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성복은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세상에서 표류하는 개인들을 응시한다. 체제에 항거하다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린 개인, 혹은 개인으로서의 존재성을 애초에 상실한 개인, 자신의 함몰을 망각하기 위해 통증마저 마비시킨 개인, 바로 세상이(말 잘 듣는) 정상이라 하지만 실은 병든 개인들을 그의 시로 표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지 않기 위해 탈주하는 불온한 자의 감성을 탁월하게 표상하고 있기도 하다.병든 개인을 치유하기 위한 이성복의 해법은 경계에 서기와 통증의 복원이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좌표를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경계 서기와 마비된 통각을 복원해 자신의 욕망과 세계와의 불화를 끊임없이 느껴야 하는 통증.그는 이러한 해법을 소세키의 소설에서 착안하고 있다.소세키 소설의 분위기는 허무주의와 쓸쓸함, 자포자기한 듯한 힘없음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더 면밀히 살피면 소설 속 인물들의 이러한 사보타주는 체제의 일상에 저항하는 개인들의 가장 아방가르드한 모습이다. 인간 정신의 최전선에선 나약하지만, 함몰되지 않은 개인의 모습.   시대를 장악한 거대한 담론과 집단의 일반의지(가령 우리 역사의 한 시대를 장악했던 담론들, 예를 든다면 조국 근대화, 민주화, 사회개혁, 국민주권 국가, 계몽의 의무 등), 그것들이 강조하는 공통의 행위 양식과 사회적 정의(반드시 목표 지점이 있는 삶의 행위 좌표들)로 부터 그들은 탈주하고 있다. 다수의 눈에 그들은 소외되고 방황하며, 이탈하고 있는 듯 보이나, 사실은 가장 인간적인 속성에 기대어 다수임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거칠지 않은 방식으로, 자기보존의 충실한 본능으로 탈주하며,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 어는 곳에도 서지 않으려 하는 자들, 누구의 강요도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텅 빈 공간을 찾아 끊임없이 방랑하는 자들. 소세키는 그러한 자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믿었던 모든 가치가 무너지거나 애초에 그러한 것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개인들이 애초에 원하지 않는 사회적 강요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살아남았는지를 소세키는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성복의 시 역시 그러하다. 회색지대로 탈주하는 경계인들, 타인에게 상처 주고 싶지도, 상처받고 싶지도 않은 자유로운 영혼들, 그러나 모든 일상이 불편한 관계로 얽혀 피로를 호소하는 군상들. 완벽한 탈출이 어려워, 사보타주를 택하고, 통증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불온을 상상하는 그들. 이성복은 그들의 투덜거림에 천착하고 있다. 나 또한 투덜거리고 있다. 나의 삶은 온통 회색빛이다. 원치 않는 질서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사보타주로 한창 방랑 중이다. 통증을 잃지 않기 위해 불온을 상상하고 있다. 소세키의 소설, 이성복의 시는 이러한 나의 방황을 위로해주는 느낌이다.봄은 아직 회색지대 위에 살랑이고 있다.       글쓴이|이재호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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