국인선수 없이 더블(K리그 클래식, FA컵)을 달성할 때만 해도 ‘운이 좋아서’ ‘저러다 말겠지’ 라는 평이 따랐다. 포항의 독주를 시샘하는 세력도 생겼다. 그러나 포항은 이미 K리그 팀들이 견제할 수 없는 수준에 올라섰다. 포항의 경쟁자는 포항일 뿐이다. 사상 첫 `더블`에 이어 역사에 길이남을 `드레블(3관왕)`도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포항의 시선은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과장하는 것 같지만 경기 내용과 수치를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18득점으로 팀 득점 2위 수원삼성(11득점)과 비교가 안 된다. ‘1강’이라는 전북현대(8득점), ‘김신욱의 팀’ 울산현대(9득점)는 포항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 포항은 12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제주와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8라운드에서 전반 김재성의 멀티골(2골)과 후반 김승대의 쐐기골로 3-0으로 크게 이겼다. 포항은 5승1무2패(승점 16)로 전북현대(승점 14)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포항의 강점은 누구 발에서 골이 터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제 8라운드를 했을 뿐인데, 상대 수비에겐 공포 그 자체다. 1골이라도 터뜨린 선수가 8명이다. 김승대(5골), 이명주, 김재성(이상 3골), 유창현(2골), 문창진, 손준호, 강수일, 고무열(이상 1골) 등 거의 모든 공격자원들이 골 맛을 봤다. ACL까지 넓히면 김태수, 김승대(이상 3골), 이명주, 고무열, 배천석(이상 1골)까지 아우른다. 특히 이명주(7경기연속 공격포인트·3골6도움)와 김승대(5골2도움)는 눈빛으로 통하는 찰떡 호흡으로 공격을 주도하고 있다. 이명주는 도움에서, 김승대는 득점 선두다. 둘은 포철중-포철공고-영남대로 이어지는 포항 유스 시스템이 낳은 걸작이다. 여기다 올해는 ‘준비된 신인’ 손준호까지 가세했다. 손준호는 2년 선배인 이명주와 체격과 플레이스타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뛰는 모습까지 닮았다. 심판들이 헛갈려 할 정도다. 그래서인지 최근 머리를 짧게 깎았다.단순히 골을 많이 넣는 것으로 포항의 상승세를 설명하기가 부족하다. 골을 만드는 과정이 예술이다. 이명주, 김승대, 김재성, 손준호, 문창진, 고무열, 유창현 등 미드필더와 공격수간 유기적인 호흡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12일 제주전에서 터진 3골 모두 감각적인 패스와 깔끔한 마무리가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는 장면이 흠이라면 흠이다. 과감함과 강력함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배천석, 이진석 등 원톱자원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황선홍 감독의 전술운영도 만개한 느낌이다. 상대에 따라 자유자재로 펼치는 지략이 ‘제갈공명’급이다. 축구를 대하는 자세가 마치 구도자 같다. 정작 황 감독은 최근 상승세에 대해 “선수들이 축구자체를 즐긴다. 또래들이 많아서인지 좋은 분위기가 경기력으로 나타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포항의 상승세를 이끄는 요소가 축구를 즐기고, 팀 분위기가 좋다는 것 밖에 없을까. 포항 프런트는 말한다. “축구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팀을 위해 물러설 줄도 아는 열린 사람이다. 구단의 방침에 따라 두 시즌 연속 외국인 선수 없이 팀을 잘 이끌어줘 고맙다.” 황 감독에 대한 무한 신뢰가 묻어난다.황 감독은 절대 선수를 탓하거나 비난하는 법이 없다. 선수가 해이해지거나 부진할 때 명단에서 뺀다. 최고의 징계다. 배천석과 김원일이 좋은 케이스다. 배천석이 ACL 태국 부리람전에서 원톱 역할을 하지 못하자 교체 10분 만에 바로 뺐다. 선수로선 치명적이다. 이후 배천석을 오랫동안 볼 수 없었다. 황 감독은 12일 제주전 후반 28분 배천석에게 기회를 줬다. 한 달 만에 경기장을 밟은 배천석은 삭발 상태였다. 집중력을 발휘하며 감각적인 패스로 공격에 활로를 열었다. ‘감각은 좋지만 투쟁력과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평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모습이었다. 같은 시각, 붙박이 중앙수비수 김원일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황 감독은 김원일을 2경기 연속해 관중석으로 올려 보냈다. 최근 잦은 실수에 대한 경고다. 수비수의 실책은 곧 실점으로 연결된다. 물론 김원일의 전적인 잘못으로 보긴 어렵지만 포항은 10실점으로 지난해 ‘철벽수비’가 퇴색됐다. ACL 포함해서 11경기 연속 실점을 이어갔다. 공교롭게도 김원일이 관중석으로 올라온 뒤 2경기에서 3-0으로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김광석-배슬기의 안정적인 조합을 보면서 김원일이 심기일전을 다짐했음은 물론이다. K리그 클래식의 상승세를 몰아 포항은 16일 일본 세레소 오사카 원정경기 승리로 ACL 16강 진출을 조기에 확정짓는다는 각오다. 포항은 2승2무(승점 8)로 산둥 루넝, 세레소 오사카(이상 승점 5)와 3점 차로 벌리며 조 선두를 달려 16강 진출에 바짝 다가서 있다. 동아시아 16개 팀 가운데 무패는 포항이 유일하다. 오사카를 물리치면 23일 최하위 부리람 유나이티드와 여유 있게 맞설 수 있다. 2009년 우승 이후 5년 만에 재도전에 나선 포항의 ACL 정상 탈환 꿈이 무르익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