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은 어딜 가나 산입니다. 광활한 평야지대가 펼쳐지는 딴 나라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온전한 평야는 적고 산줄기 사이 사이에 분포한 골짜기 땅들이 논밭이 돼 줍니다. 산은 자연스레 한민족이 기대어 사는 바탕이 됐습니다.   산은 사람들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큰 산줄기는 그 양편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방언을 쓰게 하고 노래까지 서로 다른 걸 부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보다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산은 사람들의 생활권을 가르고 혼인권역을 구획 지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산 어느 땅에 뿌리박은 선조들은 그 범위 안의 산들에서 생존의 재료들을 구해냈습니다. 산줄기를 뒤져 땔감을 묶고 거름 삼을 풀을 벴습니다. 기슭을 훑어 먹을 걸 장만했으며 소를 몰아 그 골짜기를 일궜습니다.  활동 범위를 넓힐 때는 등성이를 넘어 일이십리씩 걸어 내왕했습니다. 시장 보러 가거나 딸을 시집보내거나 아들을 장가들일 때 그랬습니다. 산줄기에는 저절로 그들의 생활사가 배이고 고개마다에는 숱한 사연이 쌓였습니다.  저렇듯 산천은 바로 우리 삶의 터전이었고 문화 그 자체였습니다. 고지도(古地圖)가 도시들은 조그맣게 그리면서 산과 물을 부각시켜 주목한 연유가 짐작될 듯합니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저 산천은 제대로 판단되거나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거기 쌓인 민초들의 애환은 주목받지 못했고 글로 남겨 전하기는 엄두도 내어진 바 없었습니다. 산봉우리와 골짜기들의 이름도 그냥 할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아들에게서 손자에게로 그렇게 입으로만 전해져 왔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제 저 전승마저 더 이상 계속되기 힘들게 됐습니다. 진작부터 산이 비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산을 지키고 살던 사람들 상당수는 이미 도시로 옮겨갔고, 남은 사람들은 연로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는 거의 태어나지 않습니다.   저렇게 사람이 줄어들면서 저 산천에 배여든 선조들의 생활사도 풍화(風化)돼 버릴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 땅의 생활사와 사연을 전승해 줄 사람들이 사라져 가니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전승할 다음 세대가 태어나지 않으니 어쩌겠습니까. 그냥 둬버리면 산줄기에 쌓여 온 선조들의 생활사는 머잖아 공중으로 흩날리고 땅속으로 묻혀들어 버릴 것입니다.  주인들이 떠나고 난 빈 공간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물 좋고 바위 좋은 곳 찾아 살러 오는 사람이 있고, 답사하고 등산하느라 거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수 백 년 전해져 온 토박이들 삶의 이야기도 전승해 줄까요? 온갖 희로애락이 묻혀들었을 땅이름을 제대로 이어서 후대에 넘겨줄까요?  엎드려 바랄 바이겠습니다. 그러나 성과까지 기대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개중에는 벌써 과거를 손상하고 왜곡시키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특히 일부 생각 없는 공공기관이나 지각없는 등산객들이 그렇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여기저기 표석을 마구 세워댑니다. 현지인들은 혀를 내두릅니다. 주인 모르는 이름이 본래 이름을 밀어낸 곳이 이미 여럿입니다.  안 그래도 우리 산천의 존재 환경은 지난 100년 동안 격변을 겪어 왔습니다. 사상 초유의 격심한 세상 변화가 그 사이에 들이닥쳤던 것입니다. 시초는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삼킨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땅 이름들이 마구잡이 날조되고 변질됐습니다.   일본제국이 조선을 문서상으로 집어삼킨 것은 1910년 8월이었습니다. 그러고 1914년쯤에는 드디어 전국 구석구석의 토지와 땅을 장악하는 일까지 마무리했습니다. 그 해 봄에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재조합해 지방 통제 체제를 완비했고, 지적 정리를 끝내 토지 장악도 마무리했습니다. 그해부터 4년간에 걸쳐서는 사상 최초의 한반도 지형도(地形圖)를 제작해 발행합니다. 지방 장악의 완성을 선포하는 듯 여겨지는 사건입니다.  지방행정구역을 재편한 것은 우리 땅 이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개 이상의 군(郡)과 현(縣)을 하나로 묶어 광역 군(郡)을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시․군의 지금 행정권역은 그때 새로 획정된 것입니다.  몇 개의 옛 면(面)도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러면서 옛 것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합쳐 새로 만드는 행정단위의 이름으로 조합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곡면’과 ‘합산면’은 합쳐져 ‘대합면’이 됐습니다. 