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깊어가는 가을에 세이레학당(군위지역공부모임) 회원들과 군위 사유원에 다녀왔다. 군위에 있지만, 군위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멀리 서울 경기에서 많은 사람이 오고, 예약도 치열하다는 그곳, 사유원. 대체 뭐가 있길래? 하는 기대 반 호기심 반이었다. 해외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이라는 건물들은 역시 특이했다. 특히 알바로 시자가 설계했다는 소요헌은 일상에서 만나는 벽과 천장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는 건물이었다. 마감이 안 된 것 같고, 발길 닿는 곳마다 천장의 높이가 다른 그 건물을 걷다 보니, 마치 내 머릿속에 들어가 걷는 것만 같았다. 마감이 안 된 것은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 단상들이라면 높이가 다른 천장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내 이상처럼 보였다. 어느 공간엔 빛이 스며드는 듯하고, 어느 공간인 빛이 쏟아지는 듯한데, 또 깊은 어둠을 만나는 지점도 있었다.일상을 살다 보면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어디에 볕이 드는지 가만히 볼 여유가 없는데, 소요헌을 걷다 보니 내가 나를 거리 두고 보게 되었다. 어떤 설명이나 해석 없이 그냥 건물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명정에서 만난 붉은 벽은 특히 압도적이 었다. 깊은 가을에 사유원을 걷다 보니, 주로 흙빛이나 그에 가까운 빛깔을 만났는데, 명정에 이르러 진한 빨강을 만나니 강렬했다. 명정에까지 가 닿는 동안 만났던 모든 흙빛들이 한때는 그런 빨강이었다는 게 다시 떠올랐다.아름답고 압도적인 것들을 한참 보고 나니, 문득 내 일상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런 곳이 있는데, ‘나의 하루는 왜 이리 눈코 뜰 새 없이 바쁜가’하는 한숨을 내쉬며 명정을 돌아 나오는데, 산수유나무 가지에 메추리알만 한 벌집이 달린 걸 발견했다.너무 작고 보잘것없었지만, 벌에게 얼마나 안온한 집인가!검붉게 익어 가지 끝에 달려 있는 산수유 열매의 조화는 또 얼마나 균형감이 있는지! 사유원의 또다른 건축가, 벌님과 그의 작품 벌집은 한숨 쉬는 나에게 위안을 주는 듯했다.‘일상을 사는 너의 분투도 이렇게 아름다워!’ 내가 사는 군위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이 주는 영감과 위로는 걷다 보면 저절로 경험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 가만히 사유원의 시작과 일궈온 과정을 떠올려보면 어떤 ‘정신’이 느껴진다. 그 ‘정신’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낱말로 찾고 싶어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아도 다시 ‘사유’라는 단어로 돌아오게 된다. 인간은 사유하는 정신적인 존재이며, 각자의 사유속에서 한계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 그곳이 사유원이다.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그곳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식구들과 일상을 나누고 생업이 있는 이곳에 사유원이 있다는 게 뿌듯하다. |이영주 시민기자군위거주 6년차세이레학당대표군위 사는 지구인세상 온갖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풍경과 마음의 풍경을 탐구하며  기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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