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성에, 너의 자아에 저주가 내릴 것이다.”“어르신 바로 그 자아가 있어서 인간은 짐승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섬깁니다.”“그러던 자아가 하느님을 능멸하게 되었다. 이제 그 자아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죽음은 노새이니 이제 그 노새를 타고 떠날 일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中위 인용문은 카잔차스키가 성산 아토스에서 구도승과 대화한 내용이다.인간은 자아를 가지고 있기에, 모든 존재보다 탁월하며, 동시에 신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는 구도승의 신념은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강렬한 믿음 중 하나이며, 하나의 이기적 욕망인 까닭에 카잔차스키는 이중의 감정을 얻었다고 한다.인간의 지성사를 회고해보면 인간은 오랫동안 자아의 권능을 확대하기 위해 투쟁해왔고, 동시에 창조주와의 관계를 자아의 자기 규제를 통해 규정해왔다.적어도 창조주를 능멸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간의 자아는 그 어떤 존재보다 탁월한 지위를 누렸다. 다만 창조주를 능멸하는 시도가 있을 때에만 심각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규제되었다.그것은 신에 대한 확신과 그에 비롯한 원천적 복종이라기보다 신이 아닌 타 존재에 대한 수위권을 확보하기 위한 변칙이었던 경우가 더 많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의 발로였다. 신의 존재가 가정되지 않는 질서에서 인간이 타 생명체보다 우월하다는 논증은 논리적으로 조악했기 때문이다.피조물은 창조주를 넘어설 수 없다는 준칙과 인간은 피조물 중 창조주와 가장 흡사하다는 논변은 이러한 현실의 산물이었을 수 있다. 그렇게 인간은 전면적으로 신을 능멸하지 않는 선에서 타 존재에 대한 수위권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끊임없는 의심에 노출되어 왔다. 하지만 인간 사이의 의심이었기에 한계가 분명한 의심이었다.하지만 자아를 가진 다른 존재가 탄생한다면 모든 것은 달라지지 않을까?신의 질서는 몰라도 적어도 인간의 수위권은 허물어질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인간을 능가할지도 모르는, 나아가 자아를 가질지도 모르는 존재인 인공지능의 현저한 발전을 통해 불분명한 불편함을 표출하고 있다.자아를 가진 또 다른 존재의 가능성.인간은 연일 `피조물은 창조주를 넘어설 수 없다`는 준칙을 인공지능 가진 피조물에게 강제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자기 준칙을 파기하며 창조주의 권능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목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불편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 신의 질서라는 가정을 와해시킬 경우 자연에서의 인간의 지배적 위치는 위태로워진다. 나아가 인간은 지배적 위치를 잃게 될 우려가 있으며, 이럴 경우 모든 인간 행위의 역사는 힘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는 사태로 해석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또 다른 힘을 가진 존재 탄생에 대한 불안, 인간이 소멸이 아닌 하위의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 인간의 지배권 남용 (동물과 식물에게 행한 무차별 폭력)을 반추하면 그것은 끔찍한 것이다.사실 나는 인간이 지구상의 수위권을 관념적으로 동시에 실질적으로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가 동등한 조건으로 협력하는 연기적 자아, 우주적 자아가 새로이 자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인류의 길이 그것과 달랐기에 쉽지 않으리라 예상한다.몇 해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전에서 알파고의 압도적 승리는 자아를 가진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보다 가까이 느끼게 해 주었다. 동시에 피조물이 창조주를 능멸하는 자아가 만들어낼지도 모를 공포를 안겨주기도 했다. 또한 챗GPT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연일 군중의 심성 속에서 일희일비의 감정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촉발하는 감성일지도 모른다.인간이 우려했던 자아를 가진 또 다른 존재의 가능성.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인간보다 탁월한 존재로 말미암아 하위존재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무의식에 잠재한 집단적 공포. 자아를 가진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 보다 가까워진 지금, 그 가능성에 혼란스러워하는 양가의 감정은 어쩌면 인류에게 주는 반성의 기회라고 생각한다.인류가 타 생명체에게 했던 만큼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인류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요즘. 또 다른 자아를 지닐 가능성이 있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불편함이 무엇인지 냉정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왜 우리는 자아를 지닌 또 다른 존재의 탄생을 두려워하는가?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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