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을 둘러싼 오해의 생산우리가 거주하는 장소는 사실 오랜 세월에 걸쳐 역사와 문화가 누적되어온 산물이다. 그건 장소 자체가 인간 전체의 삶을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의 집합체, 즉 역사의 영향과 인간 간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취향의 집합체, 즉 문화의 영향에 따라 그 특성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장소는 실제적인 공간임을 넘어 관념적인 속성에 의해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받게 되지만, 인간 삶의 측면에서 볼 때 역사와 문화가 장소의 의미를 형성하는 데 똑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강과 강물의 관계에 빗대서 보면 어떨까. 역사의 경우 모든 강물을 수렴하는 강과 같이 인간 삶의 전체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반면에, 문화의 경우 강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강물과 같이 개별적인 삶이 만나고 흩어지는 양태를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에게 문화는 인간 삶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드러내는 프리즘과 같다.이러한 문화의 동력에 주목한 사례로 우리는 이봉구(1916~1983)의 에세이집 《명동백작》(2004)을 들 만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일제 말기, 해방공간, 한국전쟁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서울 명동이라는 특수한 장소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당시 명동의 거리를 활보하였던 문인, 화가, 음악가 등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와 사연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명동의 거리를 수놓은 다방, 술집 등에 모여들어 음악과 술로 소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와 노래는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내면 풍경을 보여준다. 바로 그것은 경제적 궁핍이나 애정 문제 등 생활난에서 비롯한 애환과 고독의 표현이고, 또 인간다운 삶을 기대할 수 없는 불투명한 전망에서 비롯한 격정과 비애의 표현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얼마나 다르고, 또 닮았는가.이때 우리는 이 책에서 이른바 명동 샹송을 만든 시인 박인환의 이야기에 주목할 수 있다. 그가 자작시 〈세월이 가면〉을 죽마고우 이진섭과 함께 노래로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것은 1956년 3월 초순으로 알려져 있다. 박인환이 하룻밤 사이에 쓴 시에다 이진섭은 불과 열흘 만에 곡을 붙였고, 이들은 동방살롱 앞에 있던 허름한 빈대떡집에서 이 노래의 발표회를 열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마침 동석하고 있던 테너 가수 임만섭에 의해 가게 바깥으로 울려 퍼졌거니와 그것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노래를 발표하고 나서 며칠 뒤 박인환은 폭음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31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노래 〈세월이 가면〉의 탄생 과정과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폐허와 같은 명동을 살아간 사람들의 설움과 허무감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박인환의 시들은 그동안 서구에서 유행하는 첨단의 문학을 어설프게 흉내 내려 한 모조의 산물이거나 암담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처절한 비탄과 탄식을 토로한 감상성의 산물로 치부되어왔다. 아마도 그의 시에 냉혹한 라벨이 붙게 된 요인 중 하나로는 그에 관한 단편적인 인식들이 부풀려지거나 왜곡되어 특정한 선입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을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처음에는 그와 가까웠으나 결국 멀어지고 만 동시대 시인 김수영의 언급처럼 말이다. 김수영은 그가 죽고 나서 10년이 지난 뒤에도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라며 박인환을 향한 경멸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떠한 대상을 향한 비판의 지점을 그 사람의 전부인 양 일반화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그 사람이 가진 빛나는 지점을 발견하여 내 것으로 수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항상 요청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박인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의 시를 김수영의 시와 겹쳐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헛된 희망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절망날개 없는 여신이 죽어 버린 아침나는 폭풍에 싸여주검의 일요일을 올라간다.파란 의상을 감은 목사와죽어 가는 놈의숨 가쁜 울음을 따라비탈에서 절름거리며 오는나의 형제들.절망과 자유로운모든 것을……싸늘한 교외의 사구에서모진 소낙비에 으끄러지며자라지 못하는 유용식물(有用植物).낡은 회귀의 공포와 함께예절처럼 떠나 버리는 태양.수인이여지금은 희미한 철형(凸形)의 시간오늘은 일요일너희들은 다행하게도다음 날에의비밀을 갖지 못했다.절름거리며 교회에 모인 사람과수족이 완전함에도 불구하고복음도 기도도 없이떠나가는 사람과상풍(傷風)된 사람들이여영원한 일요일이여― 박인환, 〈영원한 일요일〉, 《박인환 문학전집 1 시》, 소명출판, 2015이 시에서 박인환은 인간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린 한국전쟁의 체험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실제로 그는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을 당시 미처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자기 집 지하에서 숨어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이듬해 1·4 후퇴 때 대구로 피난 오게 된 이후 자신이 근무하던 경향신문사의 특파원으로 육군 6185 부대와 함께 최전선으로 종군하였거니와 당시 피난 온 문인들이 가담했던 종군문인단 중에서 육군종군작가단에 합류하여 활동한 바 있다. 이때 그가 이념 대립으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살육과 폭력을 일삼는 인간의 잔혹한 행위를 두 눈으로 보고서 더 이상 이국 취향의 낭만성과 감상성에 사로잡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니 한국 현대사에서도 그렇겠지만 박인환 개인에게서도 한국전쟁은 그의 문학을 뒤바꾸어놓은 중요한 분기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바로 이 시에서 “주검의 일요일”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현실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통상적으로 일요일은 우리에게 어떠한 날로 인식되고 있는가. 대체로 이날은 여유, 여가, 휴식, 평안, 재충전 등 안정적인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휴일이라 생각할 만하다. 