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부터 경상여자고등학교(교장 최은영) 토론 동아리 ‘아고라 시사토론반(지도 : 김동욱 철학교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축복의 도구일까?』(김정미, 양혁준 공저, 글라이더, 2021)라는 책을 읽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는 생명공학 분야의 최신 기술로서, 유전체에서 원하는 DNA를 정교하게 잘라내는 기술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익히 들어본 생명공학 기술이지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사용할 때 벌어질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다룬 책을 읽고 좀 더 자세히 조사했다. 이 책은 생명과학계를 강타할 획기적인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과 개발자인 미국 생화학자 제니퍼 다우드나와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를 소개한다. 이들뿐만 아니라, 201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윌리엄 케일린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달 탐사선 보다 대단한 일’이라 치켜세우며, 생명과학계에 불러올 파장을 예고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다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진단 도구가 출시되고,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는 와중에, 이를 가능하게 한 기술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발전 가능성이 있을까?’,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등의 여러 논쟁점을 숙고하고 토론했다. 과연 우리 사회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사용을 허용해야 하는가? 지난 3월부터 7월 초까지 공부하고 토론한 성과를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정리해본다. [찬성] 현재 우리 사회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사용을 허용해야 하는 첫 번째 근거는 시장성에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발전 가능성은 크다.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에서는 국제 유전자 조작 기계 경연대회가 열리며, 매년 수천 명이 참여하는 국제적 행사가 되었다. 글로벌 유전자 치료제 시장은 성장률이 높아 2025년이면 한화로 약 14조 원에 달할 것이다. 두 번째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하여 다른 분야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도 우리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허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의 유전자를 규명한 이후, 찾아보기 힘든 생물체를 복원하여 생태 연구를 촉진할 수 있다. 털매머드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아시아 코끼리를 이용한 털매머드 복원 연구를 대표적인 예로 손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유전자 가위 기술을 농업 분야에 적용하면, 적은 노동력으로 작물을 대량 생산할 수 있다. 양적인 측면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유전자 가위는 유용하다. 올레산이 많은 콩, 갈변 저항성이 있는 양송이 등 다양한 농산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예술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예술과 생물학을 융합한 이른바 ‘바이오아트’ 장르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에 기초하여 성립할 수 있다. 실제로 열대 해파리에서 추출한 GFD(녹색 형광 단백질)을 백색증 토끼의 수정란에 주입하여 토끼 ‘알바’를 만들고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은 사례도 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안전성도 우리 사회가 그 기술을 허용해야 하는 근거이다. 최근 에디타스 메디슨 사에서 선천성 안구 질환으로 실명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고, 임상실험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자연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형 범위 안의 돌연변이 유도 기술에 해당하므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현대 생명공학 기술 중 의도치 않은 유전자의 변형 발생 빈도가 가장 낮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반대]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사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기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치료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사항이다. 쥐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200~300일이 지나면 목표 치료 범위 수치(TTR)가 다시 반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유전성 혈관부종 임상실험에서 유효성을 입증한 존 레너드 인텔리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종 결과는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2002년에 미국 미주리대 연구진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녹색 돼지를 생산했지만, 돼지 세포 안에 무작위로 유전자가 삽입된 탓에 몸 여기저기서 형광을 띠는 한계가 나타났다. 기술적 한계 이외에도 윤리적 측면에서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사용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2015년 중국 준쥬 황(Junjiu Huang)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했다며, 그 결과를 의학저널 Protein&Cell에 발표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황 연구팀은 생존 불가능 배아 86개를 사용하여 치명적인 혈액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 편집을 시도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이들이 많이 발생했으며 성공적으로 편집된 배아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처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연구에서 유전자 편집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유전자 조작으로 생긴 돌연변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가 명확히 확신할 수 없기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사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   [우리들의 생각] 찬성과 반대의 견해를 각각 살펴본 결과, 우리는 현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기술을 허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기술과 사용에 관한 정부의 관련 제도 정비가 선행해야 한다. 또한 철학자들은 유전자 변형 기술과 관련하여 윤리적 지침을 보다 세밀히 논의하여 향후 유전공학 기술의 이용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 학기 동안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논쟁을 검토하면서, 문득 이카루스(Icarus)가 떠올랐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인 이카루스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명령을 받들어, 크레타섬 왕궁 지하에 미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던 미로가 테세우스에게 무용지물이 되자, 미노스 왕은 분노하여 다이달로스를 감금했다. 다이달로스는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새의 깃털을 모아 실로 엮고 밀랍을 발라 날개를 만들었다. 그는 아들 이카루스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기 때문에 밀랍이 녹으니 너무 하늘 높이 날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익히 알다시피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자유와 흥분에 빠져 너무 높이 날아오르는 바람에 날개의 밀랍이 녹아버려 그만 날개를 잃고 바다에 떨어져 죽고 만다.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 역시 유전병 치료나 농작물 개량 및 예술 작업에 아주 유용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공학 기술이 주는 성과와 이익에 흥분한 나머지 인간 지식의 한계와 대자연의 섭리를 망각한다면, 결국 우리는 이카루스의 운명에 빠지지 않을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현대판 이카루스의 날개인가? ‘우리는 이카루스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여러 물음으로 이번 학기 토론 활동을 마친다.글쓴이|윤여정, 이효빈 청소년기자 현재 경상여자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토론 동아리 `아고라 시사토론반`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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