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대구경북) 보수성의 기원은 무엇일까? 무엇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결정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일까? 지속적으로 물었던 질문에 대한 몇 가지 단서들을 찾아가고 있다.망탈리테의 연구를 시작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 선행적인 단서를 찾아가고 있다.망탈리테란 `무의식적인 것`, `인지 되지 않은 것`, `사회 문화 현상의 바닥에 자리 잡은 집단 무의식`을 말하는데, 장기 지속된 공동체 체험의 결과물이다.우리 지역의 망탈리테와 감수성을 지배하고 태도의 본질을 결정한 것은 마을 공동체 해체에 대한 불안감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근현대사 중대한 국면을 체험하며 형성된 것으로, 지금의 비합리적 태도의 형성은 그 불안감의 내적인 자기이해 과정에서 심각한 왜곡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간주된다.몇 가지 국면을 파악해보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이며, 연구를 위한 단서이다. 향후 증명을 과제로 두고 있다) 우선 그 발원을 신분제가 폐지되는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위기감이 촉발해 체화된 집단 감수성이 상전의식이다. 상전의식은 보수 세력 전반에 기저 하는데, 특히 우리 지역에서 유독 심해 보인다. 이는 특히 조선시대 양반의 향론 장악이 강했던 지역적 특성에 의한 것으로 지역의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양반층을 중심으로, 상전에 대한 사회적 역전을 모색하는 하인들의 행위에 대한 불안감이 광범위하게 내재화되는 과정에서 배태되었다.당시 소수의 개혁적 농민들에 대한 양반들의 불안감이 향론을 통해 온건한 다수의 하층 농민에까지 공유되는데, 이 현상의 비틀어짐은 동학운동 세력에 대한 지역의 태도에서 가늠할 수 있다.양반층 뿐 아니라, 그들의 여론영향권에 있는 다수 농민들까지, 민보단, 수성군을 형성하고, (일본군과 연합하여) 일본침략에 저항한 동학 농민을 탄압한 기록은 그 비틀어짐의 일면이다. 그들은 외적(外敵)보다 소수의 개혁적(전복적) 농민을 더 불안해했고, 그 불안은 현재 질서를 옹위하고자 하던 양반층의 소수 농민에 대한 처절한 응징으로 전화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마을의 내부 해체의 공포감으로 농민에게 전유되어 체화되었다.두 번째는 사회주의가 수용되는 식민지 시기에서 찾아진다. 이때도 역시 상전의식이 심화되는데, 경제적 계급의식과 전통적 상전의식이 결합된 것으로, 전통적 질서를 전복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한 불안감이었다.식민지 지주에 대한 농민의 저항 논리로 전파된 사회주의는 향촌사회의 여론을 장악한 유지들에 의해 그 불안감이 형성되었고, 그들의 여론의 전파 영역아래 있는 소작인에게도 공유되며 비틀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농민을 위한 사상이었지만, 다수의 농민들이 직면한 위기감은 소수의 농민에 의한 현존질서의 전복이었다.사회주의에 대한 적대감 형성과 전파는 지주와 지역 유지의 불안감이 온건한 농민과 뒤섞이는 과정이었고, 그 도착점은 불행히도 농민에게 있어 사회주의가 지닌 계급적 유의미함은 탈각되고, 마을 공동체의 해체 경험으로만 체화되고 만다. 지주와 지역 유지들은 개혁적 농민으로 부터 자신의 전통적 권한을 보존하기 위해, 친일화되는 경향마저 보였다. 또한 개혁적 농민과 온건한 농민의 경계 지움과 개혁적 농민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심층에 공포를 각인시켰는데, 그 불안감이 지금도 무의식화되어 전승된 것으로 여겨진다.해방과 분단은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는 과정이었다.60~80년대 개발독재시기 마을 공동체성이 강한 우리 지역은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개천의 용을 길러내는 터전이었다. 공통의 빈곤 속에서 개천의 용을 길러냄으로써 공동체의 자부심을 형성하곤 했는데, 그 개천의 용이 끼친 반대급부가 또 하나의 망탈리테를 형성했다고 여겨진다.우리 지역 출신은 당시 영남세력이 개발독재 시대의 주도권을 형성한 까닭으로 개천의 용이 될 경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개천의 용들의 태도였는데, 체제에 순응하는 용과 체제에 저항하는 용의 귀속 마을 공동체는 현격히 다른 현실을 체험하게 되었다.체제에 순응한 용의 가족과 마을은 시대의 중심적 혜택을 받았으나, 체제에 저항한 용의 가족과 마을은 국가의 폭력에 노출되어, 처절한 해체의 체험을 하게 된다. 특히 우리 지역은 그 선택의 결과가 주는 간극이 큰 지역이었고, 마을 내부에서 그 간극이 공존하여 체험된 불안감은 심각한 비틀어짐으로 자리하게 된다.이러한 몇 가지 단서에 의해 누적된 불안감의 실체는, 정의로움, 합리성보다 생존하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 움직이는 망탈리테이다.마을을 해체할지도 모를 소수의 개혁적 담론의 침투를 신경질적으로 거부하며, (개혁성 보단 소수라서 느끼는 불안감이 더 커 보임), 적대시하고, 자신의 삶의 향배와는 무관하지만(외려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더 커 보이지만), 자신에 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쳐온 사회 주류의 위기감에 편승하여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오래도록 지속되어온 마을 해체의 경험과 비틀어진 방식으로 전유했던, 삶의 기억과 무의식의 영향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단서를 통해 더 실증적인 연구를 해봐야겠다.글쓴이|이재호 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