큰 골이라 해서 ‘한실’이라 하던 대곡이 사라졌고, 높이 250m의 산 이름 이던 ‘합산’도 소멸됐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 이어온 영혼이 망가뜨려졌습니다.  마을 단위인 동(洞)․리(里)도 그랬습니다. 자연마을들 여러 개를 하나로 묶고 마을 이름을 새로 지었습니다. 지적을 정리하고 지번을 매기려니 그런 조치가 필요했을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그럴 때 전래 명칭들이 왜곡된 것입니다. 자연마을들의 이름은 뜻을 제대로 규명해 볼 마음도 내지 않은 채 한자식으로 마구잡이 전환됐습니다. 그리고는 한 자씩을 따서는 통합 마을명칭으로 삼았습니다. 한 줄에 꿰인 저 마을들은 다시 1리, 2리 하는 식으로 줄 세웠습니다. 심지어는 반(班)으로 격하돼 편제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의 지명들은 이렇게 해서 엉망이 됐습니다.   그러니 지금 통용되는 마을이나 읍․면의 대부분 명칭은 한자의 뜻으로 그 의미를 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저 명칭들은 뜻을 가진 한문식 표기가 아니라, 마구잡이 떼어다 모은 음성 조합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 지명에 대해서는 광복 이후 상당한 연구와 검토가 수행됐습니다. 민간의 ‘지명학회’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국가 기관들도 유사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는 지형도 지명표기의 정확도를 높이겠다며 지명 정비 작업을 벌였습니다. 1958년 하반기에 중앙 및 전국에 지명위원회를 구성,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1961년 4월 12만4천 건의 지명을 고시했습니다. 한글학회는 20년에 걸쳐 전국의 땅이름을 조사해 ‘한국지명총람’이라는 대규모 자료집을 펴냈습니다.  그러나 저 어느 것도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국가가 만드는 지형도 지명표기는 지금도 여전히 뒤죽박죽입니다. 한글학회 자료집도 그 내부에서조차 서술이 안정돼 있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땅그림을 그려 제 위치에 정확한 이름을 표기해 넣지 않다보니 지금은 어느 게 어느 걸 가리키는지 조차 판별하기 힘듭니다.  일본제국이 날조한 행정지명을 바로 잡겠다는 노력은 더욱 없습니다. 광복한지 70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본래의 명칭을 회복시키려 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건 정치나 행정의 몫이겠습니다만, 대통령에 출마하고 국회의원 되겠다는 사람은 많으나 어느 누구도 이런 일을 공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벌써 100년이나 흘러버렸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되레 급조된 행정구역과 날조된 명칭에 더 길들여져 버렸습니다. 현지 주민들도 으레 그런 줄로 받아들입니다. 대신 순수 토속어 전래 명칭은 거의 잊어 갑니다. 알아도 외부 사람에게 꺼내 보이기를 꺼려합니다. 날조된 이름의 1리 2리 3리라는 전체주의식 명칭으로 부를 뿐, 각 마을을 그 전래명칭으로 부르려 하지 않습니다. 저걸 품격 낮은 것으로 터부시하는, 터무니없는 열등감에 감염되기까지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2014년은 매우 가슴 아픈 해일 수 있습니다. 저런 조작과 날조가 행해진지 100년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은 대부분 시․군이 사실상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지만, 저런 악연으로 자축할 엄두를 내기 힘들어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100주년’이 혹여 반성의 촉매제가 될 수 있으려나 기대도 해 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뭘 못했는지,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반성하고 고뇌하게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제 더 이상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옛 삶의 이야기를 전승해 온 마지막 세대가 연로해졌다는 말입니다. 현재 여든 살 된 어르신이라 해도 한국전쟁 사실조차 제대로 증언하기에 부족한 나이입니다. 옛 이야기를 들어두기에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책의 제작 목적은 저 마지막 기회를 붙잡자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포항의 삶터를 살피고 챙기자는 것입니다.  삶터의 근본이 산이니만큼, 산줄기 살피기부터 과제로 삼을 것입니다. 포항의 산줄기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분간해서, 주요 산줄기들에 관해서나마 족보를 만들어 볼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산줄기들을 답사해서 옛 어른들이 어느 지형에 어떤 이름을 붙여놨는지, 어떤 지형에 어떤 사연을 묻어 놨는지 살피겠습니다. 나아가서는 특별히 주목해둬야 할 공간들에서의 지방 생활사를 초보 수준에서나마 채록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박종봉 투데이포항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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