평일 동안 생산을 위한 노동 자체에 충실한 생활을 하다가 이를 잠시 중단하는 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주검의 일요일”은 그러한 일요일과는 괴리된 날로, 오히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거나 목숨조차 제대로 지킬 수 없는 비극적인 날이라 할 수 있다. 이날에 그가 살던 곳은 “유용식물”, 즉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는 곳이 되어버렸으니, 그가 먹고 살길을 찾아 이곳을 떠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가 향하는 곳은 “죽어 가는 놈의/ 숨 가쁜 울음을 따라” 죽음으로 귀결되는 길에 불과하며 심지어 종교적인 구원 가능성마저 차단되어 있기도 하다. 그는 결국 “주검의 일요일”이라는 숨 막히는 감옥에 갇힌 “수인”에 다름 아니다.하지만 이 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그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도저한 절망과 강렬한 허무 의식을 철저하게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당면한 현실 상황에 대한 비관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긴 하나, 그에게는적어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는 실존적 태도일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는 시에서 “날개 없는 여신이 죽어 버린 아침”, 즉 신이 부재한 현실에 자신이 처해 있으며, 이를 “영원한 일요일”이라고 불렀다. 이 말에는 그가 신의 부재로 인해 어떠한 구원의 가능성이 차단된 상황에서도 결코 이를 외면하거나 기만하려는 희망을 품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담겨있지 않은가. 지극히 당연하게도 시간은 유동적이어서 일요일 또한 지나가 버리겠지만, 심리적으로는 이를 영원히 같은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말이다.이를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신과 비교해보면 어떤가. 그와 다르게 김수영은 폐허의 현실을 생성의 현실로 바꿔놓는 신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궁핍한 현실을 딛고 일어설 긍정의 정신을 다짐한 바 있다(〈꽃〉). 이처럼 때로 우리가 희망의 미래를 얘기해야 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와 반대로 희망의 죽음을 얘기해야 하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한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헛된 희망에 속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가 걸어가야 할 앞길에 희망의 가능성이 봉쇄되어버린 상황은 우리를 극심한 불안과 고통에 떨게 만들지 모른다. 그럼에도 희망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존재 조건을 더 냉철하게 바라보게 하고, 우리의 내면을 더 단단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다시 인간의 사랑으로 일구는 삶의 터전 인제봄이면 진달래가 피었고설악산 눈이 녹으면천렵 가던 시절도이젠 추억.아무도 모르는 산간벽촌에나는 자라서고향을 생각하며 지금 시를 쓰는사나이나의 기묘한 꿈이라 할까부질없고나.그곳은전란으로 폐허가 된 도읍인간의 이름이 남지 않은 토지하늘엔 구름도 없고나는 삭풍 속에서 울었다어느 곳에 태어났으며우리 조상들에게 무슨 죄가 있던가.눈이여옛날 시몽의 얼굴을 곱게 덮어 준눈이여너에게는 정서와 사랑이 있었다 하더라.나의 가난한 고장인제봄이여빨리 오거라.― 박인환, 〈인제〉, 《박인환 문학전집 1 시》, 소명출판, 2015박인환은 닿을 길 없는 헛된 희망에 사로잡히는 대신에 스쳐 가버린 아득한 “추억”을 되새기고자 했다. 그건 그의 삶의 궁극적인 원천인 고향 “인제”를 매개로 하고 있다. 그는 11세에 서울 종로로 이사를 하기까지 이곳에서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곳에는 봄이 되면 “진달래”가 피어나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던 곳이었고, 또 “설악산 눈이 녹”는 때가 오면 냇가에 고기잡이를 갈 정도로 한가로운 흥취를 느낄 수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은 “아무도 모르는 산간벽촌”이라 할 만한 “인제”를 온통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그곳은 더 이상 “인간의 이름이 남지 않은 토지”로 변해버렸고, “하늘엔 구름도 없”을 만큼 평범한 풍경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아오던 삶의 터전 자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괴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그가 순박하게 살아온 “우리 조상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기에 이러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냐고 신에게 항변할 만하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의 처절한 현실 감각을 염두에 두고서 그가 순전히 지나가 버린 과거로 도피하거나 퇴행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러한가. 그의 처지에서 보건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에 섣부른 기대를 거는 것보다는 그의 삶을 관통해갔고 삶의 지반 어딘가에 누적되어 있을 과거를 반추해보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적어도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을 낳는 모체가 된다고 한다면, 그가 과거의 시간을 돌이켜보는 것은 지금 여기의 실존적 좌표를 설정하기 위한 행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그가 황폐화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어떻게 과거의 눈부시고 아름다운 순간을 회복할 수 있을까가 문제가 된다. 그건 그가 “고향을 생각하며 지금 시를 쓰”고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과거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기보다는 과거의 형질을 재창조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단순히 위로와 망각의 차원에서 과거를 받아들이려 한다면, 후자는 생성과 기억의 차원에서 과거를 이어 나가려는 점에서 크나큰 차이를 발생시킨다. 이런 점에서 고향을 회상하던 그가 “봄”을 간절하게 호명하는 것으로 시를 끝맺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판단된다. 이는 아직 지금 여기에 도래하지 않은 잠재성 혹은 가능성의 세계로서, 앞으로 그를 비롯한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창조해가야 할 세계니까 말이다. 바로 그것을 창조해갈 수 있는 원동력이 “정서와 사랑”, 즉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과 인간 간의 연대가 아닐까. 과거의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던 척박한 땅을 풍요롭게 개척해갔던 것처럼 말이다. 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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