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게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세상은 몹시 험하지만 한번은 살아 볼만하다.영원한 퇴원태양은 아직도 보라색으로 보이고 있지만 어릴 적 부르는 노래는 어디 있을까?- 손상기, 죽기 직전 쓴 글한국의 로트렉이라 불리는 화가 손상기는 스스로를 외봉 낙타라 불렀다고 합니다. 신체적 장애를 안고 살았던 화가,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예술적 혼으로 승화했던 화가 로트렉을 닮은 손상기는 꼽추로 태어나 평생을 신체적 장애와 그에 비롯한 편견, 타인들로부터 오는 시선의 폭력으로부터 고독하게 싸워왔던 화가입니다. 그의 별명 외봉 낙타는 그의 신체적 장애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고독하고 쓸쓸한 사막(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사회적 거리)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낙타를 통해 자기 삶의 여정을 함축하고 있기도 합니다.손상기의 그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은 ‘영원한 퇴원’이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병원의 빈 침대와 지팡이 쓸쓸히 남은 적막. 제목처럼 슬픈 느낌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철제 침대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지팡이는 그의 삶을 등대했던 고난의 상징이자 그를 살게 했던 조력자이기도 하겠지요.혹자는 이 그림의 제목 영원한 퇴원이란 조금은 달랐던 그를 병자로만 바라보던 병원 같은 세상을 벗어나 지팡이 없이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었던 작가의 갈망이자 염원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에게 던져진 지팡이는 장애로부터의 퇴원을 의미하는 것이죠.   또 다른 이는 영원한 퇴원이란 그에게 너무도 가혹했던 그러나 지팡이가 있어서 그래도 살아볼 만했던 세상을 떠나는 순간, 죽음을 직감한 작가의 마지막 소회일 수도 있을 것이라 합니다. 힘겹고 쓸쓸한 삶과 죽음이지만 그래도 살아보았기에 알게 된 인간에 대한 사랑. 지팡이는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죠. 아마도 작가에겐 지팡이는 그림이었을 겁니다. 삶을 지탱해주었고, 살아보았기에 사랑을 느끼게 했던 것. 내게 지팡이는 무엇일까요?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손상기의 또 다른 그림을 보면 한 노파의 지팡이가 보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풍경, 낡은 세발자전거와 시든 화분은 고독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손상기의 어머니가 아닐까 합니다. 평생을 사랑하고 증오했던, 애증의 대상이었던 어머니, 지팡이는 어머니의 죽음과 그로 인한 화해의 상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어머니의 자궁은 고통스러운 생애의 발원지이자 동시에 원초적 사랑의 심원일 것입니다. 어릴 적 노래는 어머니에게서 얻는 유일한 위안일 테지만, 자신을 버렸기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모든 애증의 격정으로 부터 벗어나 화해를 손짓하는 것이 영원한 퇴원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글쓴이|이재호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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