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창안해낸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는 한 언론인과의 인터뷰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역사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재현하는 것, 말하는 것, 역사를 말하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일관성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역사를 말하는 사람이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데이비드 버사미언, 《펜과 칼》, 마티, 2011물론 이 말은 우리가 자기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 상대방을 향해 개방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거나 상대방의 배경을 이루는 역사 자체에 대해 존중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말은 또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불편한 구석을 겨냥하고 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상대방을 미지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것,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이미 상대방을 왜곡되게 바라보고 있는 정신적 점령지에 처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떠한 프레임 속에서건 개방성과 상대성은 벌레가 파먹기 시작한 새빨간 사과에 불과할지 모르겠다.이러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일침은 최근 국제적인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의 방식대로 우리는 단순한 비판과 동정을 넘어 얼마만큼 투명하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귀 기울이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럴 때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실을 고통스럽지만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는 자카리아 무함마드(Zakaria Mohammad)의 시는 우리에게 보배와 같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마따나 그의 시는 우리가 “세상을 다시 염증이 있는 눈으로” 바라보고 “그 빨갛게 된 눈으로 진실을 다시 찾아내고 싶”게(〈불가능〉) 하는 통로가 되니까 말이다.그러면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누구인가. 문학작품의 해석에서 작가의 존재가 꼭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자카리아 무함마드라는 존재는 그의 시와 팔레스타인을 꽁꽁 묶고 있는 매듭에 속한다. 그는 1950년 팔레스타인의 나블루스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나 갓 청년기에 들어섰을 무렵 그의 일생을 뒤바꾼 사건을 경험하였다. 그건 바로 그가 이라크 바그다드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애초 지정된 날짜보다 이틀 늦게 귀국했다는 연유로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추방되었던 일이다. 그 후 그는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등지를 떠돌다가 1993년 오슬로 협정을 계기로 하여 25년 만에 가까스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삶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방랑과 차별과 박해로 점철된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강력하게 환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가. 그의 몸에 새겨진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고스란히 그의 문학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자양분이 된다. 그의 시에는 ‘나’의 목소리가 나타나면서도 복수의 목소리가 혼재하고 있으며, 특정한 이미지가 나타나면서도 다양한 상태와 상황이 결부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그의 실존적 정체성을 낳았으나 어떤 측면에서는 그의 문학이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다시 낳았다고 볼 법하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그의 시에서 결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의 지점에 가닿으면서도 어느 순간 참된 삶을 갈망하는 희망의 지점에 가닿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두 흐름을 더듬어 보자. 저물녘 잠자리 찾는한 떼의 새.내게 깃들인다.어스름 속에 서 있는 나는한 그루 나무.팔꿈치에, 어깨에, 머리카락에, 가슴에새들이 파고들어밤새 내는 소리가 아무리 괴로워도쫓아낼 수 없다.그 많은 새들이 다 내 형제들의 영혼.나는 그들의 집이 되어야만 한다.이 대규모의, 구제받지 못한, 벌벌 떠는 다수.밤이라 불리는 이 음울한 평야에나는 단 한 그루 나무.떨리는 손들이 자신을 덥힐 땔감을 달라 한다.그래서 나는 내 가지로 불을 먹여야 한다.이것이 그들이 기억이라 부르는 것.― 자카리아 무함마드, 〈저물녘〉, 오수연 옮김,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강, 2020먼저, 우리는 그의 시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엿볼 수 있고, 그가 살아있는 자의 삶 속에 끼어든 죽은 자의 목소리를 받아적으려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애초 시인이 하늘과 땅의 중간에 선 영매의 존재였던 것처럼, 그는 철저하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중간자적 존재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시집을 넘기자마자 죽은 자들이 “삼십 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불쑥 그의 꿈에 나타나 말을 거는 상황과 마주한다(〈내가 잠들면〉). 