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단지 감수성밖에 없다. 바로 이 길을 통해 예술, 즉 절대주의는 재현을 벗어난 순수 표현에 이르게 된다. 예술은 감각 외에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는 사막에 도달한 것이다. 절대주의의 사각형 및 그 이념에서 생겨난 형태들은 원시인의 기호와도 비교될 수 있다.- 밀레비치“예술은 모든 부질 없는 것들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예술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오로지 눈과 귀의 미적 감각에 어필해야 하며 그것이 헌신이니, 연민이니, 사랑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상관없는 감정들과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휘슬러의 생각과 비슷해 보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휘슬러는 색채를 통해 감각의 극치, 유미주의의 세계를 열고 예술 그 자체를 탐미했다면, 밀레비치는 형태와 구성을 통해 예술 그 자체를 탐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밀레비치는 나아가 색채, 형태로부터 해방된 예술을 지향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구성에서 벗어난 절대적 순수를 창조하고자 하죠. 절대주의적 추상은 무이며, 무로부터의 창조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오염시켰던, 그리고 인간의 생애를 억압했던 모든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한 해방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적 구성이라는 그림입니다.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아직은 색채로부터 벗어나지도, 형태와 구성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지도 않지만, 그의 절대주의적 지향은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막이라는 공간과 원시라는 시계열의 조화, 그것은 어쩌면 가장 평등했던 세계의 시원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념과 현실을 초월하여 절대적인 순수를 말할 것 같은 밀레비치는 역설적이게도 매우 사회 참여적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던 샤갈과의 에피소드는 특이하다고 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샤갈의 그림엔 혁명 정신이 결여돼 있고 유럽 부르주아 미술의 영향이 과도하다고 비난하며, 혁명을 동경했던 샤갈을 러시아에서 추방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절대적으로 순수하며 유럽 부르주아 미술과 단절된 새로운 것, 혁명 정신이 반영된 민중적 추상이라 말하곤 했다 합니다.그가 추구했던 절대주의는 어쩌면 가장 시원적인 인간존재의 평등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존재의 평등성으로 복귀하자는 마르크스의 환원론적(변증법적) 역사관과도 깊이 연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쓴이|이재호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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