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 그날 중2.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김연수 작가3.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4. 인간은 회복하는 존재이다.- 오에 겐자브로제가 앞으로 올릴 연재 글은 두서와 체계 없이 다양한 분야에 대한 단상[예술, 정치, 교육, 사회]을 통해 한 개인이 느끼는 병증과 고립감을 표현할 예정입니다. 그것은 일찍이 이성복 시인이 이야기 했던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병든 세상에 대한 통증의 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증을 호소하기 위해서는 김연수 작가가 보았던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을 드러내고, 건널 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섬을 탈출하는 것 부터라 생각합니다. 건널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심연과 심연의 거리에 김연수 작가는 소설을 통해 심연의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습니다.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책무라고 보았던 것일까요? 정현종 시인 역시 사람 사이의 섬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지닌 연결하여 함께함으로 함께 존재하는 인간 삶의 본질을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짧은 문장으로 정의하죠.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노력은 무엇 때문일까요? 통증을 호소하고, 깊은 심연을 드러내고, 끊임없이 타인의 섬에 닿기 위해 다리를 놓는 이 지난한 과정은, 특히 예술가들에게서 보이는 이 첨예한 삶의 몸부림은 무엇 때문일까요? 인간의 심연을 가장 깊이 있게 천착하여 탐구했던 오에 겐자부로는 그 이유를 인간은 회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가 통증을 호소하고, 깊은 심연을 드러내고, 타인의 섬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은 ‘함께함’으로 회복할 수 있는 삶과 ‘회복’을 향해 움직이는 인간성에 대한 기대와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연재의 글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예정입니다. 예술작품 속에서, 우리 사회의 일상적 단상들 속에서, 그리고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교육의 현장 속에서, 이야기의 처음은 통증의 호소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진행의 경로는 아픔에 허덕이는 한 개인의 심연의 폐허로 머물지 않고 소통과 공감의 섬과 섬을 잇는 섬에 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말미암아 이 모든 소통의 과정이 ‘회복’의 과정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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