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모든 문제는 수업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모든 해결은 수업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는 수업을 통해서 가장 큰 상처를 받지만, 또한 수업을 통해서 가장 큰 위안을 얻고, 회복된다. 때때로 수업은 나 하나와 수없이 다른 섬들의 분절이 만든 고독한 섬들의 좌표 같지만 하나의 섬과 수없이 많은 또 하나의 섬들이 무한의 고리로 연결될 때 그 환희와 성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만들기도 한다. 회복하는 존재들의 섬에서 수업을 다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나의 수업이야기 2세계사 수업 시간에 베트남의 역사를 다루며, 우리 고대사의 한 부분을 비교하여 이야기해보았다. 베트남 역사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 그것은 우리 역사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특히 남월의 건국 과정은 위만의 건국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찌에우 다가 베트남의 백월족의 청동기 국가인 어우락을 정복하고 남월을 건국하는데, 이는 단군조선에서 위만조선으로 넘어가는 과정과 시기가 유사하다. 베트남 사에서 이 부분을 다룰 때 찌에우 다의 출신이 문제가 되는데 이 역시 위만과 닮아있다.베트남에서는 기록에 그가 현지인의 모양새로 상투를 트고 있었고, 남월 대다수의 주민구성이 백월인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그를 중원문화와 관계없는 백월 문화의 주체인 토착 세력으로 인식하여 민족의 역사로 서술하고 있다.이는 찌에우 다가 중국인으로 진나라 때 피난하여 백월족을 정복하고 중원의 식민왕조를 세웠다는 중국의 설명과는 상반되는 서술이다.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위만조선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이 위만의 출신 문제이다. 위만이 조선인의 상투를 트고 있었고, 조선인의 풍속에 익숙했으며, 위만조선의 주민구성이 조선인을 절대다수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민족의 역사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위만이 중국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과 연장하여 위만조선이 식민왕조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금기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중국 역시 위만조선을 한 제국의 식민왕조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위만의 조선과 찌에우 다의 남월이 자민족의 역사임을 주장하는 바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서술하고 있는 찌에우 다에 대한 역사이다. 우리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찌에우 다를 중국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편에 선 서술이라기보다는 관찰자적 시각의 객관적 판단이다. 그리고 그의 출신 문제는 남월 역사 이해에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그 지역에서 나타나는 문화의 특수성에 입각해 그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정된 국경이나 민족 등의 개념이 없었던 고대에는 특정 국가의 지배층이 어느 민족 출신이냐를 가지고 역사 귀속성을 규정한다는 것은 의미 없다."- 베트남 사, 대한교과서위만의 역사도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그가 중국인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더 관용적인 태도로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조영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시각이라면 그 출신이 조선의 역사나 발해의 역사를 판가름하는 절대적 요소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위만의 역사가 역사 전쟁의 도구가 아닌 사실 그 자체로서 연구될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태도는 그렇지 못하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고대사 교육은 역사 귀속성이라는 정치적 문제에 몰두하여 가장 비역사적인 사고방식을 관철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대사를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관철시키고자 하는 중국과 이에 대항하여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위상을 탈환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 마찬가지로 비역사적이다.그 지역의 역사 현상을 국경과 민족의 개념이 없었던 생활공동체 중심의 다원적 주체들의 삶의 역사로서 이해할 때 불필요한 논쟁과 정념으로 부터 벗어나 그 실상과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우리 역사서술은 중원 민족에 대한 질투, 혹은 적의만큼이나 한반도 내부의 소수민족, 만주 일대의 다양한 부족 문화에 대해 몰지각하거나, 지각하더라도 교만하거나 멸시적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제국주의적 관점에 대한 민족주의적 저항에서 배태된 그릇된 태도이며, 필요 이상의 과잉일지도 모른다.역사를 공부하며, 늘 드는 생각이지만, 특히 고대사를 공부할 때는 더더욱 많이 드는 생각인데, 제국주의나 전체주의 혹은 국가주의적 사관만큼이나 민족주의적 태도 역시 비역사적이라 생각된다..물론 민족정체성이 필요할 수 있고, 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더욱 정확하게 역사의 실상이 드러날 수 있다. 특히 광폭한 제국, 국가의 폭력에 저항할 때 그 역능이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 또한 아니다.그러나 합리성을 마비시킬 만큼의 또한 이성과 상식을 질식시킬 만큼의 과잉은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고대사 서술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우리 역사와 궤를 같이하여 진행해 온 베트남 역사를 살펴보면서, 우리 역사서술의 민족주의적 과잉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가 그들의 역사를 서술하듯 우리의 역사를 서술할 때 조금은 더 합리적인 교육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세계사적 관점에서 베트남의 고대사를 바라보는 연습은 우리의 고대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힌트가 될 수 있길 바랐고, 우리의 근대적 인식 틀이 만든 고정관념이 역사 공부에 있어 어떤 위험이 있는지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알 수 있길 바랐다. 그것을 아는 것은 보다 진실에 가깝게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역사 수업이 인간의 삶을 보다 진실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심성과 지성을 키울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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