이때 그는 이들과 자신의 경계를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매번 꿈에서 그들의 죽음을 새롭게 알게 되는 기이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건 아마 이 “죽은 자들이”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못했”거나 “검문소 앞의 농부들”이라고 볼 때 고통과 박해로 점철된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직결된 존재이며(〈죽은 자들〉), 그가 이들의 목소리를 받아적음에 따라 팔레스타인의 상처를 기억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순간 그의 시는 피비린내 나는 신음에 가깝겠지만 꼭 거기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는 자들은 언젠가 역사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미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단단한 의지를 품고 있는 노래가 되기도 한다.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그가 특정한 몸-이미지를 발명하여 자신의 몸에 철저하게 과거의 역사를 각인하려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몸-이미지는 위의 시에서 “밤이라 불리는” “음울한 평야에” 서 있는 “단 한 그루 나무”로 나타난다. 마침 “한 그루 나무”에는 저물녘이 되어 “잠자리 찾는/ 한 떼의 새”가 깃드는데, 이는 평온과 안식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새들은 그의 온몸 곳곳에서 괴로운 울음소리를 낼 뿐 아니라 어디에도 “구제받지 못”하는 두려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새 떼를 비롯하여 구속과 억압의 상징인 “재갈”을 씹고 있는 “말”을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재갈〉). 그래서 그는 기꺼이 “그들의 집”이 되어 그들의 가슴에 맺힌 원한의 울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그들을 덥힐 “땔감”을 자처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가지를 희생해서라도 “불을 먹여야 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 “불”이 바로 ‘그들의 기억’과 동일시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 어떠한 생존권을 박탈당한 이들에게 유일한 무기는 어두운 과거를 밝히는 기억의 “불” 말고 뭐가 있겠는가. 이 “불”은 나로부터 다른 누군가에게로 이어져 언젠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동력이 될지 모른다. 이 때문에 “밤이라 불리는 이 음울한 평야”는 고통과 원한의 역사와 함께 회복과 희망의 역사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철새들의 회오리에 휘말려 나 떠올라그 속의 하나가 되어새 떼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면서다른 새들처럼 날갯짓.한 마리마다 하나의 점,수천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형상의 가장자리에서나도 날갯짓하는 하나의 검은 점.다른 점들과 함께 물결치며 오르락내리락.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내 일은 다만 나의 두 날개를 치는 것.점들이 신에게로 가고 있을 수도 있겠지.자기장을 시험하러 남극으로 가고 있을 수도 있겠지.자살하러 깊은 계곡을 향할 수도 있겠지.우리는 우리를 위해 우리 스스로 우리를 이루는기하학적인 검은 점들이라서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아.한번은 우리 거대한 시무그가 되고, 다음번에는 회오리나 화살이 되지.어쨌든 한 가지는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으니, 위에서 내려다보니 세상은 아름다워.영혼 또한 아름다워.아무것도 아닌 무리의 한 점이 될 때,영혼은 아름다워.― 자카리아 무함마드, 〈한 점〉, 오수연 옮김,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강, 2020다음으로, 우리는 그의 시에서 방랑의 종착점으로서 집을 향한 갈망을 엿볼 수 있고, 그가 그것을 다른 이들과의 연대성을 통해 획득하려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난민으로 떠돌았던 그에게 집은 결국 영혼의 안식처인 고향을 의미하겠지만, 이는 순전히 과거의 환영과 신화에 휩싸인 장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선 시에서 살펴봤다시피, 그의 고향은 이미 파괴되어 아득한 기억 속에 보존되어 있기에 그가 누군가와 함께 새롭게 창조해야 할 공동체이기도 한 것이다. 이에 관해 그는 상당히 매혹적인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건 바로 페르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시무그 새 이야기’로,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오래전에 새들이 전설의 거대한 새 시무그를 찾아 자신들의 왕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먼 거리를 날아가 시무그가 산다는 곳까지 갔으나, 거기에 시무그는 없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모여 만든 큰 새의 형상이 시무그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들 모두가 함께 새들의 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이야기에 따른다면, 위의 시에서 “새 떼”가 이루어낸 “거대한 시무그”는 과거의 영광으로 회귀한 결과가 아니라 그들의 손으로 제출한 공동체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신”, “남극”, “깊은 계곡”과 같은 목적이나 목적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우리”를 이루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다.그러니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에는 상당히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고 또 그 형태는 몹시 다채로워서 그만큼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카리아 무함마드가 다른 지면을 통해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제주 4·3사건, 그리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을 연결하고 있는 부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가 자기 몸으로 피워낸 불은 지구 반대편 우리나라 역사의 불과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꿈은 결국 작년 8월을 기해 미완성으로 남고 말았다. 늦게나마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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