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이 있다. 경북 영천 출신의 이중기 시인이다. 사실 그에게 농부와 시인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동의어에 가깝다. 농부란 하늘과 땅의 말에 귀 기울이고 섬겨서 자기와 세상을 살찌우는 존재이니, 우주의 말을 받아적으며 자기와 세계를 보살피는 시인과 무엇이 다를까. 그는 나날이 자신에게 말 걸어오는 자연의 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자유주의로 황폐해져 가는 농촌 현실을 견뎌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영천 곳곳에 서린 익명의 목소리들이 스며들었고, 침묵이자 신음이자 비명인 그 목소릴 해독하느라 시를 빌려야 했으리라. 그 목소리는 대구 10월 항쟁에 이어 이곳에서 뜨겁게, 또 고통스럽게 타올랐던 혁명으로부터 흘러나왔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대구 10월 항쟁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대된 민중항쟁이다. 이 항쟁은 해방 이후 남한지역을 장악한 미군정의 식량정책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에서 촉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사회 전반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인구 급증으로 인해 식량 부족 현상이 나타났으며, 투기꾼의 매점매석으로 인해 쌀값이 폭등하는 등 심각한 식량 문제가 대두했던 것이다. 자연스레 기아와 빈곤을 견디지 못한 시민들이 거리에서 “쌀을 달라”며 외치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 같은 시기에 진행된 철도노동자 총파업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희생자가 발생함에 따라 시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이후 미군정의 주도 아래 진압된 이 시위에 대해 사람들의 기억에는 대구 10월 항쟁이라 새겨져 있을 뿐 영천 10월 항쟁에 대해서는 다소 희미하게 남아있다. 이중기 시인이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공산당이 간판 걸고 활동하던 시절,해방정국 조선 경제는 화폐나 금이 아니라쌀값을 기준으로 하는 세상이었네물정 모르는 미국 군인 하-지 눈에는쌀이 요술방망이로 둔갑하니조선은 원시부족국가나 다름없는희한한 나라였겠지그런 땅에서 친일 관리들이 쌀을 수탈하고일제도 못한 보리까지 빼앗으면서지주들 곳간에는 미제 자물통을 채워주었거든영천 사람들 분노가 숲을 이루었고궁지에 몰린 붉은여우가 그 숲을 불태워버렸지그게 영천 시월 아닌가― 이중기, 〈서시〉, 《시월》, 삶창, 2014 그는 “대구 시월항쟁이 ‘식량 투쟁’이었다면, 영천 시월항쟁은 ‘공출 거부 투쟁’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대구 10월 항쟁과 영천 10월 항쟁의 연속성과 차별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당시 “미국 군인 하-지”로 대표되는 미군정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농촌의 쌀과 보리를 강압적으로 공출하려는 정책을 펼쳤고, 대구 인근에 있는 영천은 ‘공출 거부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공출 지역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와 함께 해방 이후 영천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주-소작인의 불합리한 종속관계가 심하게 뿌리내린 곳이었으니, 친일 잔재 청산과 토지개혁을 외치던 “영천 사람들 분노”는 가히 “숲을 이”뤘을 것이다. 그때 10월 2일 영천읍에서 시작된 불길은 삽시간에 다른 마을로 번질 정도로 영천은 10월 항쟁의 격전지였으며, 그만큼 “궁지에 몰린” 미군의 진압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봉인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집에는 “시월은 경외성서(經外聖書)다!”라는 그의 말마따나 역사의 바깥으로 배제된 영천 10월 항쟁의 현장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그렇지만 문학은 단순히 기록이 아니다. 사실 1957년생인 시인은 1946년 10월 항쟁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역사를 기록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그보다 문학은 오히려 기록과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증언하지 않는가. 그건 문학이, 특히 시가 나의 바깥에서 나를 타자와 세계와 접속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타자의 고통과 대면하게 되고, 그 고통의 심연으로 내던져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아득한 밑바닥으로 침잠해갈수록 그 누군가가 하지 못했던, 다른 누군가에게 억눌렸던 목소리를 간신히 듣게 될 테고, 그 순간 그는 이 완강한 세계에 가려진 흉측한 균열을 엿보게 될 것이다. 