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나 미래와 같은 말만큼 달콤하고 중독적인 말이 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굶주린 마음을 든든하게 할 양식이 이 세상 어딘가 가득 쌓여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언젠가부터 현재의 행복을 아득한 미래로 유예하려는 버릇에 길들여버렸다. 지금 이 시간들은 곧게 뻗어있는 저기 먼 길에 가닿기 위한 통과점에 불과하다고, 나날이 성실과 인내의 적금을 부어야만 행복이라는 만기 통장을 만들 수 있다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는 피로사회, 신(新)피로사회 등과 함께 우리 사회의 세태를 설명하는 말로 유예사회라는 개념을 붙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과는 현저하게 다른 시대이지만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는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유예사회의 일원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현듯 했던 것 같다. 바로 지금은 사라진, 포항의 동해면 도구리를 장악하고 있던 삼륜포도원(미츠와포도원)이 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포도원은 1918년 일제에 의해 건립된 동양 최대의 포도 농장으로서 해마다 ‘우수 자양품’의 포도주를 생산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평소 폐병에 시달렸던 이육사는 1936년 7월 포항 동해송도원에 요양한 바 있었고, 당시 삼륜포도원 언덕에서 자주 영일만 바다를 내려다보았다고 한다.   그때 이육사가 본 포도는 포도 농장의 포도이면서 그것을 통해 환기된 고향의 복된 풍경이기도 하면서 또 민족공동체가 맞이할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이육사가 어찌하여 포도로부터 유예사회를 엿보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현재 청포도문학공원을 비롯하여 포항 곳곳을 수놓은 아래의 시를 읽어볼 때가 되었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이육사, 〈청포도〉, 《문장》, 1939. 8 이 시에서 ‘나’에게는 7월이 음력인지 양력인지가 중요하다기보다 청포도를 관통하는 아득한 시간을 헤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에게 이제 막 시곗바늘을 가동한 청포도에는 어떠한 시간이 흐르고 있는가. 그건 이 마을의 “전설”, 즉 유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천지만물을 운행하는 근원, 즉 “먼데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힐 정도로 광활한 자연의 이치를 현현하고 있다. 그래서 청포도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때가 되면 자연스레 탐스런 알맹이를 품게 될 것이고, 그 또한 풍성한 축제의 시간이 도래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육사는 그러한 자연의 시간이 곧 인간의 시간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다. 그가 평소 존경과 신뢰의 염을 가지고 있었던 중국의 소설가 루쉰의 〈고향〉 결말에서 다음과 같은 선뜩한 구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번역을 현대어로 바꿔서 읽어보자. 생각하면 희망이라는 것은 대체 있다고도 말할 수 없고 또는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지상의 길과 같은 것이다. 길은 본래부터 지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왕래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때 길은 스스로 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어쩌면 이육사에게 현재의 시간을 미래로 유예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무관심이나 외면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결국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 출발할 수 있었던 발판이었을 것이고, 그 인간의 시간은 그것을 내다보고 꿈꾼 인간의 몫일 것이다. 그래서 이육사는 미래의 어느 시간에 자신이 농익은 포도를 두 손으로 “함뿍” 적시며 따 먹는 순간이 오고, “우리 식탁”에 놓인 “은쟁반”에 그 손을 닦을 수 있는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자신의 현재를 “청포(靑袍)”의 알람에 맞추고 있다. 물론 이때 청포를 입고 오는 “손님”은 조국광복이라는 관념적 대상일 수도, 그의 혁명적 동지인 윤세주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여기의 “고달픈 몸으로” 미래의 시간을 앞당기려는 이육사 자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거칠고 뜨거운 청포의 이미지에서 느껴지듯이 그에게 현재의 시간을 가장 충만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기꺼이 험난한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밖에는 없었을 것이고, 그가 감내한 고통과 고독이 결코 눈부신 미래를 보장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의욕을 미래의 나침반으로 세우려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몇 차례 청포도가 더 영글고 난 어느 겨울, 그는 마지막 중국행을 감행하였다. 그가 언제 죽을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다음 구절을 남긴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