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말에 다니던 컨설팅 회사를 퇴사했습니다. 사정을 상세히 말할 수는 없고, 이런저런 일로 최소 3개월은 제가 아기(승민이)를 돌봐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육아 이슈가 가장 중요했고 그 이외에는 코로나 이슈도 있었고, 사무실이 더 멀어지게 되면서(저는 인천에 사는데 사무실이 서울 2호선 종합운동장역 부근으로 옮기게 됨) 출퇴근 시간이 부담되었습니다. 그래서 휴직이 아닌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OOO컨설팅에서 제가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믿어주신 전OO 대표님과 이OO 이사님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퇴사를 한 뒤, 한 달 조금 넘었을 때 저는 조바심이 났습니다. 원래 일은 3개월 뒤에 와이프가 다시 육아를 전담할 수 있을 때쯤 천천히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와이프가 일을 하고, 제가 승민이를 돌봤던 것이라 경제적 부담은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안했습니다. 마치 도태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승민이를 본 지 2개월이 넘었을 때 구직활동을 했습니다. 당연히 분야는 HRD 컨설팅, 기업교육, 비즈니스와 직장인을 위한 교육 콘텐츠 기획 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제가 해왔던 일이었고, 경력이 쌓여 나름 전문성(?)이 있다고, 이런 일들을 제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고, 입사 제의 연락을 받는 과정 속에서 저는 한 회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스토리텔링 교육 콘텐츠 기획’ 쪽으로 사람을 뽑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셀프리더십, 커뮤니케이션, 협상, 문제 해결 등의 소프트스킬 관련 교육은 기획해 봤지만 스토리텔링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인 학습자, 예컨대 직장인 대상으로만 교육을 기획했지 초등학생이나 시니어(나이가 좀 있으신 어른)를 대상으로 교육 기획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걱정이 됐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해왔던 일과는 다르고, 그 분야를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지원을 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단 서류를 회사에 넣었습니다. 결론은 합격을 했고, 교육매니저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승민이는 다시 와이프가 돌보게 되었고요.‘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를 들어보셨나요? 이미 지불한 비용, 시간, 에너지 등이 아까워서 다른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나오고 싶지만 돈이 아까워서 계속 보는 것, 주식을 샀는데 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손해를 좀 봤지만 지금 파는 게 분명히 나한테 유리한데도 매도하지 않고 계속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 여자친구와의 연애가 나를 괴롭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 헤어지기는 아까워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등이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져 있는 겁니다.매몰되는 그 순간 이미 좁아져 버린 내 관점에선 내 선택과 결정이 옳은 것 같아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확신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 우리에게 제일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어떤 사람이 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던 도중에 다행히 절벽 바위틈에 수평으로 자란 작은 나무를 가까스로 붙잡았습니다. 남자는 사력을 다해 두 손으로 나무를 꽉 잡고 버텼습니다. 시간이 지나 두 팔은 이제 조금씩 떨리기 시작합니다. 그때 하늘에서 "내가 널 도와주겠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 나무를 잡은 두 손을 놓아라!" 떨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 거기에 절 도와주실 다른 분은 없나요?" 사실 남자가 매달려 있는 곳은 땅에서 2미터(m)도 안 되는 높이지만 아래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수십 미터(m) 높이에 매달려 있는 줄 아는 겁니다.사람들이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요? 그건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내가 확실히 알고 있다면 오류에 빠질 이유가 없죠. 재미없는 영화는 보지도 않을 거고, 값이 떨어지는 주식은 절대 안 살 겁니다. 나와 안 맞는 여자친구는 처음부터 사귀지도 않았고, 사력을 다해 붙잡은 나무는 놓겠죠. 그런데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미래를 결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는 것, 두 번째는 오류에 빠졌다면 빠진 것을 인정하고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 내가 더 나은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는데 그동안의 내 경험에 매몰돼서 누군가를, 어떤 일을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까지 너무 많은 시간, 노력, 돈 등을 들였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만하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서 나는 이 일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현재 내가 가진 것들과 내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닐까? 조금 더 열린 자세로 나를 믿어보는 건 어떨까?`라고 나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퇴사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과 회사 조직문화가 나와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업무 환경이 좋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내게 주는 괴로움이나 스트레스를 내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다면 일을 계속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내가 너무 괴롭고, 힘듭니다. 그럴 때 단순히 ‘지금까지 내가 여기서 해온 세월이 얼마인데 힘들어도 버텨야지. 내가 여기 나가서 뭘 할 수 있겠어? 밖은 지옥이야. 버티는 게 결국 승리하는 거야.’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져있는 겁니다. 여러분과 더 잘 어울리는 회사, 더 맞는 일, 나에게 호의적인 좋은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류에 빠져서 그런 건 결코 없을 거라고 단정 짓지 마세요.만약 여러분이 구직 활동을 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공부, 전공, 경험, 경력 등을 고려해서 일을 찾는 게 당연히 합리적입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나는 이런 걸 해왔기 때문에 이런 분야의 일만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지는 마세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다양할 수 있고 한층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매몰돼서 나를 딱 잘라서 판단하고 결정하지 마세요. 열린 자세로 긍정적으로 자신을 믿으시길 바랍니다.제가 채용이 돼서 교육매니저로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찌 보면 운이기도 합니다. 운이 좋아서 지원을 고민할 때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경험했던 분야의 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스토리텔링 교육 콘텐츠를 기획할 수 있다고 저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일하면서 배우면 되지, 공부하면 된다고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2021년 5월, 서울 코엑스에서 교육부가 후원하는 제18회 대한민국 교육박람회에서 `디지털 리터러시의 시대 스토리텔링이 힘이다!`를 발표했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이 글을 읽으실 때 제가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할지, 아니면 이직을 해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일을 할지, 프리랜서가 될지 등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제가 바라는 건 우리가 어딘가에 얼마만큼의 시간이나 정성 등을 쏟았는지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 여기에 집착을 하면 나에게 좋은 다른 기회를 잡는데 제한이 된다는 걸 틀림없이 아는 겁니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면 안 되니까 우주비행사 쪽으로 지원을 해볼까?’ 또는 ‘내가 너무 매몰되었구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오늘 퇴사하겠어!’ 이러시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아실 겁니다. 믿습니다. ◎ 생각해 보기1.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진 경험이 있나요?2. 오류에 빠졌을 때 내린 나의 선택과 결정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옳았던 것 같나요? 아니면 나에게 해로웠던 것 같나요?3. 만약 지금 당신이 심히 괴로운데도 불구하고 퇴사를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뭔가요?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요?4. 만일 현재 당신이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면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5.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하면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수 있을까요?, 혹시 오류에 빠졌다면 어떻게 해야 합리적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글쓴이|이동석현 두들러 교육매니저(교육콘텐츠 기획자)전 에이드컨설팅 교육사업팀 과장 - 건국대 교육학 석사교육부 후원, 제18회 대한민국 교육박람회 강연 (2021, 서울 코엑스)강의 분야 : 자기경영,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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