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창안해낸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는 한 언론인과의 인터뷰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역사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재현하는 것, 말하는 것, 역사를 말하..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인류 과학사를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해당한다. 언젠가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 무엇인가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재치를 발휘한 적 있다.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있을 때는 한 시간이 마치 1..
"모른 척 해줄께. 너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들어도. 모른 척 해줄께. 약속해주라, 너도 모른 척 해준다고. 겁나. 너는 말 안 해도 다 알 것 같아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인 이지안(아이유)가 자신이 정당방위로 살인을 저질렀던 과거를 사람들에게 들킬까
살다 보면 평소에는 지극히 사소하던 것이 문득 특별한 것으로 변할 때가 있다. 유리창이 그러하다. 당신이 좀처럼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슬픔에 휩싸일 때 유리창은 당신에게 충만한 공간으로 변주한다. 당신이 유리창만큼이나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했다고 느끼기 때문일까. 그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전설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 남긴 명언이다. 이 짧은 말에는, 우리의 인생을 마치 기름을 끼얹은 장작불에 비유하고서 우리가 거기에 가까이 다가서려다 다치지 말고 적절한 거리에서 그 온기를 쬐길 바라는 염려의..
12월은 어떤 점에서 인간의 한 여정이 다다르는 종착점이라 여길 만하다. 어느 순간 우리의 몸이 그것을 먼저 감지하고 있다는 걸 우리의 머리가 뒤늦게 알아차린다. 우리가 마지막 달력을 넘기면서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지난 길목 위에 떨어져 있는 숨들을 뒤돌아볼..
이름이 하나의 상징이 된다는 건 불행한 일일지 모른다. 그건 아무도 가지 않은 수난의 길을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가 최후에 내던진 목숨은 오롯이 블랙홀과 같은 상징으로 수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름이 하나의 상징이 되는 건 특별한 ..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일상은 마치 장미꽃과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고정된 루틴에 따라 삶의 공간을 영위해가고 형식적인 관계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채워질 수 없는 욕망에 얽매이거나 비속한 돈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에 대해 프..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이 있다. 경북 영천 출신의 이중기 시인이다. 사실 그에게 농부와 시인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동의어에 가깝다. 농부란 하늘과 땅의 말에 귀 기울이고 섬겨서 자기와 세상을 살찌우는 존재이니, 우주의 말을 받아적으며 자기와 ..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2019년에 개봉된 엄유나 감독의 영화 〈말모이〉에 나오는 대사다. 잘 알다시피, 이 영화는 일제 말기 암흑기 상황 속에서 우리의 말과 글을 수호하고자 했던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작업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이 사전..
사람은 누구나 두 개의 입을 가지고 산다. 하나는 육체에 달린 입으로, 나날이 생존을 위한 음식을 먹는다. 그래서 끼니라는 말에는 얼마나 처절한 피로와 짙은 고달픔이 배어있는가. 다른 하나는 영혼에 달린 입으로, 종종 실존을 위한 음식을 먹는다. 그래서 허기라는 말에는..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떠들썩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매스컴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나오는 거 보십시오. 도대체가 과학이라고 하는 건 1+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2011년 8월 15일에 방영된 2부작 드라마 <절정>은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의 항일무장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제목은 목숨을 위협받는 극한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정신적 의지를 노래한 그의 대표작 <절정>에서 가져왔다. 이 드라..
내일이나 미래와 같은 말만큼 달콤하고 중독적인 말이 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굶주린 마음을 든든하게 할 양식이 이 세상 어딘가 가득 쌓여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언젠가부터 현재의 행복을 아득한 미래로 유예하려는 버릇에..
필자는 현재 선생님이 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의실에 들어설 때면 이들의 형형한 눈망울에서 예비교사라는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감지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이들에게 좀 더 정확하고, 풍부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부쩍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어쩌면 이들에게 전달..
“우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2006년 프랑스 전역을 수놓은 시민운동의 현장에서 시민들이 외친 구호 중 하나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 운동은 당시 프랑스 정부가 내세운 최초고용계약(CPE)에 관한 법, 즉 ‘고용인이 26세 이하의 피고용인을 채용한 후 2년의 시..
지난 18일 서울 서이초등학교 새내기 교사의 극단적 선택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고 있는 가운데 경북의 모 초등학교 교사가 아동심리 상담가이자 금쪽상담소 오은영박사의 육아교육론을 반박하는 글을 게시해 지역사회에 또 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본지는 학교폭력 문제가 갈..
가끔 당신의 다친 마음에서는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당신은 마음의 수혈을 할 만한 장소를 찾으려고 바깥을 두리번거렸을 거다. 그 하나의 장소로 우린 새벽시장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가면 다친 마음들이 건강한 육체에 기대고 있어서 좀처럼..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특별한 조직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뜻하지 않은 통과의례를 거치기 마련이다. 필자에게는 대학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때 그러한 순간을 맞이한 기억이 있다. 그날 나와 한 조를 이룬 동기들은 선배들이 학내에 미리 설계한 코스들을 돌며 각각의 코스에서 주..
민주주의의 역사는 얼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조건이 이른바 자유와 평등에 달려있다면, 누구나 동등한 얼굴을 인정받고 누구나 인간다운 얼굴을 보장받는 게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속하는 가장 본래적인 징표 중 하나가 바로 얼굴인..