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문득 떠올랐던 것은 10년 전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고창석이라는 배우의 이야기였다.고창석은 당시 다소 생소한 공동육아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공동육아와 공동교육, 그리고 그것을 위한 생활공동체, 책에서만 있는 ‘이상’ 혹은 ‘실험’으로서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꽤 많은 영역에서 생활공동체를 통한 삶의 공유가 현실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장 대중적인 인물을 통해 가장 급진적이라 생각했던 이야기가 평범한 일상처럼 다루어져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의 주변에서도 공동육아를 위한 생활공동체를 이룬 소위 코뮌들이 많이 있다. 현재의 생활공동체, 그것은 현 체제 즉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대안적 실험이 아니라 현 체제를 주도하는 최대 수혜자들의 새로운 비전으로 구상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일이다. 특히 마을은 생활공동체의 핵심이다. 물론 우리는 전통적인 마을에서 벗어난 새로운 ‘마을’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새로운 형태의 ‘마을’ 그것은 물리적 측면에서도 그러하지만, 심성적 측면에서도 차이와 반복성을 지니며, 지녀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발견하는 마을 공동체는 기획성을 지닌다. 자연발생적인 과거의 마을과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들 소규모 공동체가 거대한 세계체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합의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공유를 통한 생활방식이다. 이곳의 육아와 교육, 생산과 소비의 다수 기반은 공동체의 공동재산으로부터 오며, 협의가 이뤄진 공유로 공동체의 배타적 소유권을 외부 세계로부터 보장받는다. 이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와 민족 혹은 유로나 나토 등의 경제협력기구와 같은 거시적 공동체가 아닌 마을을 단위로 하는 미시적 공동체라는 점이다. 또한 이 공동체 내부는 공산주의적 질서를 구축하지만, 외연은 신자유주의의 세계체제와 조응하고 있다.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개인들의 연합체(Association)’라는 이상을 마을 내부의 협약을 통해 실현하는 동시에 거대 조직으로 외연을 확대하는 과정에서의 경직성을 극복하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의 전체주의화 혹은 국가주의화라는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활동성을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거시 체제가 주는 억압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거시 체제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활력을 부활시키며 현 체제와 조응하는 노력은 특히 눈여겨볼 점이다. 또 하나의 주요점은 그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상부상조의 공유적 삶의 방식이며 협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의 의사결정이다. 육아와 교육 나아가서는 노동과 복지까지도 공동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나는 이러한 기획과 실험이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적 거시체계가 가지는 다양한 소외 문제를, 사회주의자들이 처음 고민했었던 상호부조와 공유의 방식으로 해결하되 두 개의 질서가 부조응이 아닌 조응의 방식으로 현 체제 내에서 극복해 낼 수 있는 해법.나는 이러한 시도들이 현대인이 직면한 중요한 사회문제의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마을 공동체에 관심 가지는 가장 큰 이유이다. 물론 그 관건은 국가와의 관계 설정일 것이다. 이는 추후로 구체화해 볼 과제이다.마을 공동체의 공유적 삶의 방식이 국가 시스템과 얼마나 잘 조응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상호 간의 계서적 기생 관계가 아닌 연대적 공생관계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인가가 주된 물음이 될 것이다.아직 해명해야 할 문제는 많다. 그러함에도 고무적인 것은 이미 많은 곳에서 삶의 방식이 육아와 교육의 가장 적실한 부분부터 공유적 방식의 소규모 공동체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로 이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그것은 현 체제의 반란자들이 아닌 현 체제를 옹위하는 수혜자들에 의해 동반된다는 점에서 특이점을 보이며, 그것은 역시 실현 가능한 변화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글쓴이|이재호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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