엄밀하게 그 목소리는 시인에 의해 대리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 목소리를 통해 진정한 삶의 진실로 육박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중기 시인이 어떠한 목소리를 획득하여 시적 진실을 추구해왔는가를 물어야 한다. 실제로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을 추적하고 먼지 나는 자료들의 기록을 뒤적여 온 결과, 거대한 역사의 콘크리트를 뚫고 지금-여기로 당도하는 희미한 빛을 포착하고 있다. 그건 마치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아름다운 문장에서 드러나듯, 파시즘이라는 사나운 서치라이트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반딧불의 잔존”을 연상시킨다. 민중문화의 잔존이라고 할 만한 이것은 이중기의 시에서 “붉은여우” 이미지와 “영천아리랑” 노래로 나타난다. 이 중 “붉은여우”의 경우 실제로 당시 인적 드문 산골짜기에 출몰하는 동물로 나타나면서도, 해방 이후 남한사회에 군림한 친일 관리 및 미군정과 그것을 등에 업은 우익세력 등 권력자와 학살자의 교활함을 나타낸다. 그뿐이겠는가. 이것은 또 해방 이후 남한사회를 지배한 반공이데올로기를 가리키거나 그것으로 인해 “빨갱이”로 오인된 희생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집을 읽는 내내 우리의 눈앞에는 붉은 글자가 새겨진 “묘비명”이나 붉은 잔디가 깔린 “무덤”이 아른거리는 걸까. 이처럼 역사를 앞질러 우리 앞에 당도하는 이미지는 “영천아리랑”을 통해 좀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영천아리랑”은 일제강점기에 만주나 연해주 등지로 떠돌던 영천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던 노래로, 그 이후 영천 사람들도 모르던 이 노래의 실체가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전에 북한 연구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서 남한 사람들에게 비로소 그 존재를 알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만주에서 사상운동을 하였고 영천 10월 항쟁의 주역 중 한 사람인 김은한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여기에 아련하게 울려 퍼지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저 이미지와 노래는 역사 속에 파묻혔던 민중의 고통뿐만 아니라 꿈틀거리는 민중의 생명력을 가리키는 것이지 않을까. 또한 이중기의 시에서 “반딧불의 잔존”은 역사의 변방으로 흩어져간 수많은 민중의 이름으로 나타나 있다. 이들은 박인로, 정환직, 백신애, 왕평, 안병철, 이원대, 이진영, 정희준, 임병호 등 영천 출신으로, 주류 역사와 문화사에서 제대로 언급되지 못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비극적인 삶은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를 외면하지 않은 구국정신과 맞닿은 것이자 자기 몸을 관통하는 역사의 흐름을 후대에 이어지도록 한 산물이었다. 바로 그가 이들을 호명하여 이들의 약전(略傳)을 쓰고자 했던 것은 이들을 좌표로 하여 섬광처럼 나타나는 영천 지역의 별자리를 구성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그는 영천 10월 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그들의 삶을 복원하고 있다.보인다그들 뒷모습이 보인다백이다 오백이다 천도 넘는다남루한 뒷모습으로 흐릿흐릿 돌아오는머슴에 작인에 봇짐장수 옆에 왈짜들까지운주산 보현산 아작골 채약산 골짜기를 떠돌며마지막 조선 시월 농사꾼으로 살다가엎어지고 자빠진 채 세월의 평토장으로 묻혀버린그이들 돌아와 인간의 마을을 내려다본다목구멍에 거미줄 안 걸렸던 날 얼마였던가무슨 원대한 포부가 있어피를 뿌려서라도 쟁취할 그 무엇 없었다다만 하나,고봉밥 한 그릇이 간절했을 뿐이었다― 이중기, 〈진혼가〉, 《시월》, 삶창, 2014 그 사람들은 정시명, 임장춘, 김갑수, 김상문, 황보집 등 영천 10월 항쟁의 주역이기도 하지만, “머슴”, “작인(作人)”, “봇짐장수”, “왈짜”와 같이 이름도 알 수 없는 민중들이었다. “백”도 “오백”도 “천”도 넘는 그 사람들은 대부분 “운주산 보현산 아작골 채약산 골짜기를 떠돌며/ 마지막 조선 시월 농사꾼으로 살다가”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사회주의로 무장하여 반공이데올로기의 금기를 넘어서려 한 “빨갱이”가 아니었다. 이들은 “목구멍에 거미줄 안 걸렸던 날”이 없을 정도로 굶주려서 “다만 하나,/ 고봉밥 한 그릇이 간절했”던 사람이었고, 내 땅에서 나는 곡식으로 먹고 살고 싶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지금-여기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혁명을 감행하려 했을 것이다. 이들의 못다 한 혁명은 어둠 속에 봉인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 끊임없이 회귀할 것이다.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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