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포항의 맥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포항수제맥주 양조기술연구소의 이광근 대표는 그렇게 말했다. 그의 눈앞에는 포항산 쌀로 만든 라거, 장기읍성의 산딸기로 빚은 에일, 그리고 대보항과 호미곶을 모티브로 한 지역 맥주들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 맥주들을 완전한 ‘포항산’이라 부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홉(hop)이었다.■ “마지막 퍼즐은 홉이었습니다”이광근 대표는 포항의 농산물, 해양 자원, 문화적 상징을 맥주로 표현해 온 사람이다. 그의 맥주는 늘 ‘포항에서 태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핵심 원료 중 하나인 홉만큼은 국산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맥주의 향과 쓴맛을 만드는 게 홉인데, 이건 100% 수입이었어요. 포항산 쌀과 과일로 맥주를 만들어도 홉만은 어쩔 수 없었죠.”그의 말에는 오래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때 그에게 김진동 대표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포항 흥해에서 홉을 직접 키우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 대표는 망설이지 않고 농장을 찾아갔다.“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우리나라에서 홉이 자란다고? 그런데 밭에 들어서자 향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지역의 원료로, 지역의 기술로”두 사람의 만남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진동 대표(에이홉, A-HOP)가 시험재배 중인 홉 일부를 제공했고, 이광근 대표는 이를 시제품 맥주에 투입했다. 처음 결과는 완벽하지 않았다. 향이 강하게 치고 들어왔고, 쓴맛의 균형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건 ‘국산 홉이 실제 양조에 투입된 첫 실험’이었다. 이광근 대표는 “수입 홉은 가공·건조 상태가 일정해서 다루기 쉽지만, 포항 홉은 향의 밀도와 수분 함량이 달라요. 대신 훨씬 생생합니다. ‘살아 있는 향’이라고 할까요.”김진동 대표 역시 그때를 떠올리며 웃었다.“양조장에 홉을 직접 가져다주는데, 이광근 대표가 시음하면서 ‘이게 포항의 향이구나’ 하시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버티게 했죠.”이들의 협업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지역 원료의 실질적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실험이었다. 이광근 대표는 “포항산 홉이 일정하게 공급된다면, 양조 라인업 전부에 적용해보고 싶다”며 “이제 ‘포항의 맛’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차례”라고 덧붙였다.■ ‘포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이광근 대표는 양조를 기술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맥주를 ‘포항의 문화 콘텐츠’로 본다.“맥주는 결국 사람이 모여 마시는 거예요. 포항 사람, 포항 재료, 포항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진짜 지역맥주가 되는 거죠.”김진동 대표도 이에 화답한다.“저는 농부고, 이광근 대표는 양조가죠. 각자 역할이 다르지만, 결국 ‘포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됩니다.”현재 두 사람은 홉의 품종별 알파산 함량과 향의 차이를 양조 실험으로 수치화하고 있다. ‘센테니얼’, ‘카스케이드’, ‘사브로’ 등 주요 품종을 소규모 배치(batch)로 시험하며, 포항의 기후에 최적화된 로컬 홉 모델을 찾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원료–제조–검증–피드백’의 순환 체계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 “맥주는 결국 땅에서 온다”
이광근 대표는 말한다.“포항의 맥주는 결국 포항의 땅에서 옵니다. 쌀이 그렇고, 물이 그렇듯, 홉도 이제 이 땅에서 자랍니다. 그게 진짜 로컬 브루어리죠.”김진동 대표도 덧붙였다.“이제 수입 원료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직접 키우고, 직접 빚으면 됩니다. 포항은 이미 그걸 할 수 있는 도시예요.”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단순한 ‘지역 협업’이 아니다. 이제 포항은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지역 안에서 완결되는 최초의 수제맥주 생태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땅을 일구는 농부와 맥주를 빚는 양조가가 함께 서 있다.■ 지역이 만든 진짜 로컬 브루어리포항수제맥주의 맥주 네 가지 — 동빈나루 라거, 대보항 골든 에일, 장기읍성 에일, 호미곶 포쉬 에일 — 는 이미 지역의 상징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제 여기에 ‘포항 홉’이라는 마지막 조각이 더해지고 있다. “좋은 맥주는 결국 좋은 사람과 좋은 땅에서 나온다”는 이광근 대표의 말처럼, 포항의 양조장은 단순한 생산시설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농업, 기술이 만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포항수제맥주의 맛이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