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무대가 아니다. 4년간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실력을 입증하는 자리다.”이번 브라질 월드컵의 최고 관심 인물인 이영표 KBS 해설위원이 27일 최종전인 벨기에전 직후 클로징멘트에서 한방 제대로 날렸다.홍명보 월드컵대표 감독이 인터뷰에서 성적 부진과 관련,“이번 대회가 우리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한 통렬한 반박이었다. 그렇다. 월드컵은 4년 주기로 열리는 지구촌 최대 축구 축제다. 한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미 경험했고, 국민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더 이상 축구 변방이 아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첫 원정 16강을 이룬 터라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가 컸다. 국민들도 경험이 아니라 성과를 원했다.그러나 ‘홍명보호’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결과도 나빴지만, 과정도 미숙했다. 1무2패로 예선탈락이 확정된 홍 감독이 풀이 죽은 모습으로 “모든 것이 부족했고, 특히 제가 부족했다”고 자책하면서 ‘경험’ 운운하자 이영표 위원이 ‘바른 소리’를 했다.유난히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져 선수시절 ‘초롱이’라 불린 이 위원은 예선리그부터 한국뿐 아니라 각국의 승부와 스코어를 족집게처럼 예측해 눈길을 모았다. 그런 이 위원이 마지막 순간에 절박한 심정으로 가슴에 담은 말을 쏟아내 공감을 샀다.사실 ‘홍명보호’는 최종엔트리 선정부터 삐걱댔다. 특히 원칙주의자의 이미지가 강한 홍 감독이 자신이 세운 원칙을 깨고 박주영을 무리하게 발탁하면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채 브라질로 향했다. 홍 감독은 선수 선발 기준으로 ‘소속팀에서 지속적으로 경기에 뛰어야 한다’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박주영은 예외였다. 박주영은 소속팀 벤치워머가 된 지 오래였다. 원 소속팀인 아스널에서 뛰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셀타 비고,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왓퍼드에 임대된 뒤에도 부진은 깊었다. 월드컵 직전 ‘봉와직염’이란 부상까지 떠안았다.홍 감독이 소속팀에서 2년간 경기에 나서지 못한, 완전한 몸이 아닌 박주영을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뽑은 이유는 본선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홍 감독은 아마 자신이 지휘봉을 잡은 2012 런던올림픽 일본과의 3~4위전에서 터뜨린 박주영의 골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림픽과 월드컵은 급이 다르다. 불행히도 박주영은 러시아, 알제리전에 잇따라 선발로 투입됐지만 단 한차례 슈팅을 날렸을 뿐이었다. 박주영은 벨기에전 직전 아스널에서 퇴출 통보를 받았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반전의 기회를 노린 박주영은 ‘축구 미아’ 신세가 됐다. 박주영의 부진은 한국 축구에 큰 불행으로 돌아왔다. 4년 전 원정 첫 16강을 이룬 한국은 내심 ‘첫 원정 8강’까지 꿈꿨다. 홍 감독은 최종엔트리 23명 가운데 6명을 제외하고 17명을 해외파로 채웠다. 국내파 6명도 골키퍼 3명을 빼면 고작 필드플레이어 3명만이 월드컵에 부름을 받았다. `해외파`라고 불렀지만 ‘빅 리그’ 출신은 소수에 불과하고, K리그보다 낮은 수준의 중국, 일본, 중동리그에서 뛰고 있는 8명도 ‘해외파’란 이름으로 ‘홍명보호’에 승선했다. 순도가 떨어졌다. K리그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인 선수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K리그 클래식 선두인 포항스틸러스에서 K리그 신기록인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최고 활약을 펼친 이명주는 끝내 제외됐다. K리그 최고 선수가 대표팀에 뽑히지 않는다면 K리그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일까, 이명주는 최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아인으로 이적했다.대표팀이 ‘홍명보의 아이들’로 채워지면서 홍 감독의 ‘의리 축구’가 부각됐다. 최고로 잘 준비된 정예 멤버들을 선발해야하는 국가대표팀 구성에 ‘의리’가 개입된 것 자체가 문제다. 의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월드컵에 ‘의리’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월드컵은 홍 감독과 박주영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 감독이 박주영의 앞길을 터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사실 1차전 러시아와 1-1로 비겼을 때만해도 가능성이 보였다. “지지 않는 경기를 하겠다”는 홍 감독의 의도도 들어맞았다. ‘복장(福將)’ 홍명보의 운이 동하는 듯 했다. 언론도 한껏 들떠 앞으로 1승1무도 가능할 것으로 점쳤다. 그러나 만만히 봤던 알제리에 2-4로 대패하면서 한국은 16강 진출 ‘경우의 수’를 따지는 초라한 처지가 됐다. 홍 감독의 전략도 부족했다. 발이 느린 한국 수비의 약점을 간파한 알제리가 1차전과는 다른 선수 구성으로 맞춤 전략을 가동한 데 비해 한국은 1차전 멤버 그대로 2차전에 나섰다. 패를 완전히 읽힌 것이다. 상대의 빠른 속도에 수비가 번번이 뚫리며 “어~어~”하는 사이 전반에만 연속 3골을 내주며 0-3으로 끌려갔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최종전을 맞은 한국은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한 벨기에가 정예멤버를 투입하지 않았음에도 허무하게 무너졌다.브라질 월드컵은 끝났다. ‘16강 토너먼트’는 남의 얘기다. 기다렸다는 듯이 또다시 K리그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떠든다. 하지만 유망한 K리거들이 대표팀으로부터 외면당한다면 누가 K리그를 사랑할 것이며, 관심을 갖겠는가. `홍명보호`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한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선 K리그 50% 우선선발제를 도입했으면 한다. 이근호(상주상무), 김신욱, 이용(이상 울산현대) 등 K리그 3인방이 실력으로 증명하지 않았는가.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를 살리는 길은 가까이에 있다. (최만수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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